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MLB산책] 보낸 아리에타 2승, 받은 다르빗슈 2패..컵스의 후회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04.24 08:44 / 조회 : 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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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 /AFPBBNews=뉴스1


영어 표현 중에 ‘Buyer's remorse’라는 말이 있다. 번역하면 ‘구매자의 후회’ 정도가 될 것이다. 물건을 구입한 뒤 무슨 이유로든 생각이 변해 구입사실을 후회하는 것을 말한다. 가구, 옷, 보석 등 고가의 물건을 산 뒤 물건을 잘못 샀다는 생각이 들거나, 아니면 제값보다 비싼 돈을 지불해 바가지를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후회감에 휩싸이는 경우를 생각하면 된다. 물론 물건을 사놓고 후회하는 것과 물건의 가격은 관계없는 일 일수도 있지만 싼 물건보다는 큰돈을 주고 산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구매자의 후회감이 훨씬 큰 것은 당연한 일이다.

메이저리그에는 대놓고 공개적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구매자의 후회’에 시달리는 클럽들이 상당히 많다. 소위 말하는 ‘먹튀’ 계약 때문이다. 일반적인 물건이라면 ‘구매자의 후회’가 찾아왔을 때 반품이나 교환, 환불이라도 시도해 보겠지만 MLB 계약이란 그런 것도 불가능하다. 특히 엄청난 거액을 투자해 장기계약으로 영입한 선수가 제 값을 못한다면 그 후회감은 한 순간이 아니라 수년 이상 이어지기에 더욱 뼈아프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대부분 ML 팀들이 최소한 한 두 번쯤 이런 먹튀 계약을 해본 경험을 갖고 있기에 대형계약에 관한 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넌다는’ 식의 조심스러운 자세가 갈수록 강조되고 있다.

문제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아예 장기계약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한 ‘먹튀’ 계약을 완전히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사람 일이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데 수년의 기간을 담보로 하는 선수와의 장기계약에서 후회를 완전히 피한다는 보장은 사실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시카고 컵스가 지금 ‘구매자의 후회’를 불러오는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바로 지난 오프시즌 6년간 1억2천600만달러의 거액을 투자해 새로운 팀 에이스로 야심차게 영입한 일본인 우완 선발투수 다르빗슈 유(31)다.

컵스는 지난해까지 팀의 에이스였던 제이크 아리에타(32)와 재계약을 포기하는 대신 엄청난 돈을 주고 다르빗슈와 계약했는데 정규시즌 개막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벌써부터 “잘못 산 것 같다”는 후회의 목소리가 구단 주변에서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6년 계약인데 시즌 시작 한 달도 안 된 벌써부터 후회를 시작했으니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상황을 뜯어보면 컵스팬들의 불안감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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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빗슈 유./AFPBBNews=뉴스1


다르빗슈는 올해 4경기에 등판해 1승도 없이 2패, 평균자책점 6.86을 기록하고 있다. 19.2이닝동안 홈런 3방포함, 21안타를 맞아 이닝 수보다 피안타수가 많다. 볼넷도 11개나 내줘 시즌 WHIP(이닝당 볼넷+안타)이 1.63까지 치솟았고 피안타율은 0.269에 달한다. 그의 ML 커리어 통산 WHIP 1.19와 피안타율 0.220보다 훨씬 나쁘다. 한마디로 1억2천600만달러짜리 에이스치고는 초라한 성적이다.

더욱이 다르빗슈는 올해 등판한 경기마다 초반에 잘 던지다가 5회만 되면 갑자기 무너지는 특이한 패턴을 되풀이하고 있어 동료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컵스팬들의 속을 긁어놓고 있다. 지난 21일(현지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원정경기에서 다르빗슈는 4회까지 로키스 강타선을 단 1안타로 묶고 2-0으로 앞서며 순항하다 5회 투아웃까지 잡아낸 뒤 상대투수인 타일러 앤더슨을 볼넷으로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와르르 무너졌다. 이후 4안타와 볼넷 1개를 더 허용해 단숨에 5점을 내준 다르빗슈는 결국 이닝을 마치지 못하고 강판됐고 컵스는 결국 2-5로 패했다.

그 직전 경기도 비슷했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서 다르빗슈는 4회까지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다 5회 2사 후 4안타와 볼넷 2개, 폭투 1개와 보크 1개를 기록하며 대거 4실점하고 강판됐다. 컵스는 0-4로 졌다.

올해 다르빗슈는 4차례 등판 중 3번이나 5회에 마운드를 내려갔다. 컵스 데뷔전이었던 지난달 31일 마이애미 말린스전에서도 5-2로 앞서던 5회말 4안타와 볼넷 1개로 3실점하고 KO됐다. 단지 두 번째 등판인 밀워키 브루어스전에서만 5회를 무사히 넘겼는데 그 경기만큼은 에이스다웠다. 6이닝동안 단 2안타로 1점만을 내주고 삼진 9개를 쓸어 담았는데 4회 에릭 테임즈에 솔로홈런을 맞지 않았더라면 컵스로서 첫 승을 신고할 수도 있었던 경기였다. 하지만 몸값 1억달러가 넘는 투수가 4경기 중 한 경기만 잘 던지고 나머지 3경기는 5회를 못 넘겼다면 만족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마지막으로 5회에 KO된 콜로라도전 후 다르빗슈는 “모든 경기마다 5회에 리듬을 잃고 있다”면서 “아마도 커브 같은 오프스피드 피치를 좀 더 많이 던지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컵스 포수 윌슨 콘트레라스는 다르빗슈가 5회 투아웃을 잡고 나서 방심했다면서 이후 빠른 볼을 자연스럽게 세게 던지는 대신 과녁에 맞추려 했다고 지적했다.

콘트레라스는 “빅리그에선 아웃카운트에 관계없이 계속 타자를 공격해야 한다. 하지만 그(다르빗슈)는 5회 2사 후부터 (전보다 느려진) 시속 91, 92마일짜리 빠른 볼을 코너에 꽂으려고 조준하는 투구를 했다”면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했는데 결국 5회에 치명상을 맞고 말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해 다르빗슈는 “(5회 투구패턴을 바꿨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난 아웃카운트에 관계없이 모든 투구와 모든 타자에 똑같은 자세로 임한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5회 부진 이유에 대해선 “내 책임”이라는 말 외엔 뾰족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

이유가 무엇이든 올해 다르빗슈가 허용한 15실점과 21안타, 11볼넷 가운데 거의 대부분인 12실점과 13안타, 6볼넷을 모두 5회에 허용했다는 사실을 보면 뭔가 5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특히 이런 모습은 지난해 다르빗슈가 LA 다저스 소속으로 나선 월드시리즈에서 최악의 모습을 보인 것과 맞물려 그의 멘탈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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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크 아리에타 /AFPBBNews=뉴스1



여기에 컵스 팬들의 ‘구매자의 후회’를 부채질하는 것은 지난해까지 팀의 에이스였다가 필라델피아로 떠나간 아리에타가 압도적인 에이스로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컵스에서 지난 5년간 총 58승을 올리고 사이영상까지 받으며 팀을 월드시리즈 챔피언으로 이끌었던 아리에타는 지난 오프시즌 프리에이전트로 풀린 뒤 2억달러 이상의 대박계약을 추구했으나 메이저리그의 FA시장이 얼어붙는 바람에 갈 곳을 찾지 못하다 지난달에야 3년 7천500만달러 계약으로 필라델피아로 이적했다.

아리에타는 계약이 늦어지는 바람에 사실상 스프링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못한 상태로 시즌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2승무패, 평균자책점 2.04의 빼어난 투구를 보이고 있고 특히 지난 19일에는 피츠버그 파이리츠를 상대로 7이닝동안 안타 1개만을 내주고 삼진 10개를 뽑아내는 눈부신 투구로 승리를 따냈다. 스콧 보라스를 앞세운 아리에타의 엄청난 계약 요구수준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 그를 포기하고 다르빗슈쪽으로 돌아섰던 컵스 입장에선 밖으로 내색하지 않아도 뭔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컵스처럼 월드시리즈 우승에 근접한 팀 입장에선 다르빗슈의 활약여부에 우승여부가 걸려 있을 수 있어 더욱 신경이 곤두서 있다.

아직 시즌은 시작단계이기에 좀 더 두고 지켜봐야겠지만 일단 컵스 구단과 팬들은 이미 ‘구매자의 후회’에 한 발을 들여놓은 것 같다. 그리고 다르빗슈와 계약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구단들 가운데 어쩌면 지금 뒤에서 남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는 팀도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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