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불발과 '버닝' 아카데미 韓후보작 선정..불투명함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9.10 18:00 / 조회 : 3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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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여름 즈음이다. 영진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출품작 선정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심사내용을 외부에 공개할 수 없다는 각서를 썼기에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결국 그해 한국영화 대표는 김태균 감독의 '맨발의 꿈'이 됐다. 당시 유력한 경쟁작은 이창동 감독의 '시'였다.

'시'는 그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돼 시나리오상을 받았다. 그렇지만 '시'가 정작 영진위 마스터영화 제작지원에서는 0점을 받아 탈락한데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에서도 떨어지자 이래저래 뒷말이 쏟아졌다. 영진위는 그간 아카데미 외국어상 한국후보 심사위원을 선정작 발표와 동시에 공개했지만 뒷말이 쏟아지자 2012년부터 비공개로 바꿨다.

사실 심사는 심사위원을 선정하면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심사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구성비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시'가 떨어지고 '맨발의 꿈'이 확정될 때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격론이 오갔다. 의아스런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다른 영화들은 아카데미 후보작이 돼야 하는 이유와 설명서, 마케팅 관련 내용을 담은 서류가 두툼했던 반면 '맨발의 꿈'은 달랑 한 장이 전부였다. 더욱이 '맨발의 꿈'은 다른 출품작들과 달리 출품했을 당시 미국 개봉 확정이 안된 상태였다. 미국 개봉을 추진한다는 내용이 담긴 서류만 한 장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맨발의 꿈'이 최종적으로 확정됐다.

심사 내용과 심사위원들 공개가 사후에 투명해야 하는 이유다. 사전에 심사위원 명단이 공개되면 오해의 소지가 분명하지만, 사후에는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투명이 책임을 주기 때문이다. 투명이 신뢰를 주기 때문이다.

2016년에도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출품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 대신 김지운 감독의 '밀정'이 후보작으로 선정되자 이래저래 말들이 많았다. '아가씨'가 미국 여러 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휩쓴 탓이다. '아가씨'가 '밀정'보다 좋은 영화라는 것보단, 심사위원이 누구인지,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탓이다.

영진위는 비난이 쇄도하자 2017년에는 '택시운전사'를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선정한 뒤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했다.

올해는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한국영화 출품작으로 이창동 감독의 '버닝'이 선정됐다. '1987' '공작' '남한산성' 등 10편의 출품작 중 심사위원들이 선정한 결과다.

하지만 영진위는 올해는 다시 심사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다. 10편의 출품작이 어떤 영화들이었는지조차 공개하지 않았다. 영진위는 기자에게 "심사위원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달라진 게 없다. 2012년부터 심사위원을 비공개로 하면서 내세운 이유도 "심사위원들이 공개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였다.

'버닝' 발표 절차도 석연찮다. 통상 영진위는 선정작 결과를 홈페이지에 발표하는 것과 동시에 보도자료를 배포한다. 이번에는 지난 7일 영진위 홈페이지에 결과만 올려놨을 뿐 보도자료를 배포하지 않았다. 미국 매체 버라이어티에 먼저 기사가 났다. 영진위에서 '버닝' 해외 세일즈사에 결과를 먼저 통보했고, 그 결과 버라이어티에서 기사가 나왔다. 사전에 한국 언론에서 영진위에 문의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영진위는 오석근 감독이 위원장이 된 뒤 지난 정권에서 문화 블랙리스트의 실행 기관이었다며 반성한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와 피해 사례를 조사하겠다며 공개 사과했다.

옳은 일이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 투명성은 과거와 비해 달라진 게 없다. 바뀐 정권 입맛에 맞춘 형태로 일을 할 뿐이다.

오석근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래 영진위는 한국영화 산업의 위기 원인으로 다양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란 걸 대전제로 내세우고 있다. 대기업의 수직계열화와 이로 인한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논의를 하고 있다. 방향은 옳더라도 방식은 과거와 다를 바 없다.

문제는 투명성이다. 영진위는 매월 한국영화 산업 분석자료를 발표한다. 매월 전년 대비 같은 달 관객수 추이와 수익률 추이를 발표한다. 그 결과를 분석한다. 올해 분석자료 주된 키워드는 다양성이다. 다양한 한국영화들이 나왔을 경우 한국영화 점유율이 올라가고 전체 파이가 커진다는 분석이 주류를 이룬다. 이를 위해 통계가 취사선택된다.

7월 한국영화 산업 분석자료에선 여름 시장이 대작 위주가 되면서 '인랑' 같은 영화가 흥행이 실패하자 한국영화 점유율이 떨어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작 7월 총관객수가 전년 동월 대비 150만명 가량 줄었다는 건 슬그머니 뺐다. 그간 영진위는 산업분석 자료를 발표할 땐 전년 동월 대비 총관객수 추이를 늘 넣었다. 자료를 취사선택해 입맛에 맞는 부분만 강조한 것이다. 최고 성수기인 여름 극장가에서 총관객이 줄어 결과적으로 한국영화 산업에 위기를 맞고 있다는 내용은 뺀 것이다. 이에 대해 영진위 측은 "본문에는 뺐지만 첨부자료에는 총 관객수를 넣었다. 그때 그때 강조 부분에 따라 달라진 것"이라고 해명했다.

투명하지 않다. 불투명한 건 하나둘이 아니다.

현재 영진위에선 스크린 상한제 실시를 놓고 논의에 한창이다. 스크린 독과점을 막기 위해 한 영화당 스크린 상한선을 두는 정책이다. 스크린 상한제 찬반 여부를 떠나 이런 논의는 공론화돼야 한다. 일괄 규제인지, 탄력적 규제인지, 어떤 방식으로 논의가 되고 있는지, 공론화가 필요하다. 한국은 스크린 수에 비해 개봉 편수가 너무 많다. 스크린 상한제를 실시해 한 영화가 장기 흥행할 경우 개봉조차 못하는 영화들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그렇기에 스크린 상한제가 실시되면 개봉 영화 편수 조정은 어떻게 될지, 지원책은 어떻게 될지, 규제와 함께 지원책은 같이 이뤄지는지 등등에 영화 산업 각 주체들이 모여 상의하는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이 논의들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 7월 '신과 함께' 제작사 덱스트 스튜디오를 방문해 노동시간 단축 현장을 점검하고 영화산업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다. 도 장관은 이 자리에서 노동시간 단축으로 '과로사회 탈출', '일과 생활의 균형 보장', '고용 증가' 등을 꾀하는 '근로기준법' 개정 취지를 설명하고 노동시간 단축 안착 방안과 애로사항 등을 청취했다. 이렇게 외부에 공표했다.

이에 대해 덱스터 스튜디오 대표인 김용화 감독은 기자에게 "당시 장관께 주 52시간 근무는 당연히 찬성한다. 그렇지만 업무 성격상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하면 보완 제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고용탄력성이 전무하다. 예컨대 미국에선 평소에서 300여명 내외의 VFX 회사가 '어벤져스' 같은 영화에 돌입하면 그 기간 동안 단기 인원을 몇천명씩 고용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의견을 전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용화 감독은 "덱스터는 주 5일 근무를 일찌감치 실시하고 최저임금 인상에 맞춰서 회사를 꾸려왔다. 그러다보니 지난해 상당한 적자를 봤다. 지금처럼은 회사를 꾸려 갈 수가 없다. OECD 회원국 평균 정도의 고용 탄력성이 보완돼야 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입맛에 맞춰 자료를 취사선택한다면, 입맛에 맞는 내용만 외부에 공개한다면,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방향성이 옳은 정책이라도 힘을 잃기 마련이다. 작은 것부터 투명하지 않으면, 큰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데이터에서 멘탈을 찾고, 멘탈에서 데이터를 읽는 법이다.

영진위가, 영화정책이, 작은 것부터 투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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