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마녀' 여성 슈퍼히어로물의 시작..박훈정의 터닝포인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6.20 09:30 / 조회 : 1228
  • 글자크기조절
image


비밀 조직에서 탈출한 소녀. 기억을 잃은 채 살아간다. 그 소녀를 찾는 악당들이 있다. 익숙한 이야기다. 박훈정 감독은 언제나 그렇듯, 이 익숙한 이야기를 그만의 방식으로 풀었다. 피가 철철 넘쳐흐른다.


10년 전 의문의 사고가 일어난 시설에서 홀로 탈출한 소녀. 나이도 이름도 모르는 자신을 거두고 키워준 노부부에게 자윤이란 이름을 얻는다.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자윤. 부부의 자랑이다. 몸이 약한 게 흠이라면 흠이다.

소값 폭락에다 엄마는 치매를 앓는다. 아빠도 몸이 성치 않다. 자윤은 어려운 집안 사정을 돕기 위해 친구의 권유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상금이 5억원이다. 지역 예선 1등으로 전국에 얼굴을 알린 그녀에게 이상한 사람들이 다가오기 시작한다.

얼굴이 새하얀 남자가 시비를 건다. "마녀 아가씨"라며. 생방송이 끝난 뒤에는 수상쩍은 검은 색 양복 입은 아저씨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자윤을 찾으려는 사람들의 배경에는 수상쩍은 여인 닥터백과 얼굴 시커먼 남자 미스터최가 있다.

곧 본사로 간다는 닥터백에겐 얼굴 새하얀 남자를 비롯한 어린 무리들이, 미스터최에겐 정예요원들이 있다. 닥터백과 얼굴 하얀 남자는 자윤을 잡아 길들이려 하고, 미스터최는 자윤을 죽이려 한다. 다가오는 위기 속에서 자윤의 비밀은 어떻게 드러날 것인가, 영화는 점점 핏빛을 띤다.


'마녀'는 슈퍼히어로의 탄생기다. 여느 슈퍼히어로물처럼 비밀을 갖고 있는 인물, 그 인물을 추격하는 악당들, 주인공의 각성과 응징, 그리고 여정의 시작. 박훈정 감독은 이 슈퍼히어로를 여성으로 선택했다. 소녀로 상정했다. 마녀라고 이름지었다.

마녀가 바로 이 슈퍼히어로의 정체성이다. 프롤로그부터 마녀의 정체성을 소개한다. 힘이 있는 여자. 남과 다른 여자. 그리하여 주위에서 박해받는 여자. 때로는 이용당하고, 때로는 조종당하는. 이용하고 조종하려는 사람들은 마녀라 부르지만, 스스로는 마녀라고 하지 않는 여자.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애가 다 그렇지" "내 친구가 뭐가 이상해"라는 여자. 이 여자의 반격이 '마녀'의 정체성이다.

박훈정 감독은 이 정체성을 바탕으로 영화를 둘로 나눴다. 평온한 시골의 일상에 닥쳐오는 위기, 그 위기에서 반격. 중간 지점을 반전으로 설정해 영화를 뒤집는다. 박훈정 감독 특유의 느린 호흡이 전반을 지배한다면, 박훈정 감독 특유의 피칠갑이 후반을 지배한다. 이 전반과 후반을 마녀의 정체성이 관통한다. 박훈정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진화했다.

'VIP' 학습효과인지, '마녀'의 잔혹성은 덜하다. 핏빛은 여전하지만 역설적으로 액션이 완충 작용을 한다. 현실과 환상 같은 액션이 잔혹함을 중화한다.

여성 슈퍼히어로물이지만, 여성 슈퍼히어로라는 정체성은 되려 엷다. 사랑 타령으로 샛길로 빠지지 않으며, 여성의 주체성을 강조한 장치도 없다. 이 없음이 매력적이다. '루시'나 '악녀', '제시카 존스' 등과 닮은 듯 다른 지점이다. 마녀로서 정체성. 이 정체성이 차별점이다.

주인공 자윤을 맡은 김다미는 좋다. 소녀와 여성 틈바구니에 있는 듯한 그녀의 이미지가 '마녀'와 십분 어울린다. 각성 전후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미래가 기대된다. 닥터백을 맡은 조민수는 아쉽다. 히스테릭한 매드 사이언티스트지만, 설명에 너무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얼굴 하얀 남자 역할을 맡은 최우식. 미스터최를 맡은 박희순. 서로 다른 두 부류의 악당들을 맡은 만큼, 색깔이 더 분명했다면 좋을법했다. 장난치는 악당들과 정부요원 같은 악당들의 온도 차이가 크지 않다. 꼭 그렇게 모든 악당들이 욕을 입에 달고 살 필요는 없었다.

'마녀'는 박훈정 감독 영화에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그는 '신세계'와 '대호'와 'VIP'를 거치면서 느린 호흡과 핏빛 폭력의 균형, 드라마와 액션에 자신만의 리듬을 찾은 모양이다. '마녀'는 서스펜스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기 보다는 느린 호흡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박훈정만의 리듬이다. 이 리듬에 몸을 맡기면 '마녀' 후속편을 기대하게 될 것 같다.

6월27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15세 이상 관람가라기에는 폭력의 수위가 높다.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
starpoll 배너 google play app st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