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스트리머가 사랑하는 ‘스피드런’의 세계

이덕규 객원기자 / 입력 : 2018.08.1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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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임을 할 때도 드러나는 부분인데, 제작자가 의도한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채 정석대로 플레이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부러 '병맛' 플레이를 하는 유저도 있죠. 가끔은 '인성질'을 시전하는 유저도 볼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다양한 플레이 방식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문화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그중에는 스피드런이 있습니다. 스피드런이란 가능한 빠르게 게임을 클리어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 역시 유저마다 플레이 방식이 다양하죠.


"여기서는 점프로 캔슬하면서 총을 쏘면서 떨어집니다. 앞에 있는 모덴군 제거하신 다음에 점프, 폭탄. 차를 제거하죠. 여기서 쭉 총 쏘면서 전진하다 보면 앞에 포병이 포를 쏴요. 점프로 피해줍니다 … 그다음에 오른쪽에 있는 트럭 제거한 다음에 여기서 점프 폭탄 3개 싸쏴! 이렇게 하시면 돼요. 어때요? 정말 쉽죠? 그냥 다 외.우.세.요."

- BJ대정령, 메탈슬러그 2 스피드런 中-

사실 스피드런은 오래전부터 유저들 사이에서 유행했습니다. 2003년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퀀스 브레이킹(Sequence Breaking)'이라는 용어가 처음 사용됐는데, 빠른 클리어를 위해 게임 내 발생하는 이벤트 영상이나 컷신을 스킵 하거나 기존 루트가 아닌 우회하는 방법 등을 '시퀀스 브레이킹'이라고 합니다.


당시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한 유저는 '메트로이드 프라임'의 아이템 획득과 관련된 글을 게시했습니다. 중력 슈트와 아이스빔 아이템을 얻으려면 이 게임에 등장하는 '서다스(Thardus)'라는 보스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는데, 이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죠.

제작자가 의도한 '게임의 흐름(Sequence)'을 유저들이 '무너트려(Break)' 더 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난 겁니다. 현재 스피드런의 대부분이 이와 유사하다는 점을 보아 '시퀀스 브레이킹'이 모체가 되었음을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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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이드 프라임’의 보스 ‘서다스’


스피드런은 대표적으로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100% 스피드런'으로 가능한 빠르게 게임 내 사이드 퀘스트, 수집 요소나 아이템 등 할 수 있는 모든 콘텐츠를 100% 완료하는 방식이죠. 가장 정석대로인 플레이 방법으로 그만큼 시간이 많이 걸리는 편입니다.

이 시스템에서 파생된 'Low% 스피드런'도 있는데, 한계를 넘어선 플레이 방식이죠.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아이템 획득과 업그레이드 등 게임 진행을 위해 '최소한(Low)'의 기능만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슈퍼마리오'의 경우 파워업 기능만 제외한다던가 '젤다'에서는 일부 적들에게만 검을 사용하는 등 약간 변태적인 면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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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본’ 고인물의 놀라운(…) 맨몸 플레이 (이미지 출처: ‘강한달’ 유튜브 채널)


두 번째로는 'Any% 스피드런'이 있습니다. 100%와는 반대로 추가적인 콘텐츠의 클리어 유무와 상관없이 오로지 메인 퀘스트만을 빠르게 클리어하는 것이 목적이죠. 따라서 클리어 달성률이 '얼마가 나오느냐(Any)'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Any% 방식이 버그와 글리치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빠르게 클리어하는 방식이라고도 말하는 유저도 있습니다. 사실, 버그와 글리치도 허용되는 수준에서 사용이 가능하긴 하다만 보통 'TAS(Tool-Assistance Speedrun)' 방식에서 자주 사용하죠.

'TAS'는 말 그대로 외부 툴의 도움을 받아 클리어하는 스피드런입니다. '에뮬레이터 조작'을 통해 강제 세이브/로드를 활용하거나 게임 속도 조절, 기존에 불가능했던 조작 방법을 활용해 캐릭터의 비정상적인 움직임을 구현합니다.

혹은 게임 데이터의 허점을 파고들어 단 '몇 초 만에' 게임을 클리어하는 방식도 나왔죠. 일반 스피드런보다는 차원이 다른 클리어 속도를 보여주기 때문에 무려 '프레임 단위'로 순위 경쟁을 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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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소울’의 경우, 100% 스피드런은 모든 보스를 잡지만 Any%은 필수 보스만 제거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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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치 기능을 이용한 ‘포탈’ 스피드런, 이 세상 게임이 아닌 듯


사실 글리치나 버그를 활용한 플레이도 '시퀀스 브레이킹'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글리치도 게임의 스토리를 일부 스킵 하면서 바로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죠.

오래전에 한 유저가 '슈퍼마리오 64'를 16개 별만을 가지고서 클리어 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보통 최종 보스인 '쿠퍼'에게 도전하려면 적어도 70~120개의 별을 모아야 하는데, 이 유저는 글리치를 이용해 막힌 벽도 뚫고 가며 빠르게 진행한 것이죠. 나중에는 단 한 개의 별도 먹지 않고 클리어 한 유저까지 등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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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마리오 64’ 노 스타(No Star) 스피드런


솔직히 기록을 세운다는 것이 자기만족일 수는 있겠죠. 그러나 유저들 사이에서 만들어진 스피드런 문화는 클리어했던 게임을 다시 붙잡게 만들며, 경쟁과 도전을 통해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데 의의가 있습니다. 게임이라는 건 정말 재밌지 않고서야 한 번 클리어하고 묵혀두기 마련이니까요.

예전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를 했지만, 지금은 스트리밍 플랫폼이 활성화가 되어 유튜브나 트위치 등을 통해 스피드런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예 스피드런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들도 등장하면서 이제는 하나의 방송 콘텐츠로 자리 잡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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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콘텐츠로 자리잡은 스피드런


유저들을 통해 문화가 형성된다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소소한 재미를 줄 수 있는 다채로운 콘텐츠들이 생겨났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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