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영화 '청설'을 둘러싼 첨예한 갈등..왜?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9.30 10:48 / 조회 : 5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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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영화 '청설' 재개봉을 놓고 영화수입배급사 협회가 이중계약이라며 상영 금지를 요청한 가운데 수입사가 이중계약이 아니라고 반박하며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다.


대만영화 '청설' 재개봉을 놓고 수입배급사 간에 첨예한 갈등이 빚어졌다. 업계 질서를 흐뜨렸다는 협회측과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는 수입사가 대립하고 있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는 지난 28일 '청설'이 명백한 이중 수입 계약이라며 "해외 판매사의 배임적 이중 판매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며 이에 대한 국내 수입배급사의 과다경쟁에 심각한 문제제기를 한다"라고 공식입장을 배포했다.

협회는 회원사인 영화사 진진이 지난 5월24일 '청설' 제작사 트리아그램 필름(Triagram Films)과 판권 체결을 위한 세부사항 협의를 진행해 계약서 초안을 수령했다고 밝혔다. 딜 메모를 주고받았다는 것. 이후 공증까지 받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7월2일 트리아그램 필름이 '청설' 판권을 더 높은 가격으로 구매하려는 회사가 있기에 진진과 계약 조건을 변경하거나 취소하자고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진진은 이미 계약 진행이 공증까지 받아 합법적으로 완료됐다고 전했지만 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

진진은 영화사 오드가 '청설' 판권을 구매하려 대만 트리아그램 필름과 협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오드 측에 이미 공증된 계약서가 있다고 공문과 이메일을 통해 알렸다고 밝혔다.

협회 측은 "공증까지 완료한 작품을 국내 제3의 수입배급영화사에게 이중으로 판권계약을 진행한 대만회사를 규탄한다. 모든 합법적인 제재와 문제제기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협회는 오드에게 "사실관계를 공유했는데도 무리하게 계약진행을 단행해 동종업계 관계자로서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또 협회는 "납득할만한 당사자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청설' 개봉은 즉각 중지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 같은 협회의 입장 발표에 오드는 즉각 반박했다. 오드는 같은 날 오후 보도자료를 통해 진진으로부터 이중계약 위험성을 알게 됐을 때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판권계약서를 요청했지만 전달받지 못했고, 담당자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오드는 "저작권자에게 이미 진진과 대행회사인 헝가리 회사 아트리움과 계약이 취소됐다는 서류를 전달받았다"며 "이중계약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판단해 최종계약을 체결했다. 본 영화 수입에 있어 도덕적, 윤리적으로 어떤 부끄러운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협회가 회원사인 진진의 주장만 받아들이고, 비회원사인 오드의 주장은 외면했다며 "협회는 당사에 사실관계 확인이나 의견을 구하지 않은 채 회원사의 주장에만 기초하여 마치 당사가 이중계약을 추진한 것처럼 발표했다"고 반발했다.

오드는 "협회의 발표에는 진진과 헝가리 회사 간 체결된 계약이, 당사의 계약 체결 전 이미 취소되었다는 사실이 누락돼 있다. 이러한 경우를 이중계약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면서 "이중계약은 진진과 저작권자 사이의 사적 분쟁으로 법률상 해결할 문제이고, 정당하게 영화를 수입한 당사를 언론 보도의 방법으로 논쟁의 장으로 끌어들여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얼핏 '청설'을 둘러싼 논란은 협회가 회원사의 이익을 위해 비회원사인 작은 수입사를 규탄하는 것처럼 비친다. 실제 진진의 김난숙 대표는 영화수입배급사협회를 이끄는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렇지만 속내를 살피면 사정은 좀 다르다. 업계 질서를 교란한다는 수입사들간의 공통된 정서에 감정 싸움이 깔려있다.

'청설' 재개봉 판권을 먼저 구매하려 계약을 추진한 진진과 재개봉 판권을 구입한 오드, 양측의 주장은 사실관계가 맞다. 다만 양측의 설명에는 이른바 업계 질서가 빠져 있다.

통상적으로 수입사들은 해외 영화 판권을 구매할 때 어떤 회사가 저작권자와 딜메모(계약 조건을 명시한 일종의 약식 계약서)를 주고받으면, 그 회사의 우선권을 인정하는 관행이 있다. 딜 메모를 체결하기 전까지는 경쟁이 붙더라도 딜 메모 체결 이후에는 해당 영화가 아무리 탐이 나도 더 좋은 조건, 더 비싼 금액을 부르지 않는 게 이른바 업계의 상도덕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금액이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해외 바이어가 한국 수입사들을 우습게 본다는 이유다. 2016년에 영화수입배급사협회가 설립된 것도 이런 배경이 깔렸다. 당시 국내 메이저 배급사들이 해외영화 판권 구매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 같은 업계 관행이 흐트러졌다. 이에 중소수입사들이 위기감을 갖고 협회를 만들어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청설' 재계약 문제에 협회 차원에서 공식입장을 발표한 배경이다.

오드 김시내 대표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김시내 대표는 "협회가 비회원사인 오드의 입장은 전혀 확인하려 하지 않았다"면서 "이중계약이란 소리를 들었기에 계약 관계를 확인하려 했지만 진진이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만 회사에 문의했더니 아니라고 확인서를 보내줘서 계약을 진행했다"고 항변했다. 또 "이미 7월에 일어난 일을 2달이 지나서 영화 개봉을 앞두고 이렇게 협회 차원에서 입장을 발표한 걸 납득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왜 '청설'일까. '청설'은 지난 2010년 한국에서 개봉해 극장에서 불과 1만 6925명이 찾은 영화다. 재개봉을 한다고 해도 극장에서 얻을 수입은 크지 않다. 최근 대만 멜로영화 바람이 한국 극장가에서 불고 있지만, 거센 돌풍을 바랄 만한 영화는 아니다.

기타 판권 때문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나 한국 영화들은 VOD서비스가 실행하는 것과 동시에 큰 수입이 발생한 뒤 곧 줄어든다. 반면 몇몇 일본영화와 할리우드 멜로영화, 대만 멜로영화들은 VOD와 IPTV 등 2차 판권 수입이 꾸준히 이어지곤 한다. 최근에는 대만 영화들이 꾸준히 2차 판권 수입을 낸다. 재개봉 판권을 사는 건, 해외 바이어들이 2차 판권만 판매하는 게 아니기에 일괄적으로 판권을 사는 것이다. 극장에서 재개봉해 큰 수입이 나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2차 판권 수입이 꾸준히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침 '청설'은 한국에서 리메이크도 진행된다. 원작의 2차 판권 수입이 꾸준할 뿐더러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영화 수입업계에선 이번 '청설' 재개봉 공방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가뜩이나 작은 규모 외화들이 극장에서 설 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데다 2차 판권을 위한 경쟁이 더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터져 나온 사건인 탓이다. 더욱이 외부로 공개된 공방 속에서 수입업계 영업 비밀이 드러난 것도 부메랑으로 돌아올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상당하다. 이 같은 논란이 해외에 전해져 해외 바이어들이 한국 수입사들에 대한 신뢰가 줄어드는 게 아닐지 걱정하는 소리도 적잖다.

결국은 과다경쟁 탓이다. 전체 스크린은 적고, 개봉작은 늘어나고, 갈수록 흥행이 될 법한 영화들만 극장에서 더 많은 스크린을 차지하며 줄 세우는 일이 늘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돌파구로 2차 판권 시장을 겨냥할 수 밖에 없고, 그렇기에 더 많은 영화들을 사들이고, 그렇기에 개봉작과 재개봉작이 더 많아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 물밑에서 '청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런 싸움들이 많아지면 웃는 건 해외 바이어들 뿐이다. 구조적인 문제는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머리를 맞대며 하나씩 매듭을 풀어나가야 다 같이 살 길이 열린다. '청설' 재개봉을 둘러싼 잡음이 건설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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