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 미스터리의 발화점에 '그녀'가 있다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5.25 17:00 / 조회 : 4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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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버닝'의 해미 역 전종서 / 사진=영화 '버닝' 스틸컷


아래 기사에는 영화 '버닝'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계단을 힘들게 올라 가난한 여자의 방. 반짝이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반사한 한 뼘 햇살을, 그것도 운이 좋아야 하루 한 번 볼 수 있는 원룸엔 그녀의 흔적들이 아무렇게나 어질러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부끄러운 기색도 없이 그 곳에서 옛 이웃이자 동창이었던 종수와 섹스를 합니다. 그것은 그녀, 해미의 삶입니다.

해미는 제 방이 어떤지 남이 자신을 어찌 보는지 신경쓰지 않습니다. 없는 살림에 아프리카 여행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그녀는 채워지지 않는 어떤 것을 찾으려는 중입니다. 대마에 취한 어느 날, 해미는 기울어가는 해가 내뿜는 마법 같은 빛을 맨몸으로 맞으며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그레이트 헝거'의 춤을 추다 끝내 울음을 터뜨립니다. 음울한 재즈 선율이 더해진 그 한 장면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영화 '버닝'은.

'버닝'은 두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두 사람은 같은 한국을 너무나 다르게 삽니다. 분노 조절 장애 아버지가 남겨 놓은 냄새 나는 축사와 녹슨 용달차가 종수의 삶이라면, 늘 자신만만한 벤에게는 강남의 호화 빌라와 매끈한 포르셰가 있습니다. 기댈 곳 없는 종수의 삶이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면, 뭣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는 벤은 모든 게 수상합니다.

두 남자 사이에 해미가 있습니다. 미스터리가 그녀와 함께 발화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봅니다. 재미있는 일이면 뭐든 한다는 벤에게 해미는 잠시 품은 욕망의 대상일 수도, 손쉬운 살인 대상일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순수하고 솔직한 몽상가일 수도, 헤픈 거짓말쟁이일 수도 있습니다. 해미를 사랑한다는 종수조차 고작 '너는 왜 남자들 앞에서 옷을 잘 벗냐. 창녀나 그러는 거야'라는 말로 그녀를 할퀴지만 그녀는 꿋꿋합니다.


해미는 질문 자체이기도 합니다. 그녀에 대한 답에 따라 관객도, 영화의 두 남자도 완전히 다른 해석과 선택을 하게 됩니다. 그녀가 하는 팬터마임이 '그 자리에 없다는 걸 잊어버려야' 하는 일이란 건 의미심장합니다.

'버닝'은 종잡을 수 없는 해미, 그 해미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연기한 신인 배우 전종서와 함께 미스터리를 겹겹이 쌓고 여러 해석의 여지를 열어두며 관객을 끌어당깁니다. 노을 속의 춤은 해미가 두 남자 이야기 속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론 아무 답도 쉽게 주지 않는 '버닝'에서 그 역시 달리 해석할 여지가 있겠지요.

해미 뿐이 아닙니다. 유아인이 연기한 종수도, 스티븐 연이 연기한 벤도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인, 복잡다단한 인물들입니다. 숱한 질문과 슬픔으로 가득한 '버닝'은 제71회 칸국제영화제는 물론이고 근래에 만난 여러 영화들 중에서도 특별한 작품이었습니다. 영화가 끝난 뒤에 영화가 새로 시작되는 듯한 경험을 오랜만에 했습니다. 칸영화제에서 '버닝'을 접한, 혹은 한국의 극장에서 '버닝'을 접한 많은 관객들도 아마 저마다의 해석으로 이 영화를 이야기하고 간직할 거라 생각합니다.

돌이켜보아도 '버닝'의 칸영화제 본상 불발은 아쉬운 이변이었습니다. 정말 '버닝'이 황금종려상을 수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봐도 수상을 기대할만한 수많은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국적과 상관없이 수많은 사람들도 '버닝'에 뜨거운 찬사를 보냈습니다. 황금종려상 1순위로 꼽은 유력 평론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최고 평점 기록까지 세운 유난한 찬사가 반작용이 될 수 있다기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만, 칸의 아홉 심사위원들이 '버닝'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줄은 몰랐습니다.

('버닝'은 본상과 별개로 세계최대영화평론가 조직이 경쟁부문의 작품 중 최고작 1편에게 주는 국제영화평론가연맹(피프레시, FIPRESCI)상을 받았고, '버닝' 신점희 미술감독이 최고의 기술적 역량을 보인 스태프에게 주어지는 벌칸상을 수상했습니다.)

피프레시 상을 받고 단상에 선 이창동 감독으로부터 "레드카펫은 비현실적이었는데 여기는 현실적입니다"라는 말을 들으며 올해의 칸영화제를 마감했습니다. '버닝'의 수상이 불발된 것이 못내 속상했던 그날, 이창동 감독은 아쉬움을 "홀가분하다"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유난히 영화 외적인 사건들로 뜨거웠던 '버닝'이었습니다. 그 들끓는 상황 모두가 마치 '버닝'처럼 느껴졌기에 그 말이 더 공감이 갔습니다.

화려했던 칸영화제는 벌써 막을 내리고 레드카펫이 걷혔습니다. 들썩였던 영화제가 열리긴 했었나 싶을 만큼 수많은 또 다른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여갑니다. 들썩이던 영화제를 지나 온 '버닝'은 치열한 극장가란 현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낮과 밤이 바뀐 시간을 보냈던 지난 칸영화제와 곱씹을수록 다른 것이 보이는 '버닝'을 돌아보면, 저 역시 현실과 비현실 사이 어딘가에 있다 돌아온 것 같습니다.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본다는 것을, 작품 앞에 높인 트로피로 영화을 재단할 수는 없다는 것을 새삼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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