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박정민 "'변산'은 행복했고, 난 불안하다"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6.21 12:21 / 조회 : 3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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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사진제공=메가박스


박정민이 '동주'에 이어 '변산'으로 이준익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췄다. 어느덧 그는 이준익 감독의 페르소나가 된 것 같다. 루저, 외톨이, 약한 자, 소외된 자, 그래도 희망을 찾는 자.

이준익 감독은 '변산'에 박정민을 그렇게 입혔다. '변산'은 '쇼 미 더 머니'에 6번 떨어진 무명 래퍼가 10년간 찾지 않았던 고향 변산에 돌아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영화. 박정민은 아버지와 불화하고, 고향을 지우고 싶고, 랩으로 자신을 토로하고 싶은 학수 역을 맡았다. 전작 '그것만이 내세상'과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서번트 증후군인 천재 피아니스트를 연기했던 그는, 이번에는 랩으로 자신을 표현해야만 했다. 더 어려웠다고 했다. 박정민의 이야기를 들었다.

-'변산‘은 왜 했나.

▶재밌을 것 같았다. 시나리오를 읽기 전에 먼저 이준익 감독님에게 이런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고 해서 호감이 있었다. 그러다가 시나리오를 받으러 감독님 사무실로 갔다. 그 때가 ‘그것만이 내세상’을 찍을 때였는데 스트레스로 너무 힘들었다. 연기에 연습에 고민이 많았다. 당시 이준익 감독님 만나서 영화 이야기는 안했다. 감독님이 “뭐가 그렇게 힘드니”라고 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체가 힐링이었다.

시나리오를 읽는데 너무 재밌더라. 평소 힙합을 좋아하기도 하고. 지금 아니면 이런 이야기를 못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준익 감독님 작품이기도 하고. 그래서 했다.

-익숙한 이야기다. 랩이 있을 뿐이지. 전형적인 이야기를 전형적이지 않게 풀어야 할 영화고. 어떤게 달랐다고 생각하나.

▶전혀 보지 못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호감을 주는 부분들이 많았다. 엉뚱한 친구들과 대사들이 무척 좋았다.

-랩은 어떻게 썼나.

▶원래 시나리오에는 랩이 없었다. 레퍼런스만 있었다. 랩은 얀키 형이 작업을 했다. ‘쇼 미 더 머니’ 1,2차 예선 랩을 녹음해놓고, 3차 예선 랩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머니에 관한 랩이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아무래도 학수의 마음은 내가 제일 잘 알테니, 내가 한 번 랩을 써보고 얀키 형이 봐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런데 그걸 잘 봐주셔서 하다 보니 2차 예선 랩만 빼고 다 내가 랩을 썼다. 그래서 2차 예선만 랩에 영어가 있고, 나머지는 영어가 없다. 한국 랩도 잘 못하는데 영어 랩은 정말 못하니깐.

-‘8마일’ 같은 래퍼 영화들은 참고를 했나.

▶정말 좋아하는 영화들이 많은데 일부러 더 안 봤다. ‘변산’과 그 영화들은 톤앤매너가 완전히 다르기에 괜히 영향 받아서 흉내를 내면 안 될 것 같았다. ‘변산’은 좀 더 촌스러워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그런 영화들에 영향을 받아서 촌스럽게 나오는 걸 못 받아들이면 괜히 감독님 탓을 할 것 같았다.

-감독이 힙합을 모르기에 박정민에게 힙합을 다 맡겼을텐데. 부담스럽진 않았나.

▶처음부터 감독님이 힙합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감독님 스스로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나도 힙합을 좋아할 뿐이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니깐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감독님은 얀키 형에게 많은 부분을 맡겼다. 내게는 힙합을 하는 연기를 맡겼고. 무엇보다 감독님이 힙합을 모르는데 그건 이렇고, 저건 아니다, 이런 이야기를 안 해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시면서 완전히 믿고 맡겨주셨다.

-랩은 어떻게 연습했나.

▶촬영 3개월 전부터 연습했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프로처럼은 안될 테니, 주로 감정과 딕션, 발성에 집중했다. 학수의 랩은 몰아치는 비트가 아니라 넉살의 ‘필라멘트’처럼 기교 보다는 자기를 그대로 표현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랩 연습이 ‘그것만이 내세상’ 피아노보다 고통스러웠다. 피아노는 아무리 내가 했다고 하지만 좀 더 잘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할 수 있는 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랩은 그럴 수가 없으니깐. 호기롭게 할 수 있다고 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전라도 사투리는 어땠나.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서울에서 살다온 사람이니깐 늬앙스만 신경을 쓰면 될 것 같았다. 학수는 외롭고 동떨어지고 고향이 어색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섞이지 못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사투리를 덜 쓰기도 했다.

-보통 아버지와 불화를 겪고 떠난 아들, 힙합을 하는 루저, 이런 캐릭터는 거칠게 표현하기 마련인데, 그렇게 안했다. 어떻게 차별점을 두려 했나.

▶최대한 전형적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각 상대마다 다르게 반응하는 게, 관계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비추는 게 더 진짜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수랑 나와 닮은 부분도 많아서 더 그렇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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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사진제공=메가박스


-‘그것만이 내세상’ 당시 불안해서 더 자신을 몰아붙인다고 했는데. 여전한가.

▶똑같다. 불안하다. 제 자신에게 관대함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내가 나를 무시한다고 해야 할까. 밖에서는 박정민이 자리를 잡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도 내가 나온 영화를 보면 화가 난다.

어제도 기자시사회에서 영화를 처음 보고 난 뒤 너무 화가 나서 밤에 잠을 잘 못 이룰 정도였다. 좀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그 때 왜 저렇게 했지, 이런 생각이 계속 든다. 그래서 게속 불안하다.

-‘변산’은 힐링을 목표로 한 영화고, 촬영장 분위기도 그랬을텐데, 그럼에도 불안한가.

▶그것과는 좀 다른 것 같다. 영화를 찍을 때는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그것과 내가 나온 영화가 세상에 까질 때는 다른 것 같다. 만드는 것과 평가받는 것에 대한 마음이 다르다.

-오글거리는 장면도 적잖다. 영화에 녹아들면 그 장면이 유쾌하고 재밌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글거려서 민망해질 수도 있는데. 찍을 때는 어땠나.

▶원래 오글거리는 걸 너무 너무 싫어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찍을 때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다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는 누군가에게는 그런 장면이 오글거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대신 이 영화를 재밌게 봐주신 분들도 많아서, 아 많은 분들이 요즘 웃고 싶어하는구나란 생각도 했다.

‘변산’은 전형적이고 구질구질한 이야기지만 재밌고 엉뚱하고 유쾌한 영화다. 그런 영화를 만든 우리의 선택이 맞을 수도 있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오른 쪽 팔뚝에 한자로 ‘참을 인’을 문신했는데. 왜 했나.

▶너무 화가 나서 참으려고. ‘그것만이 내세상’이 끝나고 내 안에 끓어오르는 게 많았다. 그렇다고 때려 부술 수도 없고. 견뎌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마침 ‘변산’을 하니 겸사겸사 문신을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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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민/사진제공=메가박스


-김고은과는 어땠나.

▶원래 친한 동생인데 처음 연기를 같이 했다. 너무 훌륭하더라. 점점점 고은이는 촬영장에 녹아들고, 난 점점점 힘들었다. 전 회차에 나오기도 하고, 1번 크레딧이라는 부담도 있었다. ‘그것만이 내세상’에서 이병헌 선배가 그랬던 것처럼 촬영장 분위기를 이끌고 에너지를 주는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하다보니 점점 지쳐서 못하겠더라. 랩도 써야 하고 연기도 해야 하고 점점 예민해졌다. 그래서 내가 못하는 부분을 고은이가 다 채워졌다. 완전히 어른이다. 내가 힘들 때도 위로해주고. 많이 의지했다.

현장에서 내가 예민해진 걸 아니깐 스태프들에게 미안하더라. 그래서 회식을 할 때 스태프 한분 한분에게 “제가 예민해서 죄송해요”라고 사과를 했다. 그런데 스태프 중에 ‘동주’를 같이 했던 분들이 있었다. “무슨 소리냐”며 “‘동주’ 때 더 심했어”라고 하더라. 내가 할 수 있는 몫이 있고 아직 먼 것 같다.

-아버지 역을 맡은 장항선과는 어땠나.

▶장항선 선생님은 10년만에 영화를 하신다. 리딩 때 아들 역이고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 일부러 그때까지 만든 랩을 막 했다. 연기도 더 강하게 하고. 그랬던 선생님이 “네가 어떤 애인지 알겠다. 편하게 하라”고 하시더라.

정말 현장에서 어떤 젊은이들보다 열정적이셨다. 이마에 소주병을 내리칠 때는 머리에서 피도 났다. 내가 머리를 들이미는 건 원래 시나리오에 없었다. 그래서 “컷”하고 난 뒤에 “죄송하다”고 했더니 “아니다. 더 해라. 배우끼리는 그런 것이다”라고 하셨다. 맞붙을 때는 진짜로 때려주셔서 감정을 끌어오르게도 하셨다. 테이크가 많이 가서 감정이 소진됐을 때는 일부러 한 번 더 때려달라고도 부탁했다.

-군무는 어땠나.

▶원래는 더 멋있어야 했는데 내가 워낙 춤을 못 춘다. 탭탠스도 일주일에 두 번씩 연습했는데 정말 잘 안되더라. 선생님이 웨이브도 가르쳐주고 많이 준비했는데 내가 워낙 못하니 율동을 하자고 하더라.

-차기작은

▶‘타짜3’다.

-부담스럽진 않나. 연기 잘하는 선배들에게 뭍어가는 방식을 써도 될 법한데. 용기 있는 선택을 계속 하는데.

▶부담스럽다. 그래도 감독님을 믿게 되더라. 한편으로는 운명 같다. 그게 내가 가야 할 길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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