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관부재판이란 연대와 승리의 기록 ①

[리뷰] '허스토리'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6.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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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허스토리' 포스터


영화의 시작과 함께 'History'(역사)라는 단어가 붉은색 'Her'와 흰색의 'story'가 더해진 '허스토리'로 바뀐다. 남성이 아닌 여성 중심의 서사를, '그녀'의 '이야기'를 선언하는 출발이다.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영화 '허스토리'(Herstory)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자 '관부재판' 실화를 다룬 법정드라마다. 존재 자체가 '역사'인 '그녀'들이 이뤄낸 연대와 승리의 기록이기도 하다.

부산의 여행사 사장 문정숙(김희애 분)은 부산 지역 여성 기업가 모임 주축 멤버다. 김학순 할머니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 고발 기자회견이 세상을 뒤집어놓은 1991년, 기생 관광을 알선했다는 혐의로 영업정지를 맞은 정숙은 뜻하지 않게 사무실에 위안부(정신대) 피해 신고 센터를 차리게 된다. 피해 할머니들의 사연을 접하는 한편 16년 간 그의 집안 살림을 맡아 준 배정길(김해숙 분) 할머니 또한 위안부 피해자였음을 알게 된 문정숙은 치미는 분노와 함께 아무 것도 모른 채 마음 편히 살아온 데 대한 부끄러움을 느낀다. 사업가 특유의 추진력과 승부욕을 발휘한 그녀는 재일교포 변호사 이상일의 도움을 얻어 할머니들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는 재판을 추진한다. 그리고 1992년 말 일본 시모노세키 지방법원에서 역사적인 '관부재판'이 시작된다.


'관부재판'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수많은 위안부 소송 중 유일하게 일부 승소를 받아낸 재판이다. 한국에선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당시 일본을 발칵 뒤집어놓은 대사건이었다. 일본 시모노세키(下關, 하관)와 부산을 오가며 벌어진 재판이라 해서 '관부재판'으로 불린 이 재판을 위해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간 10명의 할머니들이 한일해협을 오가며 재판정에 섰다. 영화 속 문정숙처럼 혼자 잘 먹고 잘 산 것이 부끄러워 위안부 할머니들을 다룬 영화를 만들려 준비해 왔다는 민규동 감독은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관부재판'이란 작은 승리를 스크린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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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허스토리' 스틸컷


최근 몇 년 '귀향', '아이 캔 스피크' 등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영화들이 나와 주목받았다. '허스토리'는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려 처절한 상처를 스크린에 재현하는 '귀향'과 다르며, 코미디의 외피를 쓰고 우회법을 시도한 '아이 캔 스피크'와도 다르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벌어진 '관부재판'의 과정을 시간순으로 따라가는 정공법을 썼다.


영민하게도 '허스토리'의 주축은 피해 할머니가 아닌 제 3자, 여성 사업가 문정숙이다. 문정숙은 자신의 회사에서 자신도 몰래 벌어진 기생관광 때문에 영업정지를 당하자 분통을 터뜨린다. 사업가인 그녀는 재판을 했으니 이겨야 한다며 결과에 집중한다. 감독은 그런 문정숙을 통해 일본 재판관과 스크린 앞에 선 관객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설사 몰랐다 하더라도 그 관할 하에 벌어진 범죄에 대해 국가와 개인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리고 승리를 위해서라면 과정은 중요하지 않은가.

이는 회상신 하나 없이 영화 속 시점에서 할머니들의 기억과 몸에 새겨진 상처를 비추는 '허스토리'의 화법과도 일맥상통한다. 위안부 재판에는 증거가 없다. 할머니들의 기억과 몸이 곧 증거다. 영화는 이 땅에서도 그녀들에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입을 놀린다'는 막말과 비난이 쏟아졌음을 꼬집는 한편, 그 자체가 전쟁범죄의 증거이자 역사인 그녀들을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동시에 '위안부'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질 수 없는 그녀들 하나하나의 삶을 그려낸다. 얼굴이 알려질까 두려워 신고조차 꺼렸던 할머니들이 '우리가 국가대표'라며 당당히 고개를 드는 순간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다르고 또 바르게 위안부 피해자들을 다루기 위해 고심한 티가 역력한 '허스토리'가 감정적으로도 강렬하게 관객들을 사로잡는 수 있는 데는 배우들의 열연이 큰 몫을 했다. 원고단장 문정숙 역의 김희애는 부산 사투리와 유창한 일본어를 장착하고 거침없는 걸크러시를 선보인다. 김해숙 예수정 문숙 이용녀 등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로 분한 네 명의 배우가 선보이는 최후의 증언들은 마치 네 개의 모노드라마를 연이어 보는 듯한 감흥을 전한다.

위안부 소재 영화의 가슴 아픈 답답함이 부담일 수 있다. '허스토리'는 보고 난 뒤에 답답함이 더 덜어질 영화다. 개봉에 3주 앞서 시사회를 연 건 그만큼 작품에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할 터다.

6웚 27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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