[리뷰]'창궐' 헬조선에 창궐한 좀비떼와 칼춤 추는 현빈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10.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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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좀비가 나타난다. 좀비가 왕궁에 창궐한다. '창궐'은 이 아이디어를 영화화했다. 궁궐에 가득한 좀비떼. 시각적인 쾌감과 액션의 유려함은 볼만하다.

청나라에 굴복한 조선. 왕은 무능하고 권신은 강력하다. 세자는 나라를 바로잡아 보려다 먼저 세상을 뜬다. 세자의 부음에 청나라에 있던 강림대군이 돌아온다. 강림대군이 당도한 제물포는 어쩐지 수상하다. 인적이 끊겼다.


왕이 되고자 하는 병조판서 김자준은 강림대군을 환영하지 않는다. 암살자들을 보낸다. 암살자와 맞붙는 강림대군. 허나 암살자보다 산자도 죽은자도 아닌 야귀들의 습격이 더 무섭다. 산 사람만 보면 물어뜯으려 덤비는 야귀떼. 야귀에 물리면 그 사람도 야귀가 된다.

제물포는 김자준의 책략으로 고립됐다. 나라에서 버림받았다. 강림대군은 구해달라는 죽은 세자의 부하들과 백성들의 바람 속에 환궁한다. 그 자신은 왕도, 조선도 싫다. 다시 청나라로 돌아갈 생각뿐이다. 모든 걸 잊고 흥청망청 살고 싶은 마음뿐이다.

상황은 만만찮다. 김자준은 창궐한 야귀떼를 이용해 큰 꿈을 꾼다. 강림대군은 백성의 바람은 버겁지만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다. 각각의 마음들이 부딪히는 가운데 야귀떼가 궁궐에 쏟아진다.


'창궐'은 781만명을 동원한 '공조'의 김성훈 감독과 현빈이 다시 힘을 합친 영화다. 현빈은 제작에도 돈을 보탰다. 그만큼 둘에겐 매력적인 작품이었단 뜻이다. 아이디어는 분명 매력적이다. 야귀라 불리는 좀비떼가 조선의 궁궐에 쏟아지니 어찌 이야기를 풀어낼지 관심이 쏠릴 수 밖에 없다.

김성훈 감독은 정공법을 택했다. 궁을 가득 메운 숱한 신하들과 무사, 내관, 궁녀들이 좀비로 변해 사람들에 달려든다. 그 좀비떼 사이에서 잘생긴 현빈이 칼춤을 춘다. 좀비의 목을 날리고, 가슴을 뚫고, 팔을 벤다. 칼 한 자루에 의지해 좀비떼를 뚫은 현빈의 액션에 시선을 쏠리게 했다. 이 비주얼과 이 액션. '창궐'의 8할이다. 이 비주얼은 좀비 마니아들의 눈을 사로잡을 만하다. 이 액션은 '공조' 액션을 즐긴 관객들에게 갈채를 받을 만하다.

문제는 2할이다. 좀비영화는 보통 당대의 사회를 반영한다. 사회에 만연한 공포를 은유한다. 영화가 직접 설명하지 않아도 관객은 그리 읽어냈다. 좀비떼의 공포, 그리고 그 싸움에서 쾌감을 느끼고 극장을 나오며 의미를 되짚곤 한다. '창궐'은 그 의미를 직접 설명하려 했다. "이러려고 왕이 됐냐"는 왕에서 시작해 궁을 가득 메운 횃불까지. 김성훈 감독은 배우의 입으로, 영상으로, '창궐'의 의미를 하나하나 설명하려 했다. 그 탓에 영화는 종종 느려진다. 그 탓에 내달리던 속도감이 왕왕 끊긴다.

김성훈 감독은 '창궐'에 장동건을 안타고니스트로 내세웠다. 영화 전체에 중심을 잡을 악역인 김자준 역을 장동건에 맡겼다. 하지만 강력해야 할 악이 분산됐다. 의미를 설명하고 액션을 내달리며 좀비떼가 쏟아지자 어느순간 악이 힘을 잃었다. 악이 힘을 잃으니 긴장감이 줄어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창궐'은 조선을 표방하지만 조선은 아니다. 삼전도 굴욕을 겪은 인조 시대를 표방하는 듯하지만 다르다. '창궐'의 조선은 헬조선이다.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고 떠나야 살 길이 있어 보이는 듯한 헬조선. 그럼에도 살아야 하고 그래서 스스로 일어나야 하는 바로 이 땅. 김성훈 감독은 '창궐'에 헬조선을 그리고 좀비떼를 풀고 스스로 싸우라고 말한다.

액션의 쾌감은 창궐하고, 궁을 덮은 좀비떼는 볼만하고, 의미는 만연하다. 장단점이 뚜렷하다. 이 장단점은 극장에서 확인할 만 하다.

10월 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세자 역을 김주혁이 맡았다가 촬영 도중 세상을 떴다. 김태우가 대신 했다. 엔딩 크레딧에 김태우 그리고 김주혁이라고 표기해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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