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2인자' 김종필 전 총리 별세.. DJ-YS 이어 '3김' 모두 떠나

김동영 기자 / 입력 : 2018.06.23 11:19 / 조회 : 2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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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별세한 김종필 전 국무총리. /사진=뉴스1






'영원한 2인자', '풍운아'로 불린 김종필(JP) 전 국무총리가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김대중(DJ) 전 대통령, 김영삼(YS) 전 대통령에 이어 김종필 전 총리까지 세상을 떠나며 '3김 시대'가 종언을 고했다.

뉴스1에 따르면 김종필 전 총리는 23일 오전 급격히 병세가 악화돼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순천항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눈을 감았다. 이미 병원 도착 전 숨을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필 전 총리의 빈소는 현대 아산병원에 차려지며 5일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발인은 27일 수요일이며, 노제를 지낸 뒤 장지인 충남 부여 선산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종필 전 총리의 서거로 국내 현대 정치사를 이끌어왔던 이른바 '3김 시대'의 주역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9년 서거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2015년 세상을 떠났다.


김종필 전 총리는 1926년 1월7일 충남 부여군 규암면 외산리에서 7남 중 5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 김씨로 부친은 부여군 규암면장을 지낸 김상배(金相培) 옹이며 모친은 이정훈(李貞薰) 여사다.

김종필 전 총리는 부여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5년제인 공주중학교를 4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대전사범학교를 수료했다. 1946~1848년 서울대 사범대 교육학부(3년 수료)를 거쳐 1949년 육사 8기로 졸업했다. 육사에서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만났으며 박정희 전 대통령 소개로 배우자인 박영옥 여사를 만나 1951년 결혼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초대 중앙정보부 부장을 지냈으며 박준규 전 국회의장·김영삼 전 대통령(YS)과 함께 9선(6·7·8·9·10·13·14·15·16)으로 역대 최다선 의원을 역임했고 11대(유신정권)와 31대(DJ정권)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냈다.

그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61년 5.16 쿠데타를 기획하고 감행하면서다. 쿠데타 직후 김종필 전 총리는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를 만들어 초대 부장을 지내면서 권력의 중심에서 활약했다. 당시 그의 나이 35세였다. 이때부터 2004년 정계에서 물러날 때까지 43년간 한국 정치의 중심에 우뚝 서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이자 처 조카로 정권의 핵심 인사였지만, 1인자가 된 적은 없었다. '2인자'에 머물렀다. 1969년 '3선 개헌'을 계기로 권력의 중심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김종필 전 총리는 김영삼 의원(신민당), 김대중 전 의원과 함께 유력한 대선주자로 다시 거론됐다. 하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신군부 세력에 의해 정치 활동을 금지 당했다. 신군부는 이 과정에서 김종필 전 총리를 부정축재자로 지목, 재산을 몰수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 머물렀던 김종필 전 총리는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계기로 신민주공화당을 창당, 13대 대선에 대선 후보로 나섰으나 고배를 마셨다.

김종필 전 총리는 1990년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이 합쳐진 거대보수여당인 민주자유당에 몸을 실었다가 김영삼 정부(YS) 정부 시절인 1995년 당내 민주계에 의해 '2선 후퇴'를 요구받으면서 탈당, 자민련(자유민주연합)을 창당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자민련의 수장으로서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 돌풍을 일으켜 충청권을 기반으로 무려 50석을 얻는데 성공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충청의 맹주'가 되면서 정계의 한 축을 맡았다.

1997년에는 또 다른 파란을 일으킨다. DJP(김대중, 김종필, 박태준) 연합을 정권교체를 이뤄냈고, 총리에 부임했다. 하지만 2001년 내각제 개헌 문제로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별 수순을 밟았다. 2004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참패,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일선에서 물러났다.

김종필 전 총리는 2008년 말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 휠체어에 의존해왔다. 그래도 2013년 자신의 아호를 딴 '운정회' 창립총회를 열고 2015년에는 43년의 정치인생을 펴낸 책을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도 정치적 행보를 이어왔다.

'정치9단'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한국 현대 정치사에 족적이 뚜렷하지만 훗날 '제2의 을사조약'이라는 저항을 부른 1962년 '김종필-오히라 메모' 등 역사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김진(55) 운정장학회 이사장과 김예리(65) Dyna 회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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