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곧 만날 아들 & 옥타곤 복귀'..정찬성의 여름은 설렌다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7.13 15:56 / 조회 : 11765
  • 글자크기조절
image
1년 걸린 무릎부상으로부터 돌아와 복귀전을 준비중인 정찬성./역삼동= 이기범 기자


2017년 2월 5일 미국 휴스턴 도요타 센터. 정찬성이 옥타곤에 올랐다. 2013년 8월 4일 브라질에서 열린 UFC163 조제 알도와의 페더급 타이틀전 TKO패 이후 3년 6개월 만의 복귀전이었다. 상대는 페더급 9위 데니스 버뮤데즈. 공백의 여파인지 정찬성의 펀치와 펀치 사이가 어쩐지 들뜨는 느낌은 들었지만 레슬링에 강한 버뮤데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노련하게 막아내며 경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아래로부터 날아오른 주먹 한방. 정찬성의 어퍼컷이 버뮤데즈의 턱에 꽂혔다. 공식기록 1R 2분 49초 KO승. 경기를 지켜본 데이나 화이트는 “코리안 좀비가 돌아왔다. 3년이상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선수보다 멋지게 복귀했다”고 열렬히 환영했다.

그리고 5월말 UFC는 정찬성의 다음 경기 상대가 페더급 랭킹 3위인 리카르도 라마스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라마스전을 앞두고 실전을 방불케 하는 연습을 강행하던 정찬성은 그러나 6월 2일 훈련 중 스파링 파트너의 태클에 걸려 오른 무릎 전방십자인대와 내측인대 파열이란 중상을 입고 만다.

다시 이어진 1년간의 치료와 재활. 그 무릎이 완치됐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체육관인 역삼동 코리안좀비MMA를 찾았다. 점심 운동을 끝내고 나서는 회원과 밝게 인사 나누는 그의 눈은 특유의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보자는 제의에 순순히 수술부위를 보여주었다. 관절경 수술이라 흉은 없었다. 다만 핀을 박은 자국은 손톱만큼 하얀 흉터를 남겼다. 레슬링 훈련을 하느라 뭉개진 그의 왼쪽 귀처럼 남은 또 하나의 흔적. 최선을 다하다 얻은 흉터는 훈장이 된다.

“완전한 건가요?” “예 완치됐습니다.” “시점이 공교로와서 스파링 파트너가 많이 미안해했겠네요.” “어휴, 그 친구 아직까지 미안해하죠. 다른 팀에 소속된 후배라 그냥 아는 정도였는데 부상 이후 부쩍 친해졌어요. 저도 남들 많이 다치게 했었으니 괜찮다고 해도 자꾸 미안해 하니.. 격투기를 하면서 안 다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다음 상대는 프랭키 에드가가 될까요?” 에드가의 얘기를 꺼내자 그가 멋쩍은 웃음을 짓는다. “그건 제가 모르죠. UFC가 정해주겠죠. 근데 에드가랑 붙고 싶다고 했다가 욕 참 많이 먹고 있습니다.” “왜요?” “경기도 안뛴 주제에 에드가가 가당키나 하냐는 거죠. 전 그냥 제 랭킹에서 상대할 만한 가장 강한 선수로 에드가를 얘기한 것 뿐인데...” 다시 짓는 미소에 물씬 난감함이 배어난다.

현재 정찬성은 페더급 8위, 에드가는 페더급 3위에 랭크돼 있다. 랭킹 상으로는 충분히 매치메이킹이 가능한 선수다. 3년 6개월 공백 끝에 9위 버뮤데즈를 1R KO로 꺾은 정찬성이다. 다시 불의의 부상으로 1년 공백이 있었지만 조제 알도와 타이틀매치까지 벌였던 정찬성의 커리어가 에드가를 감히(?) 언급도 못할 정도는 아니다.

image


image


image
은서와 민서 그리고 곧 세상을 만날 아들까지..아빠 정찬성에게 아이들은 위안이고 휴식이고 삶의 의미다.


그는 조만간 세아이의 아빠가 된다. 딸 은서(4), 민서(2)의 남동생이 이달 말이나 8월 초면 태어난다고. 시종 웃는 이유가 무릎 완치 때문만은 아닌 셈이다. “자녀 욕심이 많네요.” “제가 외동으로 커서 그럴거예요. 딸도 아들도 다 키워보고 싶었는데 막내로 아들 나오니 바람대로 다 됐네요”

그는 맞벌이하는 부모님의 외동으로 자라 외로움을 많이 타는 편이다. 성격도 내성적인 탓에 왜소했던 중학 시절 맞기도 많이 맞았다고 한다. 잠깐 함께 살던 이모가 그 꼴 못보겠다고 합기도 도장을 보낸 것이 격투 인생의 시작이었다. 구리중학교 2학년 때였다. 공부는 하기 싫고 혼자 남겨진 집에서 게임만 하는 것보다는 도장에서 땀을 빼는 편이 훨씬 적성에 맞았다. 1년 남짓의 합기도 수련은 또 다른 갈증을 불러왔다.

“합기도는 방어적인 호신술의 성격이 너무 짙더라구요. 나이가 나이어선지 그때는 싸움을 잘하고 싶었거든요.” 사실 그는 내성적이달 뿐 ‘한 성깔’ 했던 모양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쌈 잘하는 친구‘였지만 중학교 진학 후 성장이 지체된 탓에 다른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의 집적거림에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성질이 죽지는 않고.. ’내 몸은 내가 지키자‘는 결심이 사춘기를 관통한다. 남양주로 이사해 남양주공고에 진학한 후 그는 킥복싱에 입문한다. 3년을 킥복싱을 수련한 그는 공부한 건 없지만 어쩐지 대학은 가야 될 것 같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자신이 갈 수 있는 학교를 물색한다.

경북과학대학(칠곡) 이종격투기과로 진학한 그는 그곳에서 주짓수를 접하게 된다. 주짓수의 매력에 빠져 3개월 수련하고 났더니 그에게 주짓수를 가르쳐준 친구들조차 그를 이겨내질 못했다. 그는 항상 실전을 지향했다. 이종격투기를 하면서도 ’스포츠‘ 보다는 ’싸움의 기술‘로 이해하고 받아들였고 이 같은 인식은 2010년 4월 레너드 가르시아와의 첫 대결 판정패까지 프로입문 12전(10승 2패)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2010년 9월 30일 정찬성은 미국 콜로라도 브룸필드에서 열린 조지 루프와의 WEC 51에서 2R 1분 30초 만에 헤드킥을 맞고 실신패한다. “옥타곤에서 경기를 하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앰뷸런스더라구요. 충격이 컸어요. 진다는 기분을 제대로 알게 됐고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두려움도 생겼구요” 정찬성은 이전까지 프로데뷔 9연승의 상승가도를 달렸고 카네하라 마사노리와 레너드 가르시아에게만 판정패를 당한 바 있다. 특히 그에게 ‘코리안 좀비’란 닉네임을 안겨준 가르시아와의 난타전은 ‘싸움꾼’ 정찬성의 본색을 여과없이 보여주었고 경기가 정찬성 패로 끝났을 때는 편파판정 논란이 일만큼 미국팬들의 열렬한 호응을 끌어냈었다.

image
정찬성은 파이트머니를 살뜰하게 모아 장만한 자신의 체육관에서 복귀전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역삼동= 이기범 기자


그렇게 '싸움이다' 할 때는 투지와 근성만한 기술이 없다. 그래서 맞아도 맞아도 기세가 꺾이지 않는 정찬성에겐 ‘좀비’란 애칭이 붙었다. 하지만 헤드킥 실신 KO패는 그것만이 다가 아님을 일깨워줬다. 슬퍼지고 창피하고 화나고 두렵고.. 순식간에 몰려드는,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고 한다. 은퇴마저 고려할 정도로 방황할 때 “싸움 말고 스포츠로 한번 바꿔서 해보자”는 친구의 조언이 있었고 정찬성은 싸움 대신 스포츠로서의 기술적인 보완에 치중하게 된다.

이후 정찬성은 가르시아와의 UFC 데뷔전서 UFC 사상 최초의 트위스트 승(2011년 3월 26일)을 거뒀고 마크 호미닉 7초 KO승(2011년 12월 10일), 더스틴 포이리에 다스초크승(2012년 5월 15일) 등 타격과 그래플링에서 한 단계 진화한 테크닉을 선보이며 이름값을 올렸다. 말 그대로 벽을 문으로 바꾸고 한계를 출발점으로 만든 선택이었다.

2013년 8월 4일 조제 알도와 벌였던, 한국 선수로는 유일했던 타이틀전도 또 하나의 각성을 불러왔다. 격투기 선수로서, 그것도 페더급 선수로서 정찬성에게 극강 챔프 알도는 비현실적인 존재였다. “뭐랄까, 적응이 안됐어요. 맨날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보던 알도가 나를 때려눕히겠다고 나를 향해 주먹을 뻗고 내 앞에서 위빙하고 하는 것들이 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어요.” 그런 생경함은 알게 모르게 정찬성의 몸을 굳혔다. “3회 들어 클린치 상황이 있었는데 밀착된 알도의 피부를 통해 그의 맥박이 느껴지고 그의 정수리가 내 눈 밑에 있고 뿜어내는 거친 숨소리를 들었을 때에서야 비로소 현실감을 느꼈죠. 알도도 사람이다. 해볼 만 하다는 느낌. 3회부터 자신감을 찾았지만 그 라운드조차 우위를 가져오지 못했죠. 알기 쉽게 진 경기였습니다만, 옥타곤에 올라서는 모든 선수가, 그가 비록 난공불락같은 챔피언이라도, 맞으면 아파하고 팔 두 개인 사람일 뿐이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새겼습니다.”

알도와의 타이틀전을 오른 어깨 탈골 TKO패로 접고 난 정찬성은 오랜 휴지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기간 중 2014년 3월, 3살 연상의 박선영 씨와 결혼을 하고 그해 10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공익요원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집사람이랑은 아는 형 소개로 만났는데 1년 교제 후 결혼까지가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신경 쓰이고 부담스러운 느낌 없이 만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너무나 당연히 결혼 해야 될 것 같아 결혼한 거죠.” 천생연분의 정석이다. 3년 6개월이란 길어진 공백, 혼자서 삼켰다간 독이 될 수 있던 그 시간 동안 그는 군 복무를 마쳤고 결혼을 했고 아이를 보았다.

혼자 생활에 익숙한 정찬성이다. 누구와 같이 사는 생활은 순탄했을까? “저는 의식 못하는데 남들이 볼 땐 잡혀 사는 것 같은가 봐요. 물론 전혀 다른 세월 살아온 사람과 사는데 안 맞는 부분이 왜 없겠어요. 하지만 집사람이 현명해요. 남자는 세 여자 말 잘 들어야 된다잖아요. 네비 아가씨 말도 잘 들어야 되는데 하물며 마나님 말씀이야..”

다음 경기 일정은 어떻게 될까? “UFC측에서는 제가 원할 때 언제라도 매치를 주선하겠다고 했어요. 늦어도 8월 초면 우리 막내가 세상에 나올 거고 두 달 정도 준비할 시간 필요해서 10월 이후 언제라도, 누구라도 좋으니 경기 잡아달라고 말은 건네놨습니다.”

image
레슬링훈련으로 뭉개진 왼쪽귀가 눈길을 끈다. 최선을 다하다 얻은 흉터는 훈장이 된다./역삼동= 이기범 기자


동료 선수 중 가장 좋아하는 선수가 있다면? “벤슨 핸더슨을 정말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2016년 12월일 거예요. 미국 전지훈련을 갔는데 핸더슨이 대뜸 자기 집에서 머물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약 한 달 간 같이 살았는데 FM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죠. 유흥이랑 담쌓고 살아요. 경기 끝난 직후에도 집에서 애들보고 놀거나 아니면 훈련이죠. 그렇게 완벽하게 유흥이랑 담쌓고 사는 선수는 처음 봤어요. 운동 외엔 관심도 없어요. 수시로 들르시는 핸더슨 어머니도 말 그대로 딱 그냥 한국 어머니시구요.”

“본인은 어떤가요? 그런 삶 만족스러울까요?” “저는 맥주 정도는 합니다. 하지만 술 먹고 놀러 가고 해야만 인생이 재미있는 건 아니죠. 핸더슨도 관심 없는 일 안 하고 자기 좋아하는 운동만 하고 사니 행복한 거죠. 저도 그런 편이고요.”

정찬성이나 밴슨 핸더슨이나 격투기에 관한 대단한 재능을 갖고 있다. 뛰어난 동체 시력과 반사신경, 감탄스런 임기응변, 탁월한 맷집과 투지..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에게서 발견되는 가장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은 '노력하는 재능' 같다.

격투기를 직업으로 삼은 지 10년인 그는 그동안의 파이트머니를 착실히 모아 2013년 4월 역삼동에 100평 규모 자신의 체육관을 꾸몄다. 현재 회원 수는 약 120명 정도이고 프로 뛴 선수들 10명 포함해서 옥타곤을 겨냥한 꿈나무 15명 정도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그중에는 홍천이나 제부도에서 매일 출근하는 이들도 있다. “체육관 잘되는 편이죠?” “재등록이 많은 것 보니 회원님들 반응은 좋은 것 같아요. 근데 여성회원분들이 적어서 걱정입니다” 며 사소한 엄살도 떨어본다. 그는 또한 살림집 역시 체육관 인근에 35평 아파트를 전세로 장만했다. 김포에서 따로 생활하시는 부모님 집세도 그의 몫이다. 말하자면 제법 성공한 직업인인 셈이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하고 살았는데 따지고 보니 제가 제법 이뤄놓은 게 있네요” 하며 시원하게 웃는다.

“선수생활 얼마나 더할 것 같아요?” “한 5~6년은 더 할 것 같은데요” “그 이후에 대해서 인생 설계한 바가 있나요?” “제가 하기 나름이겠죠. 챔피언이 된다면 은퇴 후에도 격투기 쪽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UFC에서 일을 할 수도 있겠죠. 아니면 글쎄요.. 아직 격투기를 떠난 삶은 생각을 못해봤네요.” 공연한 고민을 안겨준 모양이다. “아이고 이거 바짝 벌어야겠는데요. 애들 셋 뒷바라지 하려면.”하고 너스레를 떠는 정찬성은 그러나 경기를 통해 돈을 벌고 싶다는 의사를 강하게 피력한다. “방송활동이나 광고도 수입을 안겨주겠지만 저는 파이터고 파이트머니로 버는 게 가장 정직한 것 같아요.”

방송활동에 대해 그는 “택시라던가 예능 프로 몇 개 해봤는데 할 말도 없고 얼굴만 화끈화끈 달아오르고 어색해서 혼났어요. 저랑은 안 맞는 것 같아요.” 한다.

15년째 하고 있는 격투기의 매력에 대해 그는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어요. 크게 타격과 주짓수, 레슬링으로 나눠보는데 타격이 부족한듯해서 타격을 보강하다 보면 주짓수나 레슬링 쪽에서 미진한 부분이 나타나고 또 그쪽에 신경 쓰다 보면 타격에 구멍이 생기고.. ‘마스터 한다’ 는 게 없는 종목 같아요.”라고 설명한다.

image
웃을땐 항상 호선을 그리는 정찬성의 눈매. 지금 그는 행복한 '아빠 파이터'다. /역삼동= 이기범 기자


박재범의 힙합레이블 AOMG에 합류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니 “저 혼자 하다 보니 알아야 하고 챙겨야 할 게 너무 많더라구요. 마침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운영하시는 박재범 대표님이 저희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셔서 물어볼 것들 정리해서 조언을 구했죠. 근데 첫 질문 던지자마자 ‘그러지 말고 그냥 우리 회사 들어와요’ 하시더라구요. ‘힙합회사가 왜?’ 싶어 의아했는데 마침 스포츠 쪽으로도 영역을 넓힐 생각이었다고 하시더군요. 워낙 유명한 회사고 내 시합만 잘 풀리면 윈-윈이 되겠다 싶어서 합류했죠.”

10월 이후 언젠가 복귀전을 치를 때 정찬성은 세 아이의 아빠로서 옥타곤에 오른다. 그 부분에 대해 그는 “혼자 몸일 때 옥타곤에 입장할 때면 사람들의 환호와 시선이 마냥 즐겁고 흥분됐어요. 근데 1년 전 복귀전 때는 흥분이 가라앉고 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앞서더라구요. 가족을 위해 싸운다는 생각에 옥타곤이 좀 더 진지하게 다가왔다고나 할까요.”

그는 요즘 행복하다. 아내와 아이들이 그에게 행복을 안겨준다. 더해서 기분 좋은 설렘에 휩싸여 있다. 곧 마주할 자신의 아들을 기다리느라 설레고, 고향이랄 수 있는 옥타곤으로 돌아갈 생각에 설렌다.

싸움꾼 정찬성의 주먹은 강했다. 진정한 파이터로 거듭난 정찬성은 더욱 강했다. 이제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옥타곤에 오르는 '세 아이 아빠' 정찬성은 과연 어떨까. 그의 복귀전이 기다려진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