욱일기·판빙빙, 누가 부산영화제에 논란을 덮어씌우는가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부산=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10.06 09:00 / 조회 : 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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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배우 쿠니무라 준과 중국배우 바이바이 허가 5일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기자회견에서 욱일기 논란과 판빙빙 사건에 대해 질문을 받고 고민하고 있다/사진=김휘선 기자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이 전범기인 '욱일기'를 달겠다고 해서 비판받고 있는데 일본인 배우로서 입장이 궁금하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여배우들로서 판빙빙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5일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나온 질문들입니다. 욱일기 질문은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 기자간담회에서, 핀빙빙 질문은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중국영화 '초연' 기자간담회에서 나왔습니다.

진보 성향인 오마이뉴스 기자가 뉴커런츠 심사위원으로 이번 영화제를 찾은 일본배우 쿠니무라 준에게 욱일기 논란에 대해 물었습니다. 쿠니무라 준은 '곡성'으로 한국에 잘 알려졌죠.

쿠니무라 준은 질문을 받자 "아직 이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괜찮다면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정중하게 되물었습니다. 설명을 들은 쿠니무라 준은 "욱일기가 일본 해상 자위대의 전통 깃발이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또 한국 국민들이 이 깃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는 욱일기가 전통이기 때문에 굽히지 않을것이라고 했지만 이런 부분은 일본이 한국의 마음을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일본 정부는 비단 욱일기 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에서도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문제는 배우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초연' 기자간담회에선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초연'은 홍콩 뉴웨이브의 대표 주자인 관금붕 감독이 오랜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중국에서 투자한 중국영화지만 홍콩을 배경으로 찍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 관금붕 감독과 엔지 치우, 정수문, 량융치, 바이바이 허 등이 배우들이 참석했습니다. 5명은 기자간담회에서 '초연'에 대한 진지한 질문과 답을 주고 받았습니다.

판빙빙에 대한 질문은 마지막에 나왔습니다. 탈세 논란이 불거진 뒤 잠적설, 감금설, 망명설 등 여러 설들로 전 세계 관심사로 떠올랐다가 최근 1450억원 벌금을 물기로 한 판빙빙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의 백인 중년 남성 기자가 물었습니다.

배우들과 감독은 답을 하기 곤란하다고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랬더니 이 백인 기자는 다시 마이크를 잡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여배우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건인데 왜 답을 하지 않느냐"고 재차 물었습니다.

왜 질문에 답을 하지 않는냐는 질문을 받자 관금붕 감독과 배우들은 다시 의견을 주고받더군요. 이윽고 바이바이 허가 통역에게 "판빙빙 사건은 개인적인 사건이고 다른 사람의 일이라 대답하기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관금붕 감독이 받아 "바이바이허가 말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일이라 답하기 곤란하다"며 "더욱이 바이바이허를 제외한 다른 세 배우는 홍콩에서 주로 활동하기에 중국 대륙의 시스템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에 답하기 더 곤란하다"고 말했습니다. 참고로 관금붕 감독은 홍콩 사람입니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부터 홍콩에서 영화를 찍어 온 사람입니다.

기자의 역할 중 하나는 독자를 대신해 궁금한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욱일기 논란이나 판빙빙 사건이나 독자의 궁금증 중 하나인 것 분명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배우들이 그 사건들의 이해 당사자일지 의문입니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거나 그 사람의 답이 초미의 관심사일 때는 당연히 질문을 해야겠죠. 그건 세계 어느 언론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2월에 안젤리나 졸리가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친선대사로 이라크를 방문했습니다.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 CNN기자는 이라크 난민들의 상황에 대해 묻다가 졸리에게 "임신한 게 사실이냐"고 질문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선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 사이에서 쌍둥이를 임신한 게 맞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습니다. 졸리는 그동안 임신 사실에 일절 답을 안했습니다. 안젤리나 졸리는 임신 사실을 묻는 기자 질문에 "CNN도 그런 질문을 하냐"고 응수했습니다. 전통을 지키라고도 했죠. 이라크 난민들의 상황을 살피려 왔는데 CNN이 그런 질문을 하냐는 걸 재치있게 답한 것입니다. 졸리의 답이 걸작입니다만, 독자를 대신해 궁금증을 묻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 장소가 이라크라는 게 문제였지만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쿠니무라 준에게 욱일기 문제를, '초연' 감독과 배우들에게 판빙빙 사건을 묻는 건 적절했을까요? 장소는 적합했고, 질문을 받는 사람들은 그 사건들에 이해 당사자일까요? 아니면 그 사람들이 그 질문에 어떤 답을 할지가 초미의 관심사였을까요? 전형적으로 답을 정해놓고 던진 질문들입니다.

쿠니무라 준이 신념을 담아 답했다고 하더라도, 마냥 박수칠만한 일은 아닙니다.

판빙빙 질문을 한 백인 기자는 '초연' 기자회견이 끝나자 바로 자리를 떴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곧장 이번 영화제 갈라프레젠테이션 초청작인 장률 감독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이 미국 기자는 '군산' 기자회견은 지켜보지 않고 자리를 떴습니다. 홍콩 출신 감독과 홍콩과 중국 출신 여배우들에게 판빙빙 질문을 하는 것만 관심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각 나라에 정치적인 현안이 있을 때마다, 한국과 관련이 있을 때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해외 영화인들에게 일일이 그 입장을 물어야 할 일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그런 질문들이야말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정치색으로, 논란으로 물들이는 일일 것입니다. 때로는 필요하지만, 때로는 부적절합니다. 정답은 늘 멀리 있고, 진실은 늘 가까이 있는 법입니다. 나에게 이로운 것만 정의라면, 그 정의는 참 외로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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