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인랑' 지극히 한국적인 김지운의 인간늑대 ①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7.23 09:25 / 조회 : 2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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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랑'은 전설이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이 '공각기동대'에 이어 내놓은 '인랑'은 전 세계 마니아들을 열광시켰다. 암울한 세계관. 극심한 계급 차이. 고뇌하는 인간병기와 빨간 망토 모티프.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강렬한 비주얼과 감성으로 애니메이션 팬들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김지운 감독이 20년 만에 그 전설을 실사영화로 만들었다. 도전이거나 만용이거나.

중국과 일본, 미국과 러시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정세가 요동친다. 위기를 느낀 남북한 정부는 통일을 결정하고 5개년 준비계획을 세운다. 통일 한국이 아시아의 강대국이 될 것을 우려한 열강들은, 경제제재를 가한다.

극심한 경제난으로 혼란이 거세진다. 한국에선 강제 통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날로 커진다. 그 틈을 타 통일을 반대하는 무장 테러단체 섹트가 암약한다. 섹트를 진압하려 대통령 직속 경찰 특수조직 특기대가 창설, 무력 진압에 나선다.

하지만 특기대가 비무장 여고생을 살해하는 피의 금요일 사건이 벌어지자 반대 여론이 거세진다. 정보기관 공안부는 반대 여론에 힘입어 특기대를 말살하고 여세를 몰아 권력을 쥐려 한다.


그러던 어느날. 서울 광화문 앞. "강제 통일 반대"를 외치는 시위대와 경찰의 대립이 한창이다. 화염병이 난무하는데 경찰은 제대로 대응조차 못한다. 그런 시위대 속에서 섹트가 등장, 폭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한다.

섹트가 등장하길 기다렸다는 듯 특기대가 비로소 나타난다. 특기대의 등장에 후퇴하는 섹트 대원들. 도심 지하에 미로처럼 뻗어있는 수로로 이동한다. 그런 섹트를 쫓는 임중경을 비롯한 특기대원들. 강철갑옷 같은 강화복을 입고, 늑대 눈동자처럼 붉게 빛나는 스코프를 쓴 채 적을 쫓는다. 하나 둘 섹트를 몰살하는 특기대원들.

그 와중에 임중경은 폭탄을 운반하던 빨간 망토를 뒤집어쓴 여고생을 발견한다. 섹트는 검문을 피하기 위해 미성년자들을 빨간 망토라 부르며 폭탄 운반책으로 이용해왔다.

소녀는 임중경에 발견되자 스스로 폭탄을 터뜨려 자폭하려 한다. 그런 소녀를 제지하려던 임중경. 폭발에 휘말려 의식을 잃는다.

특기대에 대한 세상의 여론은 더욱 악화됐다. 섹트의 대장은 놓친 데다 미성년자가 죽었기 때문. 정국을 주도한 공안부는 특기대의 활동을 2주간 중단시킨다고 발표한다.

치료받던 임중경을 찾아온 공안대원 한상우. 과거 특기대 동기였던 그는 이제는 공안부 소속이다. 한상우는 임중경에게 소녀의 유품이라며 다이어리를 건넨다. 그녀의 유족인 친언니에게 유품을 전달해주라 한다. "내가 왜"라는 임중경에게 한상우는 "네가 마지막을 본 사람이니깐"이라고 말한다.

근신 중에 몰래 특기대 훈련소를 빠져나간 임중경. 남산 타워에서 소녀의 언니 이윤희를 만난다.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는 이윤희에게 임중경은 묘한 슬픔을 느낀다. 이윤희는 임중경에게 해피엔딩이 아닌 새드엔딩인 빨간 모자 이야기를 들려준다. 늑대가 빨간 모자를 잡아먹지만,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모르겠는 이야기. 임중경과 이윤희는 서로의 상처를 위로한다.

그런 두 사람을 둘러싸고, 공안부와 특기대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한상우를 위시로 한 공안부는 임중경과 이윤희의 만남을 이용해 이참에 특기대를 해체하려 한다. 특기대 소장 장진태는 그런 공안부와 임중경의 움직임을 쫓는다.

과연 임중경과 이윤희는 자신들을 둘러싼 음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김지운 감독은 전쟁에서 패한 1960년대 일본이라는 원작의 설정을, 통일을 앞둔 한국으로 바꿨다. 원작의 정적인 이야기를, 액션을 더해 동적으로 바꿨다. 실사화라기보단 상업적인 선택이다. 그러면서 결말을 바꿨다. 이 또한 상업적이고, 지극히 한국적인 선택이다.

이 선택은 절반은 옳았고, 절반은 안일했다. 어두우면서 거칠고 유려한 액션. 김지운 감독의 장기는 '인랑'에서도 십분발휘됐다. '인랑'의 시그니처라고 할만한 강화복을 입고 미로 같은 수로를 쫓으며 벌어지는 액션은 웅장하다. 비장하다. 맨몸으로 부딪히는 남산타워 액션과 추격신 등은 화려하다. 카메라와 달라붙어 있는 듯한 날것의 액션이 춤을 춘다. 그 속에서 배신과 음모, 여러 감성이 휘몰아친다. 이 선택은 적합했다.

반면 바뀐 결말로 치달으면서 톤앤매너가 바뀐다. 인간병기의 고독과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내몰린 사람의 만남이, 갑작스레 멜로로 바뀐다. 안일했다. 한국적인 선택이라고 하기엔 관객을 쉽게 봤다. 4분의 3까지 내달린 톤앤매너를 마지막에 무너뜨린다. 아쉽다.

임중경을 맡은 강동원은 이제 미모가 아니라 연기로 논해야 마땅하다. 맨얼굴을 드러내면서 보이는 감정보다 차라리 갑옷으로 얼굴을 가린 게 더 감정이 느껴진다. 딕션은 최악이다.

이윤희를 맡은 한효주는, 그녀의 필모그라피 중 가장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몇 번이나 바뀌는 캐릭터에서 중심을 지켜가며 극을 이끌었다. 절반까지는 분명히 한효주가 '인랑'의 주인공이다.

한상우를 맡은 김무열과 장진태를 맡은 정우성은, 기능적으로 영화에 일조했다. 등장은 짧지만 한예리는 제 몫을 다했다. 특기대원으로 나온 최민호는 잘생긴 것 외에는 굳이 최민호일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인랑'은 매력적이다.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한국영화에서 두 번 볼 수 없는 강렬한 비주얼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지극히 한국적이란 건, 단점인 동시에 강점이다. 한국인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과 김지운 감독의 장르적인 덧칠, 그리고 액션. 김지운 감독은 한국적인 색채에 '인랑'의 감성을 녹였다. 이 도전은 만용은 아니다. 그는 절반 이상은 성공했다.

7월25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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