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스물넷 동갑들의 푸른 꿈 "족구 세계화, 우리 손으로.."

쌍둥이 족구스타 전형진·휘진 그리고 이정욱, 체코 첼라코비체 국제 대회 앞두고 젊은 호언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6.29 15:37 / 조회 : 19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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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의 족구 3인방 전형진-이정욱-전휘진(좌로부터). 살짝 들린 반바지로 드러난 선 분명한 다리 색깔이 이들의 노력을 대변한다.


‘꿈꿔보지 않을래? 이 젊음 살아가는 동안에..’’

28일 만난 1994년생 이정욱·전형진·전휘진 동갑내기 3인방은 족구선수다. 그리고 자타공인 국내 족구 최고수다. 금년 성적만 따져도 3월 제7회 대한체육회장배 우승부터 지난 6월24일 문화체육부장관기 대회 우승까지 국내 13개 대회서 9개 대회 우승, 전국 남여 종별 세팍타크로 대회 등 3회 준우승,1회 3등의 성적을 거두며 국내 대회를 휩쓸었다. 지난 5월 열린 프랑스 풋넷스타 풋넷대회에선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6월엔 체코 노헤벨 리그에도 참여했다.

형진과 휘진은 쌍둥이 형제고 정욱은 그들과 친구다. 그리고 말 그대로 그들의 직업은 족구다. 족구가 취미 아닌 직업이다 보니 사는 게 만만찮다. 하지만 구김없이 밝다. 만 나이 스물 네살은 어른에 편입되지만 청년으로도 불린다. 푸르른 나이답게 ‘꿈’이란 특권을 향유할 나이고 셋 모두 걸맞는 꿈을 꾼다.

“번듯한 직업으로 만들고 싶어요” “아시안 게임이든 올림픽이든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는데 한 몫하고 싶어요” “태권도처럼 족구도 세계화 해보려고요.”

이들은 회사원인 33세 전석우씨와 함께 ‘하남 호크마’팀으로 오는 7월 14일 체코 첼라코비체시에서 열리는 '2018 첼라코비체 오픈 국제 족구대회'에 출전한다.

‘족구 국제대회?’ ‘체코에서 열린다고?’ 의문이 당연히 뒤따른다. 족구와 흡사한 풋넷이 인기스포츠로 자리 잡은 유럽에서 족구는 낯선 운동이 아니다. 우리 족구선수들이 풋넷대회에 참여하며 보여준 부드럽고도 다이내믹한 동작들은 유럽관중들의 환호를 불러왔고 풋넷을 좋아하는 많은 유럽인들은 한국의 족구에도 열광한다. 특히 동유럽에서 족구는 ‘스포츠 한류’의 흐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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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의 롤링스파이크 기술.


‘족구 룰’에 따른 첫 국제대회이지만 여성부 포함 우리나라 6개팀을 비롯, 체코, 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우크라이나,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이라크 등 13개국에서 60개팀 300여명의 선수가 참여한다. 국제대회란 타이틀에 전혀 모자라지 않은 라인업이 짜여져있다. 체코 NOVA TV는 준결승 2경기, 3·4위전 1경기, 결승전등 총 4경기를 체코 전역과 슬로바키아 일부 지역에 생중계할 예정이다.

족구를 취미가 아닌 직업으로 선택한 이들 세 청년이 궁금하다.

형진·휘진 형제가 족구에 입문한 것은 10살 때. 역시 부천 중앙 족구 동호회원이던 아버지 전현하(49)씨의 영향이다. 대회출전을 위해선 동호회 활동이 필요한 탓에 부천 송내고 시절엔 부천 중앙 동호회원 신분으로 30대 언저리 삼촌뻘 형들과 함께 발을 맞추며 전국을 제패했다. 역시 족구동호회원이었던 아버지의 권유로 동호회 활동을 시작한 이천 장호원 고등학교의 이정욱이 형진·휘진 형제를 만난 것도 대회에서다. ‘또래’가 흔치않던 족구계 실정에서 만난 세사람은 즉시 의기 투합한다. 정욱은 두 형제와 함께라면 그럴듯한 미래를 그릴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가졌고 형제 역시 훌쩍 차이 나는 형들 틈에서 마주친 동갑 친구가 가뭄에 만난 콩처럼 반가웠다.

정욱은 쌍둥이와 함께 하기 위해 이천을 떠나 부천으로 전학한다. 송내고를 원했지만 뺑뺑이의 신이 도와주지 않는 바람에 인근 상동고로 배정받는다. 군대도 함께 간다. 쌍둥이는 육군 동반입대, 정욱은 공군. 복무기간이 긴 정욱이 두 달 먼저 입대한 후 한 달 늦게 제대한 외에 셋은 대회에 맞춰 휴가를 조율하면서 함께 발을 맞췄다. 셋은 현재 모두 학점은행제로 한양대 생활체육과 학사 취득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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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휘진의 뛰어발등차기.


군대를 전역했으면 사회인인데 장래가 불안하지는 않은지 궁금했다. “불안하죠. 그래서 저희가 더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세 친구는 전역 후 일단 부천에 ‘족구 투윈’이란 체육관을 열었다. ‘족구 투윈’의 성격을 물어보니 “족구 학원이죠”하는 휘진에, “야, 학원이라면 너무 상업적이잖아”하는 정욱에, “일부 청소년에겐 무료 강습하고 성인회원들에겐 회비 받고 개인 레슨 하거든요”하는 형진까지 의견이 분분하다. 종합해볼 때 ‘족구의 대중화 및 세계화’란 취지를 둔 보급단체이면서 사회 첫 발을 내딛은 세 청년의 생계수단이기도 한 모양이다. 당초엔 ‘족구 트윈’으로 하고 싶었으나 LG트윈스가 상표권을 선점한 바람에 ‘다같이 이기자’란 취지로 ‘Too Win’으로 하게 됐다고 한다.

동년배 아들 둘을 둔 입장이다 보니 부모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하고 싶은 것 해봐라’고 하세요”라고 입을 모으지만 쉽게 납득이 안돼 재차 물어본다. “저희 고등학교 때 대학 다니던 선배들까지는 취직이 잘됐어요. 실업팀들이 제법 있었죠. 당시엔 족구를 다룬 방송프로그램들이 많아 기업홍보에 유리했거든요. 부모님들도 그런 선례들에 비춰 우리의 비전에 공감해 주신 거죠”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의 순번에선 기업진출의 문호가 닫혀 본인들과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족구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게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족구 투윈의 형편은 어떨까? “안 쓰고 안 쓰고 유지해나갑니다. 레슨은 전부 1대1 레슨 이고요. 회원님들 형편에 맞게 시간을 조율하죠. 전국 투어 강습도 진행하는데 아직까지는 경비만 가까스로 충당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집에 손 안 벌리고 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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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족구뿐 아니라 세팍타크로 풋넷 등 네트있고 발로 하는 운동은 다한다고. 세팍타크로 경기에 나선 전형진.


이들은 세팍타크로, 풋넷 등 네트 있고 발로 하는 종목은 다한다. 유럽 풋넷 대회에 참가해 ‘족구의 위엄’을 알리기도 했고 세팍타크로 대회도 2년째 꾸준히 참가한다고 한다. “공 무게와 사이즈들이 다 달라서 적응이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이미 세계화된 이런 종목들을 통해 족구의 가능성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의도가 크다.

족구가 전국체전 종목에도 들어가지 못한 현실에 대해서도 비판한다. “시범종목으로는 몇 번 들어가기도 해서 충분히 전국체전 종목일 수 있거든요. 근데 재작년까지 주관 단체가 대한족구협회랑 전국족구연합회로 이원화돼서 맨날 싸우는 바람에 체전에 못 들어갔다고 얘기 들었어요. 이제 대한민국 족구협회로 통합이 되긴 했습니다. 아마도 내년에는 전국체전 시범종목에 들어갈 것 같아요” 라며 아쉬워 한다.

족구의 세계화 비전에 대해 이들은 “우리나라 동호인만 250만명이 넘는다고 알고 있어요. 그만큼 많은 사람들한테 사랑받을 수 있는 종목이란 얘기죠. 유럽의 풋넷 열기를 보아도 스포츠로서의 매력이 충분하거든요. 근데 그 가치를 제대로 어필하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죠. 동호인들조차 족구를 너무 쉽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은 족구를 엘리트 체육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부분에 대해 ‘족구를 왜?’ ‘뭘 굳이..’ 하는 반응들을 보이시죠.”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아니면 바꿀 수 없다’는 사명감에 불탄다. 이들은 이번 2018 첼라코비체 오픈 국제 족구대회의 성공을 확신한다. “물론 목표는 우승입니다. 저희 하남 호크마가 지난해부터 랭킹 1위거든요. 아마 우리나라 팀들이 상위권을 싹쓸이 하겠죠. 중요한 건 유럽권 관중들이 족구의 매력을 직접 눈으로 접한다는 겁니다. 이 대회 성공을 시작으로 족구의 세계화가 가속될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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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프랑스에서 열린 프랑스 풋넷스타 대회에 참가한 전휘진이 상대 블로킹을 피해 날카로운 공격을 선보이고 있다. 대회 3등 성적을 거뒀다.


청년기는 불확실한 미래를 각기 다양한 방식으로 모색하는 열정과 불안의 시기다. 생명이 자유롭게 분출하는 역동적인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노련·노회·타협·불의 따위 비릿한 단어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시기다.

족구란 꿈을 위해 달려온, 그리고 그 꿈을 꾸며 써버린 세 친구들의 세월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남은 세월에 대한 걱정? 그런 걱정 따위야 그 세월 보내 보고 나서 할 일이다. 미래가 불안하겠지만, 그래서 지금 당장 덜 행복할 수도 있겠지만, 뭐 어떤가. 그들은 청년인데. 꿈꾸고 도전할 특권을 가진 이들인데.

전형진·전휘진·이정욱 세 친구들의 푸른 꿈을 응원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족구도 올림픽에서 만나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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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진-이정욱-전휘진.(좌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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