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니무라 준이 보여준 '우문현답' [★날선무비]

김미화 기자 / 입력 : 2018.10.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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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쿠니무라 준 /사진=부산국제영화제


우문현답(愚問賢答). 어리석은 질문을 받고 현명하게 답하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우문현답이 최근 열린 제 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있었습니다. 지난 5일 열린 뉴커런츠 심사위원 기자회견에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일본 배우 쿠니무라 준에게 한 취재진은 "제주도에서 열릴 관함식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달겠다고 해서 비판받고 있는데 일본인 배우로서 입장이 궁금하다"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쿠니무라 준은 즉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했고, 이에 취재진을 향해 "아직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괜찮다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정중하게 되물었습니다. 이후 설명을 들은 쿠니무라 준은 "욱일기가 일본 해상 자위대의 전통 깃발이라는 것은 알지만 시대가 변했다. 한국 국민들이 이 깃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욱일기가 전통이기 때문에 굽히지 않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부분은 일본이 한국의 마음을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습니다. 또 그는 "일본 정부는 비단 욱일기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에서도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문제는 배우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습니다.

이틀 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전양준 집행위원장의 이름으로 쿠니무라 준의 욱일기 문답 논란에 대한 공식 사과입장을 내놨습니다. 영화제 측은 "기자회견에서 다양한 문답이 오가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나 심사위원으로 오신 게스트가 정신적 고통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며 "배우 쿠니무라 준의 경우, 민감한 한일 문제에 관한 질문으로 인해 여러가지 오해와 억측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을 준비한 영화제의 입장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점 사과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사과했습니다. 이어 "영화제에서 정치적 의견이 오가는 것은 가능한 일이나 지나치게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는 게스트를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며 다시 한번 쿠니무라 준에게 사과를 전했습니다. 부산영화제 측의 공식 사과는 외신을 통해 세계 각국에도 알려졌습니다.

쿠니무라 준의 발언은 그의 소신을 담았습니다. 일본인 배우가 한국의 영화제에서 이 같은 정치적인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았겠지만, 쿠니무라 준은 이야기를 돌리거나 피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의 답변은 문제가 없습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질문이 논란이 됐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의 심사위원에게 이같은 질문을 한 것에 알게 된 대중이 분노했습니다. 물론, 영화제에서는 작품에 관련 없는 질문이나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질문도 오갈 수 있습니다. 지난해 영화제에 참석한 올리버 스톤 감독 역시 북핵 문제나 미투 문제에 대한 질문을 받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질문의 의도와 개연성입니다. 미국의 영화 감독에게, 당시 영화계의 화두였던 미투 문제나 미국의 많은 영화인들의 '화두'인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문제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의 배우에게 '욱일기'에 대해 질문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한일관계의 민감성이나, 그 기나긴 역사를 조금만 생각하더라고 이런 질문은 쉽게 할 수 없습니다. 쉬운 예로, 우리나라의 배우가 일본의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참석해서 한일관계에서 민감한 정치적 이슈에 대해 질문 받는다면 어떨까요. 이것은 초대한 게스트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대중이 궁금해하는 내용도 아닙니다.

기자회견은 취재진이 대중을 대신해서 참석자에게 질문하고, 참석자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소중한 자리입니다. 어떤 질문을 해야한다 혹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질문을 검증하거나, 미리 정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참석자도 보호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쿠니무라 준은 '곡성'으로 한국영화와 인연을 맺었고,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후 영화제에 대한 애정으로 심사위원으로까지 함께 한 소중한 손님입니다. 부산영화제측의 진심어린 사과로, 쿠니무라 준이 일본에 돌아가서 우익세력의 견제와 시달림을 받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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