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어벤져스3' 자막도 12세관람가여야 했을까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5.06 10:00 / 조회 :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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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어벤져스:인피니티 워' 포스터


※아래 기사 내용은 영화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마블 히어로물 '어벤져스:인피니티 워'는 뜨거운 흥행만큼 논란으로 내내 뜨거웠습니다. 자막을 담당한 번역가를 교체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초래한 '오역 논란'입니다. 국민청원을 할 만한 일인가를 떠나, 관객들의 불만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이번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문제적 자막이 발단이었습니다. 그간 디즈니에서 선보여 온 MCU(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 히어로 무비는 물론 굵직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한글 자막 작업을 다수 진행했던 박지훈 번역가의 자막을 두고 개봉 직후부터 불만이 쏟아져나왔습니다. 자막 일부가 실제 대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였고, 영화의 내용을 오해하거나 혹은 제대로 즐기지 못하게 했다는 겁니다.

번역에 답은 없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엄연한데 100% 정확한 번역이 될 리 없습니다. 번역자의 주관과 해석도 개입되기 마련입니다. 더욱이 영화 자막 작업은 까다로운 조건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일단 거의 모든 대사가 20자 안팎으로 짧아집니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처럼 12세 관람가 등급이라면 더더욱 짧게 대사를 옮기고, 단어도 관람가 수준에 맞춰 사용해야 합니다. 유난한 보안 때문에 촉박한 시간 내에, 그것도 영화 전체를 못 보고 일부 장면만 보면서 대본에 의존해 번역 작업을 해야 한다면 난이도는 더욱 올라갑니다.

그렇기에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제대로 안 된 자막은 그에 의존해 영화를 보는 관객을 의도치 않은 곳에 데려다 놓습니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몇몇 자막이 그랬습니다.

막바지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한 'end game'은 사전적 의미가 '마지막 대결' '막판' '최종 단계' 등입니다. 영화 자막처럼 "가망이 없어"로 번역한다면 1400만625개의 미래를 미리 들여다 본 닥터 스트레인지는 한 가닥의 희망 대신 완전한 절망을 본 셈이 됩니다. 그 자막은 관객이 영화의 마지막을 세상 절반의 종말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욕쟁이 닉 퓨리가 'mother fXXXXX'를 미처 다 못한 채 'mother'만 하고 사라진 건 위트겠지만, 그걸 '어머니'라고 번역한 건 정색할 실수입니다. 한국어로 직역하면 '개XX' 정도가 될 미국 욕설 'son of bXXXX'를 앞 단어만 듣고 "아들"로 번역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는 12세관람가 영화입니다. 부모가 동행하면 어린이도 관람 가능한 가족영화 등급입니다. 거듭 살펴 본 '어벤져스:인피니티 워'의 자막은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짧고 쉬운 단어를 이용해서 단순화해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 느낌입니다. 캡틴이 비전에게 말하고, 비전이 다시 캡틴에게 돌려주는 'We don't trade lives'는 직역하면 '생명을 거래할 순 없어', 조금 수정하자면 '생명을 저울질할 수는 없어' 정도가 될 대사입니다. 자막에서 이를 "친구를 버릴 순 없어"라고 표현하는 게 대표적인 낮은 눈높이 번역입니다. 타노스가 아스가르드 우주선을 습격해 절반을 추렸다(고로 절반은 살았다)는 토르의 대사, 드랙스가 자신의 고향별에서도 절반이 죽었다고 말하는 대사도 긴 설명 없이 "다 죽였다"로 처리하는 식입니다. 'end game'의 번역도 그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어벤져스:인피니티 워'는 그런 번역이 어울리는 영화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의 주요 관객도 그런 번역에 만족할 이들이 아닙니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는 지난 10년 간 공고한 세계를 구축해 온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의 총정리이자 클라이막스입니다. 그간 MCU 18편의 영화를 즐긴 관객이 한국에서만 8410만명에 이릅니다. 2시간29분을 눈 부릅뜨고 하나하나 눈에 담을 열성팬이 수도 없고 그 중엔 마니아, 전문가도 부지기수입니다. 자막 없이 영화를 즐기는 관객도 상당하고요.

긴 주석을 달아도 모자랄 판에, 12세관람가에 맞춘 간단명료한 자막이 팬들의 성에 찰 리 없습니다. 부족한 번역이 디테일을 바꿔놓으면 전체가 뒤틀립니다. '어벤져스4'가, '스파이더맨2', '블랙팬서2',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3'이 만들어질 걸 이미 다 아는 관객들은 닥터 스트레인지의 말을 "가망이 없어"로 옮긴 절망적 해석에 공감하지 못하고 폭발했습니다.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다음 MCU의 20번째 영화 '앤트맨과 와스프'(Ant-Man and the Wasp)가 한국에 처음 '앤트맨2'로 소개되자 '왜 제목이 바뀌었냐', '와스프는 어디갔냐'고 야단을 해 '앤트맨과 와스프'란 제목을 찾아준 게 바로 이들 팬들이었습니다.

영화 자막의 오역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자막의 오역이 논란이 돼 표면화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극장에 걸린 영화를 그대로 보고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수요자가 결코 아님을 이번 '어벤져스:인피니티 워' 오역 논란 사태를 지켜보며 새삼 실감합니다. 영화의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해석하고 의견을 표명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는 앞으로 더 커질 겁니요. 완성된 영화를 가져다 틀어 어마어마하게 관객을 모으면서 자막작업마저 안일해서야 되겠습니까. 논란이 논란으로 그치지 않길, 더 나은 다음을 위한 발판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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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달라진 '앤트맨과 와스프' 표기 / 사진제공=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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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록|roky@mtstarnews.com 트위터

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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