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최진철 "멕시코? 동료에 대한 신뢰로 막고 자신감으로 뚫길.."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6.22 08:27 / 조회 : 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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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철 프로축구연맹 경기위원장은 멕시코전을 앞둔 후배들에게 동료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을 주문했다./성곡미술관= 김창현 기자

“경기 끝나고 (김)민우가 그라운드에 고개 떨구고 주저앉아있는 모습을 보는데 짠하더라구요.”

프로축구연맹 최진철(47) 경기위원장은 지난 18일 스웨덴전을 관전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대뜸 김민우를 거론하고 나선다.

사실은 지난 12일 세네갈과의 평가전서 이마가 찢긴 이용의 ‘붕대투혼’이 먼저 거론되려니 했다. 2006년 독일월드컵 스위스와의 예선 마지막 경기서 오른 눈위가 찢겨 붕대를 싸매고 나왔던 핏빛투혼의 주인공이 바로 최위원장였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은 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그가 대표팀에서 보여준 마지막 투혼은 후배들은 물론 전 국민을 감동시켰었다.

하지만 정작 18일 스웨덴전은 그에게 2002년 한-일 월드컵 독일과의 4강전을 떠오르게 한 모양이다. “후반 15분 쯤였나?(정확히는 56분이다) 제가 부상으로 빠지고 대신 이민성이 투입됐었죠. 그리고 얼마 안있어 결승골을 먹었습니다. 당시 민성이도 크게 낙담했었는데 제가 정말 미안했어요.”

18일 김민우는 햄스트링 부상을 입은 박주호 대신 교체투입 돼 후반 20분 PK파울을 범하며 결승점을 내주는 빌미를 제공했다. 박주호의 부상은 예측불가의 상황였고 김민우는 준비없이 투입되어 최선을 다했으나 중요한 순간 결정적인 판단 미스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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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K파울'을 범하고 괴로워하는 김민우./AFPBBNews=뉴스1

최위원장은 “수비는 공격보다 훨씬 조직적인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전방에서부터 어떻게 해주냐에 따라 유기적으로 달라집니다. 감독들이 수비에 변화를 주기 싫어하는 이유죠. 예정된 수비수 교체라면 교체멤버는 감독과 충분한 교감을 갖고 조직적 플레이에 녹아들 준비를 갖추는데 민우나 2002년 민성이처럼 부상으로 인해 긴급 교체투입될 경우엔 그러기가 쉽지 않죠”라고 설명한다. 이어 “민우같은 경우 큰 경기 첫 출전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돼요. 경험적인 부분이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리저브 선수들은 처음부터 호흡을 맞춘 경우가 아니어서 경기력 끌어올리기 힘든 부분이 있습니다”고 덧붙인다.

신태용 감독이 채택한 4-3-3 전술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참고로 스웨덴전을 앞두고 만난 전 국가대표 이천수는 최전방부터 상대 수비를 강하게 압박하는 4-4-2를, 김병지는 수비에 안정감있는 3-5-2 포메이션을 예상했었음도 전제했다.

“4-3-3은 저도 놀란 부분입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전반에는 수비에 강점이 있는 3-5-2, 후반에는 4-4-2나 4-3-3까지도 변화를 주지않겠는가 생각했었죠.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할 부분은 우리 선수들이 어떤 포메이션에서 가장 강점을 나타낼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감독님의 몫이고 현장에서 그렇게 생각하셔서 선택하셨을 겁니다.”며 말을 아꼈다.

히딩크 감독도 “결국 수비가 무너졌다”고 촌평했듯 대표팀의 수비불안에 대해 홍명보-김태영과 함께 최강의 3백을 구성했던 당사자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져본다.

최위원장은 일단 “최강의 스리백이란 표현은 민망합니다”고 손을 내저으며 “일단 2002년 당시와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라서 이후의 대회때보단 발을 맞출 수 있는 시간이 충분했고 덕분에 탄탄한 조직력을 구축할 여유가 있었죠. 여건자체가 지금과는 달라요”라고 전제한다. 이어 “수비의 조직력이란 것은 결국 구성원사이의 신뢰가 포인트죠. 제 경우도 스리백중 막내였기 때문에 내가 뚫려도 형들이 막아줄 것이란 믿음을 가지고 달려들었고 단지 우리 셋뿐 아니라 우리 앞에 (이)을용이, (이)영표, (김)남일이나 공격진의 (이)동국이, (최)태욱이 등 전 선수가 모두 유기적으로 협업한 결과입니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수비불안이란 말이 우리 대표팀에만 국한되는 것 같지는 않다며 “다른 나라들도 강팀 만나면 수비 불안이 화두로 떠오르지 않을까요?” 라고 수비수 출신다운 반론도 곁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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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월드컵대표 당시 홍명보-김태영과 최강의 3백으로 활약했던 최진철 위원장./성곡미술관= 김창현 기자

월드컵은, 열릴 때마다 최위원장에게 2002년 서른 두 살 당시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우리끼리도 그랬어요. ‘우리 미친 거 아냐? 이러다 우리 결승 갈 것 같아’ 하면서 낯선 자신감과 즐거움을 만끽했죠. 독일 경기력을 분석하면서도 ‘저 정도면 우리가 이길 것 같은데’ 해놓고는 그 말이 어이없어 ‘우리 진짜 미쳤나봐’ 하기도 했죠.”라고 웃으며 “당시엔 한 경기 한 경기 뛰는게 즐거웠고 운동장서 120%를 해낼 것 같다는 자신감이 넘쳤어요. 들뜬 분위기 컨트롤하려던 (홍)명보형조차 들떠 보였다니까요”라며 유쾌했던 당시를 회상한다.

당시에 대해 최위원장은 뜻밖의 얘기를 한다. “수원 경기를 마치고 내려오다 국대 차출 소식을 들었어요. 조윤환 감독님이 ‘너 대표팀 합류하란다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 안가면 안돼요?’했더니 ”너 미쳤지?‘ 하시며 황당하게 보시더라구요.” 최진철은 2001년 10월29일 세네갈과의 평가전(11월8일)을 앞두고 히딩크호에 선발된다.

그는 왜 국가대표이고 싶지 않았을까? 그의 얘기를 들어보자.

그가 국가대표에 처음 선발된 것이 1994년 미국월드컵을 앞두고다. 숭실대를 나와 1993년 12월 군번으로 국군체육부대에 입대하자마자 12월 27일 김호 감독의 국가대표팀으로 차출되어 1994년 4월까지 대표팀 훈련에 참가한다. 당시 국대 경험은 최진철에게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구상범 김판근 선배부터 하석주 홍명보 황선홍 선배까지 TV로만 봤던 선배들이랑 뛰는데 와 정말 꿈인가 싶더라구요. 선배들 얼굴도 제대로 못볼 정도였어요. 최종엔트리 들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뛴다는 자체만으로 좋았죠. 게다가 4월까지 훈련 마치고 났더니 훈련비인지 격려금인지도 꽤 많이 주더라구요. 당시 군대 월급이 1만원 남짓였는데 쏠쏠했습니다.” 좋았던 국대의 첫 인상이었다.

1997년 프랑스월드컵을 준비 중이던 국가대표팀 차범근 감독도 코리아컵을 앞둔 6월10일 최진철을 불러올린다. 당시 최진철은 12월 22일 명단에서 빠질 때까지 6개월을 대표팀에 머문다. 그 기간중 타지키스탄과의 친선경기. 한-중 정기전 등이 열렸지만 최진철은 리저브 선수로 벤치만 데운다. “그때 프로 2년 차였는데 경기는 뛰지 못하면서 기약 없이 몸을 만들어 준비해야 되는 시간들이 정말 힘들었어요. 말 그대로 리저브의 설움이죠. 그때 기다림이란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이라는 것을 배웠고 그럴수록 뛰고 싶다는 욕망의 절실함도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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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철은 2002 히딩크호 승선이 처음엔 달갑지 않았었다고 고백한다./성곡미술관=김창현 기자

그리고 다시 날아온 대표팀 차출. “진짜 가기 싫었어요. 히딩크감독이 절 어떻게 알겠어요. 틀림없이 또 시간만 때우다 오겠구나 싶은게 겁이 덜컥 나더라구요.”

여기서 그는 자신감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세네갈과의 첫 경기 선발 명단에 올랐을 때도 조금 뛰다 교체되려니 했어요. 근데 90분을 다 뛴거예요. 다음 미국과의 평가전에도 또 뛰고 그런게 쌓이면서 자신감이 붙고 그제서야 내가 명실상부 대표팀이구나는 정체성을 뿌듯하게 확인하게 된 거죠.”

국가대표팀 차출을 흔치 않게, 어쩌면 유일하게 거부하고 싶었던 선수, 최진철은 좀 엉뚱한 편이다. 그의 결혼 사유도 그렇다. 1996년 전북현대 입단한 그는 시즌이 한창인 6월 결혼식을 올린다. ‘결혼은 비시즌에 한다’는 프로 세계의 암묵적인 불문율을 깨버린 도발였다. 막 입단한 새내기가 시즌이 한창인 6월에 결혼식을 올렸으니.. “욕 바가지로 먹었죠. 근데 안할 도리가 없었어요”한다. 도대체 왜?

“합숙소 생활이 너무 싫었어요. 대학부터 군대까지 지긋지긋했던 합숙소 생활 프로갔으니 ‘아듀’인 줄 알았죠. 근데 웬걸 총각들은 합숙소란 거예요. 결국 탈출 방법은 결혼뿐이었던 겁니다.”

물론 부인 신정임씨와는 대학 시절 만나 교제기간도 길었으니 결혼이 마땅했고 최진철도 합숙소만 아녔다면 시즌을 마친후 ‘욕바가지’ 대신 ‘축복바가지’를 쓰고 식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놈의 합숙소가 너무 지긋지긋한 바람에 한 달 만에 후다닥 결혼식을 올려버린다.

“다음 경기 사흘 남겨두고 제천서 훈련하다 말고 새카맣게 탄 채 서울 올라와 식 올렸죠. 화장으로도 가릴 수 없는 시커먼 신랑. 그래서 아직까지 결혼사진 안봐요”한다. “신혼여행은요?” “당연히 못갔죠. 식 마치고 바로 내려가 차경복 감독님한테 ‘저 결혼하고 왔습니다’ 하니까 ‘어, 그래? 그럼 들어와’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저 오늘 결혼 했는데요’ 하니까. ‘아, 그렇구나. 그럼 낼 들어와’ 하시는데...와, 정말로 첫날밤 손만 잡고 잤습니다. 결혼했다고 헬렐레한다 소리 듣고 싶지 않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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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7 대표팀 감독 시절의 최진철.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근 40년 축구인생 중 유일한 ‘탈주사건’도 엉뚱하다. 탈주 자체가 아니라 ‘탈주후 복귀 결심’이 그렇다.

90년 1월 혹은 2월, 고향 제주를 떠나 숭실대로 진학한 최진철의 축구인생에 위기가 찾아온다. 일단 앞서 언급한 합숙생활이 그의 신경을 먼저 자극했다. 제주 오현고까지 자유로웠던 그의 축구영혼은 ‘합숙’이란 굴레에 심한 거부반응을 일으킨다. 그리고 다음이 포지션 변경. 고등학교 시절까지 그는 스트라이커였다. 하지만 숭실대 입학해선 수비로 포지션이 바뀌었다. 훈련 참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는 위치 선정을 잘못한 탓에 운동장에서 30분간 호된 질책을 받는다. ‘포지션 바꾼 지 한 달도 안됐다구요!’란 항변은 끝내 목울대를 넘지 못했다. 자존심에 상처 입은 그는 선배들이 샤워하는 틈을 타 탈주를 감행한다.

그리고 불행히도 서울 상경 제주 도민의 갈 곳은 너무 뻔했다. 서울 사는 누나에게 돈 빌려 비행기 삯 마련하려던 최진철은 미리 연락받고 기다리던 누나의 설득에 말려 채 24시간도 되지 않아 복귀를 강요당한다.

“다시 학교 가는데 정말 지옥문 들어가는 기분였어요. 피식피식 웃는 선배들 하며 어이없고 황당해 하는 감독님 표정까지.. 내 평생 다시는 못할 짓이 그거더라구요. 그때 결심했죠. 다음에 다시 튈 땐 기필코 축구 때려친다.” 그 결심이 무서워 그는 단 한번의 추가 탈주 기도 없이 아직도 축구와의 연을 이어가고 있다.

1996년 입단부터 2007년 은퇴까지 13시즌을 전북현대모터스 원팀 맨으로 뛴 이유도 범상치 않다. “입단 당시 팀 사정이 열악했어요. 선배들 보니 이적도 많고 은퇴도 잦더라구요. 그런 걸 보며 결심했죠. ‘난 이 팀에서 은퇴하고 말리라’” “아니 그러니까 왜 그런 결심을 했어요?” “글쎄 왜 그랬을까요. 지금은 이유도 모르겠는데 당시엔 그게 참 마땅해 보였거든요. 중간에 좀 ‘바보 같다’는 생각도 들긴 했는데 워낙 고지식한 편이라 결심을 바꿀 순 없더라구요. 다행히 운 좋게 감독님들 바뀌면서도 많은 경기 뛸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고 긍정으로 매듭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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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지도자를 거쳐 이제는 축구행정가로 활동하고있는 최진철 위원장./축구회관= 김창현 기자

그는 요즘 사회적응에 애를 먹고 있다. 은퇴 후 강원FC코치(2007~2011)를 시작으로 U-17 대표팀 감독(2014~2015)-포항 스틸러스 감독(2015~2016) 등을 거쳤지만 여전히 현장맨였다. 금년 프로축구연맹 경기 위원장이 되고 나서야 8시 출근, 5시 퇴근이란 샐러리맨들의 루틴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처음 들어와 3개월간 하루도 못쉬었어요. 금요일까지는 출근하고 토요일 일요일은 경기장 나가고 또 출근하고.. 쓰러지게 생기고서야 직원들한테 물어봤죠. ‘근데 나 언제 쉬어?’ ‘위원장님 편하실 때요’ 라는데 이건 언제 쉬란 건지... 5시 퇴근인데 또 5시에 일어나는 사람들이 없어요. 공연히 엉덩이 붙였다 뗐다 하는 시간 좀 보내다가 안되겠더라구요 집이 용인이라 퇴근시간대 걸리면 난리거든요. 그래서 요즘은 뻔뻔하게 먼저 갑니다 하고 퇴근하죠.” 낯설게도 중년의 얼굴로 새내기 직장인의 애환을 하소연한다.

월요일이면 주말 K1 6경기, K2 5경기의 경기감독관들이 모여 경기를 평가한다. 주간 MVP, 베스트일레븐 등도 선정한다. 화요일에는 11경기 심판 판정을 평가한다. 수요일 주중 경기 있으면 다시 목요일 경기평가, 금요일 판정평가회의를 갖는다. 중간중간 상벌위도 열리고 이것저것 자잘한 행정업무가 이어진다. “근데요, 요새는 토요일 일요일 쉬는 게 더 힘들어요”란 고백처럼 주말이면 업무 색채를 살짝 빼고 다시 경기장 나가기 일쑤다. 축구관련 직장인이 됐지만 그는 스스로를 여전히 ‘현장체질’이라고 평가한다.

월드컵을 두 번 치른 국가대표 선수였고 지도자였으며 이제는 축구행정가가 된 최진철 위원장은 16강 진출의 분수령이 될 멕시코전을 앞두고 있는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한다.

“부담감이 클 것이다. 부담감은 짓눌리면 발을 무겁게 하고 떨쳐내면 오히려 경기력을 고양시킨다. 부담감을 떨쳐내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이 동료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다. 자신감은 이 경기에서 내가 뭘 할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 플레이에 집중하다 보면 절로 자라난다. 동료를 믿고 월드컵이라는 축구역사의 한 페이지에 자신의 플레이를 즐겁게, 기꺼이 새겨넣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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