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2002년의 그' 김승현, "AG 농구, 어게인 2014 기대한다"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8.10 16:48 / 조회 : 1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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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26일 결혼식장에선 김승현-한정원 커플./사진= 김승현 제공


“아무래도 키 크고 기동력마저 좋은 센터 저우치(휴스턴)와 포워드 딩옌위항(댈러스)을 앞세운 중국이 위협적이죠. 하지만 협력수비만 잘되면 승산은 충분하다고 봅니다. 기술은 우리가 아시아권에선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14일 인도네시아전을 시작으로 아시안게임 일정을 시작하는 남자농구대표팀에 대해 MBC스포츠플러스 김승현(40) 해설위원은 우승 전망을 높게 내다봤다. 김위원은 “현역 중 농구를 제일 잘 알고 하는 오세근 등이 부상으로 빠진 것은 아쉽지만 라건아(라틀리프), 김선형 등 우리 멤버도 아주 좋습니다. 선수들 간 의사소통만 활발히 이뤄진다면 결승엔 쉽게 오를 것 같습니다. 필리핀이 난투극으로 정상 전력이 아닌 채로 출전하는 것도 호재입니다”고 평했다. 남북단일팀으로 출전하는 여자대표팀에 대해서도 “라스베이거스 에이시스의 박지수가 참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키 크고(181cm) 득점력 좋은 로숙영 등 북한 선수들이 우리 대표팀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준다면 기대 이상의 호성적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촌평했다.

김승현 위원은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남녀 모두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다면 사그러 들어가는 국내 농구의 인기를 되살릴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며 “사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서 구기 종목 첫 남녀동반 금을 땄을 때 협회건 구단이건 활발하게 스타를 키우고 팬덤을 육성하는 마케팅을 전개했으면 국내농구 붐업에 큰 보탬이 됐을 수 있었을건데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날렸습니다”며 아쉬워했다.

김승현 위원에게 아시안게임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2002년 기적같은 금메달의 주인공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김위원 스스로도 자신의 인생경기로 당시 결승에서 만난 중국전을 거론한다.

“당시 준결승서 이상민형이 극적인 버저비터 3점 슛을 넣어 결승에 올라갔었죠. 사실 은메달만으로도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중국은 못이긴다고 지레짐작들 했죠. 근데 경기 시작하니까 형들이 분위기를 싹 바꿔서 투지를 막 보이더라구요. (서)장훈이 형은 야오밍 바짓가랑이 잡고 늘어지기도 하고.. 저는 마지막 쿼터 3분 15초 남겨놓고 들어갔는데 이미 15점인가 지고 있는 상황였죠. 근데 벤치에서 중국선수들 플레이를 죽 지켜보는데 특별할 게 없더라구요. 내심 ‘다 뺏어버리겠다’ 벼르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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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선수 김승현은 빠른 스피드, 현란한 드리블, 기막힌 패싱력의 3박자를 갖춘 천재였다.


그렇게 들어간 김승현은 결정적인 스틸 2개를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고 연장전까지 총 9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역전승의 발판을 만들며 MVP를 차지한다. 1982년 뉴델리 이후 20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였다.

“코트에 들어서니 (현)주엽형이 ‘나를 많이 활용하라’고 주문을 주더군요. 주엽이형 상대수비수가 득점만 할 줄 알지 수비는 안됐거든요. 픽-앤-롤도 많이 하고 주엽이 형이 성공을 많이 시켜 이길 수 있었죠. 일등공신은 주엽이 형이고 저 같은 경우는 중국 측에서 저를 아예 몰랐었기 때문에 허를 찌를 수 있었죠. 뒷 얘기인데 아시안게임 이후 국제대회 나가봤더니 중국이 저처럼 작고 빠른 선수들을 기용 하더라구요. 제 해석으로는 아마 저를 의식한 게 아닌가 싶었죠. 하하”

인생경기에 얽힌 무용담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김승현. 그는 당대 최고의 테크니션이자 천재였다. 2001년 KBL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3순위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에 입단했을 때 ‘작은 키(176cm)에 발만 빠른 가드가 과연 KBL에서 통할까’ 하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었다. 김승현은 데뷔 첫해 평균 12.2점 8.0어시스트 3.2스틸을 기록하며 팀의 통합우승을 이끄는 것으로 답했다. 어시스트 1위, 스틸 1위에 올랐고 베스트 5에도 선정됐으며, KBL 사상 최초로 신인왕과 MVP까지 싹쓸이했다. 작은 키지만 빠른 스피드와, 현란한 드리블, 기가 막힌 패싱 센스를 앞세워 만년 하위권 오리온스를 순식간에 KBL의 강호이자 전국구 인기 구단으로 만들었다. 이후 김승현은 2003~2004시즌부터 2005~2006시즌까지 3년연속 KBL 베스트 5에 드는 활약을 보이며 팀을 이끌었다.

하지만 아름다우면서 빨리 지는 것은 봄날의 꽃만은 아니었다. 2007~2008시즌 울산과의 개막전에서 승리하고 대구로 이동했을 때 디스크가 발병했다. 본인은 수술을 원했지만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던 팀은 수술을 만류했다. 당시 오리온스는 이충희 감독이 숙고 끝에 고른 용병 2명을 개막을 앞둔 시점에서 무릎인대가 나가는 부상으로 잃고 부랴부랴 대체용병을 구해 시즌을 맞은 상황이었다. “저는 아픈걸 못참는 편이예요. 나중에 목디스크도 수술했잖아요.(수술자국을 보여준다) 근데 구단에서 지켜보자더라구요. 별 이상한 치료 다 받았는데 팀이 11연패 빠지고 이충희 감독님 사임하고 김상식 감독님이 부임했죠. 저도 한 달 만에 허리보호대하고 참고 뛰었어요. 근데 시즌 종료 후에도 팀에서 수술을 만류하더군요.” 결국 허리디스크는 이제 만성으로 진행되어 수술도 못하는 상황이란다.

그 부상이 시발점이 되어 2008~2009시즌 39경기 출장에 그치고, 이면계약서 파동으로 징계를 먹고, 구단과의 민사소송이 이어지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 삼성 썬더스로 이적된다. 그렇게 2011년 12월 7일 잠실 전자랜드 전에 나서기까지 김승현의 코트 복귀에는 641일이 걸렸다. 삼성에서도 당시 김동광 감독과의 스타일 차이 탓인지 기회를 제대로 부여받지 못하다 이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2014년 5월 15일 현역은퇴한다. 천재의 아쉬운 퇴장였다.

그리고 2014년부터 해설위원으로 농구를 지켜왔다. 그리고 지난 5월 26일 그의 인생에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9살 연하의 탤런트 한정원(본명 이유미)을 반려로 맞이했다. 40년 이어진 홀로살이를 매듭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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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홀로살이를 매듭짓고 나니 또다른 행복이 찾아왔다./사진= 김승현 제공


1년 전 여름 그를 인터뷰한 바 있다. 그때 우리 나이 마흔에 미혼인 이유에 대해 "농구해설의 묘미와 현장복귀의 꿈 등 농구가 아직까지는 인생의 주안점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었다. “아, 그 가을에 만났어요. 아는 여성분이 골프 쪽 사업을 하고 싶다고 하셔서 저희 대표님을 소개해주려고 라운딩 자리를 마련했는데 셋이 칠 수 없어 그분이 친한 동생을 데려왔죠. 지금 아내였습니다.”

2001년 영화 ‘화산고’를 통해 데뷔한 한정원은 영화 ‘미쓰 홍당무’, ‘하늘과바다’ ‘가문의 영광5’ 등과 드라마 ’제 3병원’, ‘자명고’, ‘트라이앵글’ 등에 출연한 바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그래도 만나야 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 우연한 만남이었고 대수롭지 않은 만남일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양가 상견례 전까지 6개월을 거의 매일 만났단다. 매일 할 얘기가 있었고 매일이 즐거웠고 편했다 한다. 취미조차 같았다. 90타 언저리를 치며 한참 골프에 재미를 붙여가던 한정원에게 컨디션 좋으면 언더도 치는 김승현은 매력적인 강사였다. 혼자 늙어가는 마흔 살 아들과 서른 넘긴 외동딸이란 조합도 양가가 팔 걷어 부치게 만들었다. 그렇게 인연일 때 세상은 의외로 좁다.

용산역 인근에 51평 아파트를 전세 얻어 신접살림을 꾸린 두 사람은 생활 패턴도 비슷하다. 연기 대신 온라인 의류사업에 매달리고 있는 한정원은 사무실은 압구정 로데오골목에 있지만 출퇴근으로부터 자유롭다. 해설위원의 일상도 마찬가지다보니 신혼 3개월 오붓할 수 있는 시간은 이래저래 충분하다. 2세 계획에 대해 김승현은 “자연스럽게 맞이할 생각입니다”고 말한다. 첫 만남 이후 한 번도 싸워본 적이 없다는 두 사람이고 보면 조만간 좋은 소식을 전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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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부터 골프는 김승현부부의 중요한 공통분모였다./사진= 김승현 제공


‘가족’이란 지향점이 하나 더 생겼지만 농구가 인생의 주안점인건 여전하다고 밝힌다. 지도자로 현장복귀의 꿈을 밝히고 있는 김승현은 “제가 운이 좋아 송도중시절 故전규삼 할아버지의 지도를 받을 수 있었어요. 몸만들기와 기본기, 그리고 창의적인 플레이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제 개인적으로도 많이 연구했고 충분한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언젠가 제가 맡을 팀은 선수들이 재밌게 플레이할 수 있는 팀이자 관중들이 재밌게 관전할 수 있는 팀이 될 것입니다.”

팀을 맡는 건 나중 일이다. 지금의 김승현은 당장 그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팔 걷어부치고 나섰다. 그가 가장 아쉬워하고 가장 시급하다고 보는 것이 바로 농구의 인기 회복. 특히 이번 아시안게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그리고 2020년 도쿄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도 한 ‘3대3 농구’의 붐 업이 선결 과제라 한다.

그는 우지원, 김주성, 이승준, 이동준 등의 옛 스타들과 레전드팀을 꾸려 전국 12개 도시를 돌며 일반인들과 3대3 농구대결을 벌이는 ‘대농여지도 프로젝트’(맘스터치 후원)에 참여한다. “생활체육쪽 아마추어들을 주로 촬영하는 농구잡지팀이 있어요. 그분들 하시는 말씀이 3대3 농구로 해선 저희가 1승도 못올릴 거라는 거예요. 우리 스스로는 그래도 레전드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말이죠. 우리 몸이 이제는 아니라고 믿는 기색이더라구요. 말이 필요 없죠. 15일 원주부터 순회 시작하니까 보여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왜 레전드팀인지.”

장난스런 말맺음. 당장의 3대3 농구도 그렇지만 언젠가 그가 호언한 재밌는 농구를 하는 김승현의 팀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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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3 농구 붐을 위해 진행되는 '대농여지도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레전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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