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최은희 발인, '한국영화 큰별'의 영면..마음에 남다(종합)

이경호 기자 / 입력 : 2018.04.19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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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은희/사진=이기범 기자


영화인들의 배웅 속에 원로배우 고 최은희의 발인식이 엄수됐다.

19일 오전 9시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고 최은희의 발인식이 진행됐다


이날 발인은 신정균 감독을 비롯한 유족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장지는 경기 안성 천주교공원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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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은희 발인식/사진=이기범 기자


신성일, 신영균, 문희 등 고인과 한 시대를 보냈던 영화인들도 자리해 영결식에 이어 발인까지 지켰다. 이장호 감독, 황기성 영화제작자도 고인이 영면하기 위해 떠나는 것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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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은희 발인식 현장/사진=이기범 기자


고 최은희는 지난 16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고인은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었고, 빈소가 마련된 후 수많은 영화인들이 조문했다. 신성일, 김창숙, 고은아, 최난경, 윤일봉, 정혜선, 신영균, 문희, 오경아, 최지희, 최윤식, 한승헌, 태현실, 오정아를 비롯해 황기성 제작자, 임권택 감독, 이장호 감독,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 등이 빈소를 찾아 애도의 뜻을 전했다. 이밖에 고인의 남편 신상옥 감독과 오수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신상균도 빈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 최은희는 1926년생으로 1942년 연극 '청춘극장'으로 데뷔, 1947년 첫 영화 '새로운 맹서'를 시작으로 '성춘향' '지옥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빨간 마후라' '한강' 등 1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1960년대 한국 영화계의 중심에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고인은 배우가 아닌 제작자로써도 역량을 발휘했다. 그녀는 영화 '민며느리'를 연출하는 등 한국 3번째 여성감독으로서도 족적을 남겼다. 안양영화예술학교 교장으로 후학 양성에도 힘썼다.

영화인으로 성공을 거둔 고 최은희에겐 아픔도 있었다. 고인은 1954년 신상옥 감독과 결혼했지만 남편과 배우 오수미의 스캔들로 1977년 이혼하기도 했다. 이후 1978년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북됐다. 그 행방을 찾던 신상옥 감독 또한 그해 7월 납북돼, 198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동반 탈출하기까지 북한에서 영화 '돌아오지 않는 밀사' '소금'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고 최은희는 남편 신 감독과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중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신상옥 감독은 2006년 4월 11일 80세 일기로 별세했다.

한국 영화계에 큰 업적을 남긴 고 최은희. 이젠 고인의 활동 모습을 더 볼 수 없지만, 기억과 마음에 영원히 남게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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