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문경은, "그 스승, 그 선배, 그 후배..감사합니다 "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5.06 06:05 / 조회 : 6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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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서울 SK 나이츠 감독. /KBL센터= 이기범 기자


찰진 기운 하나 없이 푸슬푸슬 헤식은 웃음으로 맞아준다. 그는 좀 지쳐있었다. 이미 다른 언론과의 장시간 인터뷰 뒤끝에 연이어 잡힌 또 하나의 인터뷰다. 지칠만했다. ‘우승의 업보’ 꼬리가 참 길다. 앞으로도 몇 건인가의 인터뷰가 더 있을 텐데..

2017~2018시즌 KBL 프로농구 우승을 차지한 서울 SK 나이츠 문경은 감독(47)을 지난 4일 늦은 오후 신사동 KBL 센터에서 만났다. 2011~2012 시즌 감독대행 시절부터 7시즌 동안 SK를 이끌면서 챔피언 결정전에 2번 진출시키고 올 시즌에는 끝내 18년 만에 팀 우승을 이끌어낸 문경은 감독. 올 시즌으로 계약이 만료됐지만 재계약은 너무도 당연해 보인다.

우선 그에게 우승 직후 흘린 눈물의 의미를 먼저 물어보았다. “처음 감독대행을 맡을 때부터 그런 시각들이 있었어요. ‘어려움이라곤 겪어보지도 못한 스타플레이어 출신이 어떻게 팀을 이끌겠어?’하는.. ‘문애런’이란 별명 들어보셨죠. ‘애런이 다했지. 니가 하긴 뭘..’하는 시각도 있었구요. 어디 다니는 게 정말 스트레스 였어요. 인터뷰 때도 말 한마디 하는데 몇 번을 생각해야 했고.. 근데 애런 없이 우승했잖아요. 기쁨의 눈물이죠.”

그는 ‘기쁨의 눈물’이라 말하지만 정확하게는 ‘7년 해묵은 개인적인 설움을 씻어낸 기쁨의 눈물’이라 표현하는 게 맞아 보인다.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감정이 눈물로 터져 나왔을 터였다. ‘이미 7년째 유지하고 있는 드롭존 전술이고 그 전술에 특화된 플레이어가 애런임을 설명 좀 하지 그랬어요?’란 질문에 그는 “‘그래 그러니까 니가 문애런이라고’하는 반응밖에 더 나오겠어요”하고 씁쓸히 웃는다. 사실이 그렇다. 내 맘 같지 않은 세상살이에서 해명은 곧잘 변명으로 변질된다. 그리고 변명은 말대꾸로 취급되어 보다 험상궂은 반작용을 불러오기 일쑤다. 이럴 때 속앓이는 온전히 본인 몫이다.

“그랬었는데 우승하고 ‘야, 문 감독 인제 인정한다’, ’작전 없는 줄 알았는데 작전 있으셨네‘ 등의 댓글이 보이는데 정말 눈물 나더라니까요”하면서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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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서울 SK 나이츠 감독./KBL센터= 이기범 기자


그는 스스로를 ‘운이 좋은 편’이라고 평가한다. 실제로 1997 - 1998시즌부터 프로 13시즌을 뛰어 통산 610경기에 출전한 문경은은 9천347점(평균 15.3점), 1천254리바운드(평균 2.1개), 1천351어시스트(평균 2.2개)를 기록했다. 3점슛 부문에서는 통산 1천669개(평균 2.7개)를 터뜨려 역대 1위에 올라 있다. 스스로 원했던 우리 나이 마흔까지는 선수로 뛰었다. 감독도 빨리 됐고 급기야 우승감독도 됐다. 그가 스스로 운이 좋다는 데는 이런 성과가 가능하도록 도와준 ‘사람 운’이 결정적이다.

그는 우선 스승운이 좋았다고 돌아본다. 농구와 연을 맺기 전 그는 전동초등학교를 다녔다. 부모님은 학업에 열성이던 분들이셨다고 한다. 놀고 싶은데 '과외다 학원이다'에 내몰리는 아이였다. 전동초등학교엔 축구부가 있었는데 공부시간에 공차는 친구들이 부러워 ‘축구하겠다!’고 말 꺼냈다가 부모님께 된통 혼난 기억이 있단다. 5학년 어느 날 수업시간에 웬 키 큰 사람이 들어와 문경은을 콕 집어 일어서게 한 후 한번 훑어보고는 교실을 나갔는데 방과 후 집에 가보니 그분이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직후 부모님은 “너 농구하고 싶니?”라고 물어봤고 농구가 뭔지도 모르는 채로 공부가 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그러겠다고 답한다. 농구부가 있던 답십리초등학교로의 전학. 하지만 실내에서 하는 공놀이인 줄 알았던 농구는 한겨울이든 한여름 땡볕이든 운동장 한 귀퉁이에 골대 세워놓고 연습하는 운동이었다. 겨울이면 손 트고 땡볕 아래 어지럽고 불시에 매타작도 당하고.. 그에게 초등학교 시절 농구는 그렇게 아프고 추웠던 운동였다.

광신중으로 진학해서 만난 스승이 장덕영 감독. 현재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임 중인 그는 농구에 학을 뗀 문경은에게 농구는 즐거운 스포츠임을 일깨워줬다고. “선수 단점은 가려주시고 장점은 북돋워주시는 분였어요. 감독님 코치님 얼굴 언제나 보고 싶었고 농구도 하고 싶었죠” 장 감독과의 인연은 광신상고까지 6년간 이어져 문경은 감독에게 정말 재미있게 농구하던 시절로 기억 되어진다. “얼마나 재밌었으면 밤12시, 1시까지 체육관서 농구하다 전기세 때문에 수위아저씨한테 혼나고 쫓겨나고 했겠어요?” 그의 주특기 3점슛에 눈을 뜬 곳도 광신중 시절였다. 중2 때 체육관을 갔더니 아저씨들이 농구코트에서 페인트 작업중이었다고. 무슨 라인을 그리냐고 했더니 3점슛 라인이란 답변이 돌아왔다. 던져보니 잘 날아가고 잘 들어갔다고 한다. 중학생 체력으로 만만치 않은 거리였지만 당시 1m80에 덩치도 있었던 문경은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었고 장 감독이 이를 보고 센터 아닌 슈터로 키워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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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피를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서울 SK 문경은 감독. /사진=KBL 제공


그가 연세대로 진학한 것은 지금에 와선 엉뚱하고 당시로선 심각한 이유 때문이었다. 박한 감독 임정명 코치의 고려대는 두발도 획일적으로 짧고 등번호도 일방적으로 지정하는 분위기였던데 반해 연세대 선수들은 장발도 있고 화면에 비친 최희암 감독은 뿔테안경에 선한 미소를 짓고 있어 천사 같았다고 한다. “그랬는데 입학 전부터 맞았잖아요. 엄청 엄하시더라구요” 장덕영 버프를 순식간에 압살하는 최희암표 디버프에 질려 1학년 때 농구를 포기하려 했다는 문경은. 하지만 최감독에게 결국 설득당했고 3학년에 진학하고 나서야 최희암 감독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3학년 돼 보니 감독님께서 일부러 그러는게 보이더라구요. 연세대라면 전국서 난다긴다하는 친구들이 진학하는데 개성들은 얼마나 강하겠어요. 농구는 팀플레이니 개성들을 죽일 필요도 있을 거고 실업팀과 농구대잔치를 벌이는 대학농구부터는 본격적인 성인농구죠. 포지션 신경 안 쓰는 고등학교까지의 막농구를 다듬는 과정이었던 거죠. 1~2학년 때 엄하게 다뤄진 덕에 3~4학년 때에는 자유를 줘도 벗어나는 선수들이 없어요. 최희암 농구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었죠.”

그 외에도 유재학, 김동광 감독 등의 스승들을 통해 농구선수로 성숙해졌고 감독으로서의 기본을 닦을 수 있었다고 전한다.

롤 모델이 되어 문경은을 이끌어준 선배도 있다. 故김현준(1960~1999) 전 코치다. “비록 11년 차나 나지만 광신중-광신상고-연세대 선배예요. 중학 시절 국가대표 김현준 선배가 학교에 와 유니폼을 나눠준 적이 있어요. ‘우리 학교에서도 국가대표가?’란 생각에 그렇게 멋져 보일 수가 없었죠. 단번에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그가 삼성 썬더스로 진로를 결정한 것은 볼 것 없이 김현준 선배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시 암흑기를 겪고 있던 삼성으로선 1994~1995시즌 김현준-문경은 쌍포를 활용해 우승을 노렸다. 하지만 농구대잔치에서 기아에 패해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 문경은 농구 인생 중 가장 안타까운 1년이었다. 좋아하고 존경하던 김현준 선배와 힘을 합해 우승을 노릴 수 있었던 유일한 그 기회를 무산시킨 상당 부분의 이유가 본인의 시원찮은 왼 다리 아킬레스건 때문이었다는 자책도 한몫한다. (그의 아킬레스는 이전부터 석회화건염에 시달려왔고 삼성 입단 후 부쩍 심해졌다. 준우승 직후 상무 입대도 수술과 재활을 의식한 선택였다. 하지만 의사들의 만류로 그는 끝내 수술을 받지 않는다. 경기가 끝나면 걷기도 힘들 정도였지만 얼음 찜질등의 물리치료만으로 선수 생활 끝까지 버텨낸다.) 김현준은 1996년 코치 승격되며 함께 코트를 누빌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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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은 서울 SK 나이츠 감독./KBL센터= 이기범 기자


“정말 자신감 넘치는 선배였어요. 농구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에서요. 그런 모습 정말 배우고 싶었어요. 정도 많았고..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나이 어린 후배 술 한잔 사주면서 나이트클럽 같은 덴 한 번도 안 데려가고 2차는 늘 형네 집였어요. 헛바람들까 걱정돼서 관리해 주신 거죠. 나도 당구 300, 현준 형도 300이라 당구도 함께 치면서 세상사는 얘기도 많이 해주셨죠” (문 감독의 눈자위에 붉은 기가 도는 건 피곤때문이려나?)

그는 후배 전희철 코치 얘기도 더한다. “전희철코치랑 2년 차이 나요. 주니어대표부터 같이 했으니 30년을 함께한 동생입니다. 감독-코치로 7년인데 그동안 전 코치가 절 ‘경은이 형’이라고 부른 건 다섯 번 정도예요. 대부분 술 먹고 잠든 날 깨울 때나 부르는 호칭이죠. 제가 물어본 건 아니고 지인 통해 들어보니 감독님이란 호칭이 생활화되지 않으면 은연중 형을 대하는 행동이 나올 수 있어서 경계하기 때문이라 했다는군요. 물론 저도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속 깊은 후배 아닙니까?”한다. 감독 문경은의 위상을 한결같이 지켜주는 고마운 후배님이란 설명이다.

농구인 문경은에겐 그런 스승, 선배, 후배가 있었다. 물론 언제나 한결같이 곁을 지켜주는 아내 김혜림씨와 금년에 세종대 패션디자인학과에 입학한 외동딸도 고맙긴 마찬가지다.

“저는 참 사람 운이 좋은 편이예요. 모두에게 감사하죠” 우승감독 문경은이 기쁨을 표하는 방식은 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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