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이창동 감독 "하필 허어로물에 처절하게..'버닝'의 운명"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5.26 11:00 / 조회 : 2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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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영화 '버닝'은 우여곡절 끝에 개봉했고, 제71회 칸국제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8년 만에 신작을 내놓은 감독 스스로도 예상을 뛰어넘는 극찬에 '왜 이러지' 싶을 정도였지만 칸의 본상은 수상하지 못했다. 다만 국제영화평론가연맹이 주는 피프레시 상, 최고의 기술스태프가 받는 벌칸상을 미술감독이 품에 안았다. 물론 의미있는 결과지만, 황금종려상을 예견할 만큼 기대가 컸던 터라 아쉬움도 컸다. 프랑스 칸이 아닌 서울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이창동 감독은 솔직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애초 '버닝'은 대담한 기획이었다. 이창동 감독과 유아인, 스티븐 연과 신예 전종서가 만난 화제작이었지만, 어느 하나 명확한 답을 내어주지 않는 겹겹의 미스터리를 청불 등급으로 풀어가면서 제작비 80억을 들였다. 어느 하나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다. 모호한 가능성들을 모두 열어둔 채로, 연기는 물론 촬영 미술 음악 어느 하나 빠뜨리지 않고 공들여 매만진 기색이 역력하다. 아름답고도 미스터리한, 이창동의 새로운 귀환이다.

칸영화제 수상 소식이 들려왔다면 '버닝'이 관객에게 더 성큼 다가갈 계기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창동 감독은 "관객이 새롭게 느끼더라도 수상을 하면 작품이 인정받는 셈이 돼 좋게 해석하게 되기도 한다. 감상에 이점이 되는 셈인데 그것이 사라져버렸다"며 "기대를 너무 높여놔서 실망감이 큰 것 같다"고 털어놨다.

"저의 개인적인 것도 그렇지만 한국영화 전체로도. 이번에 그 쪽에서 이야기했던 식으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면 한국영화 전체에도 자극이나 활력을 줄 수 있었는데, 사실 그것이 아쉽다."

흥행에 대한 아쉬움도 전해져 왔다. 그러나 작가이자 감독이며 제작자이기도 한 이창동 감독은 "흥행이라는 걸 성공모델로만 따라가서는 크게 보면 꼭 발전적이라 볼 수 없다"고 싶었다. "누군가는 저지르고 누군가는 모험을 해야 한다. 오늘 낯설게 봐도 다음에는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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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의 유아인, 전종서, 스티븐 연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버닝'은 세 젊은이의 이야기다. 남루한 고향집을 어쩔 수 없이 지키게 된 청년 종수, 불쑥 그에게 다가온 자유분방한 여자 해미, 그리고 해미가 데려온 '개츠비' 같은 남자 벤. 종수는 해미에게 애틋한 마음을 품지만, 어느 날 해미는 간 곳 없이 사라져 버리고, 종수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게 취미라는 벤이 더 수상해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계속 따라가도 영화는 도통 명쾌한 답을 주지 않는다. 도리어 해미라는 여자가 대체 어떤 사람인지, 벤은 또 누구인지, 종수는 또한 뭘 하는 건지 더 질문만이 가득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창동 감독을 통해 '버닝' 속의 세상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스티븐 연 벤 역을 제안하고 이틀 뒤 그가 마침 한국에 3일간 올 일이 있어 3일 간 매일 만났다. 하루키의 원작 소설만을 읽고 온 그는 내가 만들려는 인물 이야기를 듣고 자기는 잘 이해한다면서 존재론적 위기를 이야기하더라. 일종의 공허함 같은 것인데 그게 벤이라는 인물을 받아들이는 데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했다. 말로 설명하기 이전에 몸으로 이해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수는 해미를 사랑한다고 말한다. 종수처럼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여자를 제대로 못 만나본 친구들이 의외로 꽤 많더라. 그런 친구가 누군가와 그런 경험을 하고 또 자기 나름대로 의탁한다면 충분히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게 낭만적이고 대단하지 않아도 아주 작은 계기로도 유일한 존재가 될 수 있다. "

▶"윌리엄 포크너와 무라카미 하루키('버닝' 원작인 하루키의 단편 '헛간을 태우다'(Barn Burning)는 포크너의 또 다른 소설 '헛간을 태우다'(Barn Burning)의 오마주이기도 하다)의 대립이랄까.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지점이었다. 긴 이야기가 필요하다. 저 역시 문학 또는 서사가 어떻게 돼야 하는지 평생 생각했던 사람이다. 단순하게 이야기하자면,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에 살고 있는 젊은 포크너 이야기랄까. 세상은 무라카미의 세계처럼 변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그런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이야기는 '버닝'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지만, 그는 쉽게 '답'을 내놓지 않았다. '이게 맞느냐, 저게 맞느냐?' 식의 질문을 요리조리 피해갔다. 그저 "○○일수도 있고 △△일수도 있다", 정황상 그렇다", "모르겠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고 했고, "그 인물이 왜 그랬을까요"라며 되려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드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질문할 뿐"이라며 "해석의 여지를 늘 남겨둔 것이 영화 '버닝' 미스터리의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회자됐던 '청춘의 분노'라는 테마도 하나의 해석일 뿐이라며 이같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영화를 만들고 공개하고 하는 과정에 미스터리가 더 커졌다…. 요즘 청춘의 분노가 이전과 제일 큰 차이는 뭐냐면, 그 때는 희망이 있었다.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물질적으로도 열심히 하면 미래는 좋아지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은 분노해도 희망이 없고, 분노하지 않아도 희망이 없다. 세상이 앞으로 더 잘될 것이라는 믿음 같은 건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지난 촛불 혁명을 거치면서 뭔가 이뤘다는 생각이 있다. 어느 정도 해소시켜 준 것도 같고, 저도 충분히 그런 걸 나눴다. 그런데 우리 삶의 근본이랄까. 그 구조가 바뀌는 것은 훨씬 오래 걸리고 훨씬 많은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것이 너무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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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의 이창동 감독 / 사진제공=CGV아트하우스


뭔가 잘못됐는데 그게 뭔지 꼬집을 수 없는 '버닝'의 아이러니는 영화 바깥에서도 이어진다. 개봉을 전후해 '버닝'은 유난히 영화 외적 이슈들로 곤욕을 치렀다. 영화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도 계속됐다. 이창동 감독은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임을 전제하며 "이 상황 자체가 운명적인 것 같다"고 털어놨다.

"'버닝'은 종수나 해미 같은 처지에 놓인 청년의 이야기인데 사실 그것이 공개되는 자리는 칸의 붉은 카펫이다. 그건 벤의 세계 꼭짓점에 있는 비현실적 세계다.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미스매치'다. 영화를 찍고 칸에 갈 때마다 느낀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극장에서 '어벤져스:인피니티 워'나 '데드풀2' 같은 마블의 영화와 싸운다. 세상을 슈퍼히어로가 구해준다는 이야기다. 세상의 미스터리에 대해 어떤 분노를 갖고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버닝'같은 영화가 하필이면 이런 영화와 맞붙어서 처절하게 깨지고 있다. 그것이 '버닝'의 운명일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이창동 감독은 슈퍼히어로는 과연 세상을 구원하느냐 반문했다. 한 이창동 감독은 "우리 같은 서사는 지금 대중들에게 별로 환영받지 못할 수도 있는데. 그럼 환영받는 서사는 뭔지,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지 궁금하다"며 "우리는,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도 든다"고 털어놨다. 또 그의 다음 작품을 보려면 또 몇 년을 기다려야 하나 걱정이 됐다. '의욕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다' 했지만, 다행히 이창동 감독은 지난 8년간 하려 했던 이야기도, 보류해 놓은 프로젝트가 많다며 "짧은 시간에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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