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전' 그림자를 쫓다 그림자가 된 슬픈 느와르

[리뷰] 독전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5.16 11:07 / 조회 :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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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를 쫓는 남자. 그림자를 쫓다 그림자가 돼버린 남자. 독한 자들의 전쟁을 표방했지만 '독전'은 슬픈 그림자의 이야기다.

형사 원호(조진웅). 오래 동안 마약 조직 이선생 일파를 쫓았다. 늘 실패했다. 조직의 숨은 보스인 이선생이 나이가 몇인지, 이름이 뭔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조차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선생의 후견인이던 오연옥(김성령)이 원호를 찾는다. 오연옥은 마약공장이 폭파되면서 자신조차 제거되리란 위협을 느껴 제발로 원호를 찾았다. 오연옥은 원호에게 "이선생은 악마야"라고 말한다.

폭파된 마약공장에서 살아남은 건, 마약조직원 락(류준열)과 피투성이 개 한 마리. 원호는 락을 설득해 이선생을 잡으려 한다. 마약조직 내 아무도 이선생이 누구인지 모른다. 하나씩 꼬리를 밟아 갈 뿐이다. 연결고리는 락 뿐이다.

마침 락은 이선생 조직과 중국 마약 조직의 보스인 진하림(김주혁)을 연결하는 연결책이다. 진하림 얼굴을 아는 사람도 락 뿐. 원호는 자신의 이선생 일파 중간보스인 선창(박해준)인양 진하림을 만난다. 선창 앞에선 자신이 진하림인양 행세한다.

염전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마약공장. 그곳에서 마약 만드는 말 못하는 남매와 소통할 수 있는 건 락 뿐. 원호는 그곳에 덫을 놓고 기다린다. 리스트에 없는 조직의 실력자 브라이언(차승원)이 찾아온다. 진짜 꼬리밟기가 시작됐다.

꼬리밟기다. 하나씩 하나씩 밟는다. 마지막까지. 이해영 감독은 '독전'을 그렇게 만들었다. 함정을 파고, 하나씩 하나씩 꼬리를 밟는 과정을 담았다. 일상은 없다. 빠르다. 희망도 없다. 피와 복수, 허무뿐이다. '천하장사 마돈나' '페스티발' '경성학교'의 이해영 감독은 없다. 이해영 감독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건, 허무뿐이다. 점점 따뜻함이 사라지고 허무가 드리기 시작했던 그의 영화는 '독전'으로 허무의 세계로 완연히 들어갔다.

'독전'은 악을 쫓다 악이 된, 어둠을 보다가 어둠이 된,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잡히지 않는 무지개를 쫓는 사람의 모험을, 잡을 수 없는 그림자를 쫓는 사람의 고행으로 옮겼다. 그 고행은 잔혹하고, 광기가 서리지만 짙은 허무가 뱄다.

강한 원색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색을 입혔다. 각각의 색이 각각의 인물이다. 회색은 없다. '독전'의 색이다. 쉬어가는 틈은 없다. 강한 색이 쉬지 않고 휘몰아친다. 원작인 홍콩 느와르의 회색과 비장함 대신 짙은 원색과 허무함이 가득하다. 가히 한국 느와르라 할 만하다.

원색을 가득 담은 카메라 앵글은 종종 높고 낮다. 정면은 거리를 둔다. 인물을 낮은 각도에서 쳐다보게 했다. 경외를 담기 마련이어야 할 이 낮은 시선은 '독전'에선 신기하리만치 거리를 두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을 그림자로 만든다.

원호를 맡은 조진웅은 좋다. 이런 장르에서 주인공 형사가 보여주기 마련인 열혈이나 폭력, 마초 냄새가 적다. 그림자를 쫓는 허무를 그대로 담았다. 락을 맡은 류준열은 매우 좋다. 그의 출연작 중 가장 두드러진다. 표정없는 표정으로 공허를 그렸다.

진하림을 맡은 김주혁은 '독전'의 불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영화에서 피 같은 뜨거움을 더했다. 그의 평생을 담은 필모그라피에서 제일 다른 모습이자 제일 지독한 악역이다. 김주혁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게 했을 모습이다. 스크린에 멈춰버린, 그대로 영원으로 남은 모습이, 현실과 더해 영화에 허무를 더한다.

박해준과 차승원, 그리고 김성령. 배우의 다른 모습을 끌어낸 좋은 예로 남을 것 같다.

'독전'은 독하다. 마약 흡입에 살인, 노출 등이 여과 없이 소개된다. 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이 아닌지 의아할 정도다. 권선징악적인 이야기라서 보다는 짙은 허무 때문인 것 같다. 따라가다 보면 잔혹함 대신 빙하에 덩그러니 서 있는 모습을 마주하게 된다. 원색은 사라지고 흰색만 남는다.

5월22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한류스타 이민호가 카메오 아닌 카메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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