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한화 '화수분지기' 최계훈 감독 "좋은 팀 만들겠습니다"

서산=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7.19 08:34 / 조회 : 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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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과 구릿빛 얼굴, 습관이 된 미소가 어우러져 최계훈 감독은 늘 '선한 아우라'를 전해준다./사진제공= 한화 이글스


2018 KBO 리그 전반기 최고의 핫팀은 한화였다. 시즌초 한화가 2위로 전반기를 마감하리라 예상했던 전문가들은 한명도 없었다. 한화는 특히 핵심 김태균 정근우 양성우의 부상공백이 겹쳤던 6월에 조차 무리없이 2위 자리를 지켜냈다. 여기엔 강경학, 정은원, 백창수, 김민하 등 백업요원들의 분전이 주효했다. 마운드에서도 권혁 송창식 박정진 심수창 등 익숙한 얼굴들을 대신해 김민우, 김범수, 서균, 박상원 등 처음엔 다소 생소했던,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들이 ‘전반기 2위’ 마운드를 지켜줬다. ‘화수분 야구’라는 두산 전유 수식어가 한화앞에 붙어도 생뚱맞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그 한화가 16일 서산 제2 야구장 준공식을 가졌다. 총 100억원을 투입해 육성군의 경기 및 훈련 전용구장을 마련했다. 한화의 ‘서산 화수분’이 마침내 완성되었음을 의미한다.

17일 서산을 찾은 이유는 신설야구장도 야구장이지만 그곳에 한화의 ‘화수분지기’ 최계훈(58) 퓨처스 감독이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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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준공식을 마친 한화 서산 제2 야구장./사진제공= 한화이글스


경기장을 찾았을 때 폭염을 피해 11시부터 시작된 롯데와의 퓨처스 경기는 6회에 접어들고 있었다. 관중석엔 폭염 한낮 경기에도 불구하고 30여명의 관중들이 경기를 즐기고 있었다. 이날 한화는 선발 김성훈을 시작으로 김진영, 홍유상, 송창식, 김경태가 이어던지며 롯데 타선을 무실점으로 침묵시켰고 포수 이성원과 오선진의 홈런 2발 및 정근우의 2안타 2득점, 백창수의 2루타(결승타)등을 묶어 롯데에 6-0 낙승을 거뒀다.

에어컨 빵빵한 임원실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경기를 마친 최계훈 감독이 들어선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예까지 찾아주시고...”라며 반겨준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3시간여 경기를 치른 감독한테 듣는 치사라서 많이 민망했다.

초면의 최계훈 감독. 구릿빛으로 그을린 얼굴과 하얀 백발이 잘어울린다. 여기에 수줍은듯한 미소가 쉼없이 그려지며 ‘참말로 선한 아우라’를 전해준다. 그런 그에게 22일 1군 콜업이 예정돼있는 이날 선발 김성훈에 관해 물어봤다. “한감독이 기회를 준다니까 기대가 큽니다. 빠른 공은 150km까지 나오고 몸이 유연합니다. 작년엔 입스(불안감 등이 원인이 되어 가벼운 경련등 신체적 문제가 일어나는 것)로 인해 제구가 순간적으로 흔들리는 경우가 많아 퓨처스 한게임 등판에 그쳤는데 금년엔 로테이션을 거른 적이 없어요. 건강하고 제구도 많이 안정돼있습니다. 속구와 슬라이더 투피치에 체인지업도 던지죠. 투피치 제구가 70% 수준엔 근접한 것 같아요. 제가 항상 강조하는게 ‘제구가 우선이다. 던질수 있는 공의 제구력을 높인 후에 다른 구종을 장착하는게 맞다’고 말해주고 있는데 1군에서 얼마만큼 기량을 보여줄지 나도 궁금합니다”고 전한다. 김성훈은 올시즌 퓨처스 17게임에 등판, 6승2패 방어율 3.79를 기록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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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마치고 고생한 선수들과 나누는 하이파이브는 언제나 그를 흐뭇하게 한다. /사진제공= 한화이글스


마침 이날 불펜으로 나선 송창식과 2안타를 때려낸 정근우를 보니 2군 감독의 역할이 비단 선수육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님을 새삼 느낀다. “지금 배영수는 재활쪽에 있고 권혁은 몇일전 육성군으로 올렸어요. 2군에 와있는 고참선수들과는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죠. 다들 선수생활 제법 한 베테랑들이다 보니 우리 팀이 처한 환경이나 감독 성향 등 생리를 다들 잘 알고 있어 말이 통합니다. 게중에는 젊은 친구들에게 밀려난다는 느낌 탓에 의기소침 하는 경우도 있는데 식사도 함께 하고 더러는 술도 한잔 하며 대화를 많이 나누죠. 내 나름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방식인데 보탬이 되는 지는 모르겠네요.”

그는 새내기건 고참이건 선수들을 만나면 안색 살피기가 습관이 돼있다고 한다. 또한 선수들 개성파악에도 심혈을 쏟는 편이다. “훈계와 격려의 적정선이 선수마다 다 틀려요. 이 선수에게 약이 됐던 훈계가 저 선수에겐 반발을 부르고 이 선수에게 보탬됐던 격려가 저 선수에겐 자만과 방종을 불러오기도 하죠. 개인 훈련하는 선수들 중에도 먼 발치서 지켜봐야할 선수가 있고 다가가 격려해줘야할 선수가 있어요. 스태프들도 모두 열심히 선수들을 파악해서 보고해주기 때문에 퓨처스에 있는 친구들은 얼추 개성들을 다 파악한 것 같습니다”고 자신감을 겸손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지도자생활만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거친 팀도 SK-롯데-LG-인천고 감독(2008~2010)-NC-한화로 다양하다. 그 세월 주로 코치로 선수들과 부대껴왔으니 그의 선수 파악은 웬만하면 신뢰할만하다.

그는 특히 투수조련에도 일가견 있다.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빠른 공을 던진 사나이 엄정욱(전 SK와이번즈)도 그의 손길을 거쳤다. 엄정욱의 공인기록은 158km. 하지만 전지훈련 중 161.8km까지 찍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졌던 선수로 꼽힌다. “엄정욱이를 SK서 처음 만났을 때 구속이 평균 148km정도 나왔어요. 191cm의 큰 선수였는데 투구시 팔다리를 멀리 뻗치는 스타일이더군요. 트렁크(몸통)에서 팔 다리가 너무 멀리 있으면 안돼요. 적절히 구부려 회전을 시켜야 속도와 파괴력 높아집니다. 또 땅을 잘 이용하라고도 일러줬어요. 땅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네 몸이 움직이는건데 땅에 가까워져야 안정성이 확보되고 힘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조언했죠. 뭐 그덕인지 피칭폼이 간결해지면서 구속도 오르더군요”라며 “마음이 여린 친구라 제대로 못큰 것이 안타깝지만..”하고 아쉬움을 덧붙인다.

신일고 시절인 2000년 황금사자기 타점왕을 차지해 메이저리그에서 신분 조회를 신청할 정도로 타격에 소질을 보였던 채병용도 2001년 SK 입단후 1년 최코치의 조련을 받고 1군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LG시절엔 심수창 우규민등도 최계훈 코치의 손길을 거쳐 성장했다. 특히 심수창 우규민은 새벽 6시부터 꼼짝없이 최코치와 동행하며 최계훈식 메카닉훈련을 소화해야 했다고한다. “감독님이야 희생을 하신 셈이지만 당시 두 선수는 끔찍했겠는데요?”하니 “그래도 당시엔 불만들 애기 안하더라구요. 한화서 수창이 다시 만나 그 시절 회고도 해보는데 그야말로 옛 얘기가 돼서인지 별 불만 없나 봐요”하고 웃고 만다.

선수들은 그를 통해 기량이 성장하고 다친 마음을 위로받고 앞으로 나갈 용기를 얻는다. 그럼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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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최계훈 감독. 호주의 가족과 떨어져 18년째 기러기 생활을 하고 있는 그에겐 서산구장이 집이고 동네다.


그의 사주팔자엔 ‘외로울 고(孤)’ 하나쯤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그의 거주지는 서산 숙소다. 가족은 모두 호주에 있다. 2001년 호주로 떠났으니 18년째 기러기 생활이다.

그는 말그대로 조실부모했다. 초등학교 1학년때 어머니를, 4학년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6남매중 막내인 그를 키운건 19살 차이나는 큰 형이었다. 야구도 큰 형의 권유로 인천 창영초등학교 3학년때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땐 역시 형의 권유로 리틀야구 강세였던 서울사대부속초등학교로 전학, 형제들과 떨어져 졸업할 때까지 하숙생활을 해야했다. 당시 부모없는 설움,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달래준 것이 야구였다. 인천남중-인천고를 거치며 야구는 그의 인생으로 자리잡는다. 고교야구가 최전성기를 구가하던 70년대 후반 그는 스타였다. 인천고등학교 부동의 에이스였고 특히 79년 전국대회 4차례 준우승의 주역이었다. 야구선수로서 최계훈의 전성기였던 셈이다.

야구덕에 찬사를 받으며 외로움을 떨쳤던 그는, 하지만 인하대 시절 야구로 인해 다시 외로워져야했다. 2학년이던 81년 2월, 팀은 롯데 실업팀과 연습경기를 하는데 저학년인 그는 비닐하우스 연습장 보강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마운드에 오르라는 감독의 명령. 몸도 못푼 상태로 마운드에 오른 그는 갑작스런 어깨통증의 습격으로 1이닝도 채 못던지고 마운드를 내려온다. 스포츠의학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숟가락을 들지도 못할 통증였음에도 ‘근육이 좀 탈이 났나?’ 정도로 별 치료 없이 막연하게 넘긴 그 부상이 그를 2년간 마운드와 생이별시켰다. 그나마 4학년때 자연치유된 어깨로 좀 던진 덕인지 1984년 삼미 슈퍼스타즈에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다.

입단하자마자 캠퍼스 커플였던 2년 후배 김인경(56)씨와 결혼을 서둘렀던 것도 외로움 때문이었다. 혼자였던 그는 비로소 함께가 된다. 그는 1986년까지 삼미와 청보를 거치며 나름 에이스로 분전한다. 팀 전력이 최악이었던 탓에 승수를 많이 쌓지는 못했다. 84시즌 8승 8패 9세이브(삼미)- 85시즌 6승6패(청보)- 86시즌 6승14패2세이브(청보)의 성적을 올린후 그는 현역병 입대를 한다. 3년 군 복무후 1990년 태평양 돌핀스에 복귀하였지만 대학시절의 어깨 통증이 도졌다. 결국 1군에서 1이닝도 못 던지고 쓸쓸하게 은퇴하고 만다. 당시의 그 부상은 지금 생각해 보면 오른어깨 인대 파열로 추측된다.

야구를 떠날 수 없던 그는 KBO 3기 심판으로 3년간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 그 기간중 룰 북을 30번 이상 통독했고 이 경험은 1994년 6월부터 태평양에서 시작된 그의 지도자생활에 큰 보탬이 된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현대 유니콘스 2군 투수코치로 재직했지만 그 직후 2000년 1년을 통으로 실직상태로 보내야했다. 실직의 날들은 막막했다. 야구는 좋지만 코치라는 보직은 직업으로서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었다.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장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아이들 교육도 그렇고 호주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2001년 SK 와이번즈와 계약이 되면서 당시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이던 두 아들과 아내를 호주로 떠나보냈다. 기나긴 기러기 생활의 시작이었다. 그는 다시 혼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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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부상으로 프로생활은 짧았지만 지금 현재 만족하고있기 때문에 과거는 의미가 없어요. 물론 젊은 시절 한때는 불운을 탓하기도 했었을 거예요. 하지만 게으름 떤 것 아니고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고 오히려 여태까지 야구복 입고 있다는게 행운이죠.” 노랫말처럼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흘려보낼만큼 그는 충분히 인생을 살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요즘 흔한 차도 한 대 안굴린다. 웬만하면 서산숙소에 머물고 부득이하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같이 못살아줬는데 조금이라도 더 보내줘야죠.” 내핍이 그가 가족에 대한 미안함을 상쇄하는 방법이다.

“아플 때 서럽지 않으세요?” “트레이너도 돌봐주고 혼자 끙끙댈때도 있지만 이제 만성이 돼서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글쎄 외로움이 면역이 되는 종류일까.

그럼에도 그가 유쾌하게 지내는건 무엇보다 야구가 있고 자식같은 선수들의 야구에 대한 젊은 갈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스스로가 보탬이 되고있다는 자기 위안이 그를 덜 외롭게 만든다. “조금 있으면 이제 야구를 떠나 가족에 봉사할 시간이 온 것 같긴 해요.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까진 우리 선수들에게 보탬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죠”한다.

국이 짤 때 물을 더하면 국은 싱거워지지만 맛은 덜해진다. 처음부터 끓은 물과 더해진 물이 겉돌며 잘 섞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산 숙소에서 그는 틈 날 때마다 손주 손녀와 영상통화를 한다. 33살 큰아들 소생의 5살, 3살 손자손녀들의 재롱이 그를 흐뭇하게 한다. 8월이면 또 한 손자가 태어난다고 자랑도 한다. 손주들과의 영상통화는 그 자체로 기쁨과 위로가 되지만 한편으론 가족과 같이 끓어보려는 그 나름의 노력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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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을 묵묵히 지켜보는 그의 뒷모습은 어쩐지 아버지를 연상시킨다./사진제공=한화이글스


“남은 목표가 있다면?” “당장의 목표는 한화 우승입니다. 좀 더 긴 목표라면 한화가 좋은 팀이 되는 거죠. 제가 몸담은 팀이 정말 좋은 팀이 되길 갈망하고 그렇게 만드는 것이 제 임무죠.”

마지막으로 묻는다. “그 백발, 유전인가요?” “예 유전입니다. 서른다섯살부터 헤기 시작했는데 두피가 너무 안좋아서 한번도 염색을 안해봤어요.”

인터뷰탓에 늦어진 점심식사를 하러 가는 그의 뒷모습. 어쩐지 잔잔한 강물이 떠오른다. 강바닥은 더러 움푹 패이고 더러 솟아올라 둔덕을 이룰테지만 강물은 늘상 잔잔하다. 야구인 최계훈의 진면목을 엿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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