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퍼스트맨', 짜릿하기보다 고통스러운 달을 향한 여정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10.14 13:00 / 조회 :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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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퍼스트맨' 포스터


달에 발을 디딘 최초의 인류, 닐 암스트롱은 말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약진이다." '라라랜드' 다미엔 셔젤 감독과 라이언 고슬링이 다시 뭉친 닐 암스트롱 이야기, 영화 '퍼스트맨'은 위대한 약진을 위해 어느 인간이 옮겨야 했던 걸음들을 짚는다. 냉전 속에서 더 더 높은 곳으로 향하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 한복판에 있던 어느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의 여정으로 관객을 이끈다.

유니버설 픽쳐스와 드림웍스의 로고가 지나갈 때부터 시작되는 기분 나쁜 진동음은 그대로 영화의 시작과 이어진다. 폐소공포를 유발하는 자그마한 조종실 안엔 진동과 바람소리, 이따금 이어지는 교신뿐. 밖을 향한 두 개의 창이 이 곳이 하늘 어디쯤이라는 걸 알려준다. 이윽고 찾아온 고요와 함께 대기의 경계가 조종사의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내 비행기는 땅을 향해 곤두박질을 시작한다.

1961년 미국 캘리포니아 모하비 사막에서 닐 암스트롱이 탄 비행기가 대기권 바깥까지 날아올랐다 모하비 사막에 불시착하는 중이다. 생사를 가르는 순간을 담은 압도적인 오프닝 시퀀스는 '퍼스트맨'의 자기소개이자 안내다. '라라랜드' 콤비의 달나라 정복 블록버스터를 감상하는 대신,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닐 암스트롱 1인칭 시점의 여정을 체험하게 될 것임을 알리는.

'퍼스트맨'은 "기계는 잘 다루는데 집중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던 파일럿 겸 엔지니어 닐 암스트롱이 결국 달에 첫 발을 디디기까지를 시간순으로 담는다. 1962년 우주비행사를 선발에 응시한 그는 1966년 제미니8호를 타고 최초의 지구 궤도 우주선 도킹에 성공하고, 1969년 7월 21일 아폴로11호 선장으로서 달의 표면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겼다. 영화는 그 행간을 세밀화처럼 채운다. 달을 사이에 둔 미-소 우주전쟁의 클라이막스가 한 인간을 통해 그려진다.

달을 향한 길은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으며 수없는 죽음의 계단을 밟고 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최초'란 수식어에 가려져 있던 닐 암스트롱이란 인간도 함께 드러난다. 영화가 주목한 건 그의 위대한 업적이나 천재적 조종실력이 아니라 그의 정서다.

그는 달에 가져가고 싶은 것을 묻는 질문에 "연료"라 대답할 만큼 목표에 몰두하며, 걸핏하면 동료를 쏘아붙이고, 해야 하는 말만 짧게 하는 남자다. 하지만 그는 인류 최초 달 정복이란 캐치프레이즈에 들뜬 도전자나 위험을 즐기는 모험가가 아니다. '퍼스트맨'은 닐 암스트롱을 엄습한 죽음과 싸우며 공포를 견디는 평범한 인간으로 묘사했다. 기어이 당도한 달 또한 철저히 그의 시선에서 그렸다. 환희도, 환호도 없이 적막뿐인 그 곳은 닐 암스트롱의 숨소리와 검은 고요의 바다만이 가득하다. 감독은 성조기를 달에 꽂는 상징적 장면조차 과감히 생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바지 달 착륙신은 이론이 없을 '퍼스트맨'의 클라이막스다. 아이맥스가 진정 제 몫을 한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1.43대1 거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영상, 거친 질감을 깨끗이 지워버린 선명한 화질은 달에 간 인간과 함께 새로운 세계가 열렸음을 일깨워준다. 절로 숨을 죽이게 된다.

'퍼스트맨'은 주인공과 함께 달을 밟는 듯한, 전에 없는 우주영화이자 영웅담이다. 그 여정은 짜릿하기보다 고통스럽지만, 밀도 높은 영화적 체험임에 틀림없다. '위플래쉬', '라라랜드' 두 편의 영화로 할리우드의 선두주자에 떠오른 데미언 셔젤 감독은 전혀 다른 장르와 분위기에서도 유감없이 재능을 발휘한다. 절제된 대사, 귀가 먹먹해지는 소음, 긴장감 가득한 침묵 사이에 흐르는 아름답고도 쓸쓸한 선율은 감독과 오랜 호흡을 맞춰 온 저스틴 허위츠 음악감독의 솜씨다.

집념의 사내로 돌아온 라이언 고슬링은 흔들림 없는 두 눈으로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굳은 표정에 깊은 상실감을 숨긴 채 묵묵히 길을 재촉하는 라이언 고슬링의 닐 암스트롱은 달에 첫 발을 디딘 지구인이 될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퍼스트맨'은 아폴로 11호 달 착륙이 거짓이라는 음모론에 대한 할리우드식 반박 같기도 하다.

개봉 10월 18일. 러닝타임 141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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