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수성못' 유지영 감독 "진정한 희망 위해선 질문해야 한다"

영화 '수성못'의 유지영 감독 인터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4.20 06:30 / 조회 : 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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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유지영 감독 / 사진제공=인디스토리


최근 색다른 시각을 지닌 젊은 여성감독들이 연이어 충무로에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약진이 새로운 바람이 될지 주목된다. 첫 장편 '수성못'을 내놓은 유지영 감독 또한 이들 중 하나다. 한국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으로 만든 이번 작품에서 유지영 감독은 고향 대구를 벗어나고 싶었던 20대의 자신을 투영해 삶과 죽음 사이 어느 즈음에서 갈 길을 잃은 듯한 청춘의 모습을 담아냈다. 생생한 화면, 능청맞은 코미디에도 불구하고 우울과 절망이 짙게 배어있는 이 독특한 데뷔작은 유지영 감독의 시선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 유 감독은 "창작할 때 순간순간 행복감을 주는 걸 경계한다"며 "진정한 희망을 보려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개봉을 앞두고 열린 시사회에서 눈물을 보였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개봉 안 했으면 계속 데리고 있는 자식 같은 건데 개봉과 동시에 이제 '수성못'과 작별하는 시간이구나 하는 생각에. 카메라가 바바바 터지더라. 옆에서 이세영씨가 우는지도 몰랐다. 채근하지 않고, 언제 개봉하느냐 묻지도 않고 기다려준 배우들에게 고맙고 미안하고 그랬다.

-이세영의 대구 사투리가 인상적이었다. 본토 사투리더라.

▶아는 사람은 안다. 처음부터 사투리를 안 쓸 거면 말고 쓸거면 제대로 대구 사투리로 하자 했다. 대개 매체에는 부산 사투리나 남도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처음부터 대구 사투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너무 잘한다. 제가 듣기엔 98% 완벽한데 영화 드라마에서 쉽게 듣지 못했으니 관객들이 어색하게 들으실 수도 있다. 고향이 대구인 배우 분이 지도해주셨고, 완벽주의자인 세영이는 고향이 대구인 저에게도, 여자 조감독에게도 읽어달라고 해 연습을 했다. 현장에서는 사투리로 이야기했다.


-대구라는 배경이 강력하다. 지역색이 중요한 영화다.

▶제 20대때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 때 대구는 벗어나고 싶은 곳이었다. 가족을 벗어나 독립하고 싶었다. 경제적 여건이나 다 갖춰저야 하지 않나. 아르바이트 열심히 하면서 편입 준비도 했다. 그게 아마 '수성못'으로 은유가 된 것 같다. 30대 때 지금의 저는 서울 생활도 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대구는 안식처 같은 느낌으로 달라졌다. 서울은 일을 하는 곳이고 그래서 긴장이 된다. 서울살이 땐 길을 잃을까봐 항상 지도를 봐야 했다. 이방인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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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유지영 감독 / 사진=인디스토리


-희정 같은 시절을 겪은 셈이다. 어떻게 영화감독이 됐나.

▶희정은 지금의 저는 아니지만 20대 저의 분신이다. 오리배 아르바이트는 아니었지만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다. 대학입시 때 서울에 두 곳을 냈다가 떨어지고 하향지원한 대구에서 시각디자인과에 합격했다. 그곳에서 영화에 대해 알게됐다. 자퇴 후 편입하려는데 홍익대 조형대학 안에 영상영화과가 있더라. 뮤직비디오 감독들 중 선배가 많더라. 제게는 딱 그곳이었다. 그 편입시험에 붙은 것이다. 졸업작품을 영화로 하겠다 해서 찍은 게 '고백'이란 단편이었다. 영화제에 초청이 됐고, 후에 영화에 대해 깊이 있게 배우고 싶었다. 2년 후 시험을 봐서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 연출 전공으로 들어갔다. '수성못'은 졸업작품이다.

-치열하게 살려 하는 희정과 죽으려 안달인 영목은 극과 극 청춘이면서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도 보인다.

▶그런 의도였다. 희정이란 캐릭터가 먼저 주축이 되면서 영목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제 일상에 뭔가가 개입돼 컨트롤할 수 없고 지켜가던 루틴이 깨지는 데 대한 공포가 있다. 그게 대전제였다. 전작에도 그런 주제가 있는데, 이 영화의 영목이 그렇다. 영목 때문에 희정의 삶이 꼬인다. 영목과 희정을 반대되는 캐릭터로 잡았다. 영목이는 영화적 장치가 맞다. 현실감이 좀 떨어지는…. 삶과 죽음, 빛과 그림자. 사실 저는 이 사람이 한 인물이라 생각했다. 희정이처럼 밝고 치열할 때도 있지만 영목이처럼 우울하고 무기력한 저도 있다. 그것이 합일이 되지 않아 괴로울 때가 많다. 극과 극 두 사람을 설정하고 맞춰가며 썼다. 의상도 빨강과 초록색으로 대비를 이루고 유지했다. 둘은 각자 삶, 죽음이란 목표를 향해 간다. 정체된 인물이 희준이다. 그래서 옷도 회색이다.

-그래서인가 영목은 배경도 전사도 없다. 배우에게 이질적으로 보이도록 주문도 했나.

▶전사에 대해서 생각하지 말자 했다. 알려주지 않고 단서만 줬다. 서울에서 온 이방인인지, 대구에 사는 사투리 안 쓰는 아이인지. 그런 미스터리함을 가지고 있자 했다. 미스터리가 풀어지면 드라마가 강해지는데 그러면 영목의 캐릭터가 약해진다고 봤다. 드라마가 생기면 좀 더 현실적인 인물이 되겠으나 제가 원한 바는 아니었다. 개연성을 뺀 인물이면 좋겠다고, 자꾸만 죽으려고 하고 죽음 자체에만 꽂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의도였던 것 같다. 배우가 연기하기 힘들다고 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분명한 건 우울증이 있고, 하지만 밖에 있을 땐 쾌활하다. 희정과 있을 때 미루와 있을 땐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인물들에게 이입되기보다 낯선 느낌이 든다.

▶저는 낯설게 하는 걸 좋아한다. 영화 자체뿐 아니라 카메라도 거리감을 두고 찍고 있다. 가까이 몰입해서 드라마의 관객을 끌어들이기보다는 형식적인 면에서도 거리감을 두고 있다.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제가 관객일 때도 영화에 몰입해서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안전한 상태에서 인물을 관찰하고 그에 대해 생각는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영화도 그런 경향이 강하다. 그런 부분들은 차차 제가 영화를 만들어가면서 발전시키고 싶은 부분이다. 그 부분이 호감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영화를 너무 스트레스 몰입해서 보면 극장을 나온 순간 잃어버리게 된다. 저는 머리나 마음을 관통하지 않고 계속 찝찝하게 하는 영화를 좋아한다.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계속 질문을 남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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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수성못' 스틸컷


-수성못, 그 속의 오리배가 영화의 주요한 상징이다.

▶처음엔 오리배 알바생이 아니라 낡은 유원지에서 일하는 알바생 역할이었다. 영화도 분위기가 달라, 지금이 우울함을 밝게 푸는 블랙 코미디라면 당시엔 처연하고 우울했다. 그런데 근처 유원지에서 촬영 허가를 못 받았다. 섭외가 안 돼서 시나리오가 틀어졌다. 수성못 근처를 걸어다니는데, 실제 오리배도 있지만 오리들이 많다. 저게 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오리배 매표소 아르바이트생이 떠올랐다. 처음부터 오리배 알바생으로 하면 되는데 왜 그 생각을 못했나 싶더라. 결국엔 돌아오는구나 했다.

-블랙코미디가 독특하다. 톤은 굉장히 진지하다.

▶처음부터 장르를 정하고 만든 적은 없었다. 그런데 만들고 나면 블랙코미디로 분류하시더라. 단편 '고백' '어느날 갑자기' 둘다 그랬다. 제가 보는 시각에 기본적으로 시니컬함이 있는 것 같다. 저도 유머를 좋아하고 그런 면이 있고.

-이세영은 오디션을 보고 발탁했다고.

▶시나리오 쓸 때 배우를 두고 쓰는 편은 아니다. 인물을 다 만들고 캐스팅 한다. 꼭 유명한 사람을 쓰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신인이어도 마스크가 어울리고 안정적이면 됐다. 오디션 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 항상 궁금해하던 이세영 생각이 나 제안했다. 저도 이세영이란 배우가 연기를 잘하고 유명한 건 알지만 시나리오에 대한 이야기 한 번 안 해보고 참여해달라 할 수는 없지 않았겠나. 그러다 오디션 당일 바로 오케이가 된 거다.

항상 저는 의외의 캐스팅을 하는 걸 좋아한다. 이세영이 '여선생 여제자'부터 똘똘하고 당차고 도도한 역할을 했다. 성인이 되고 본격적으로 활동하면서 거의 처음 찍은 게 '수성못'이었다. 그 도도한 인상이 그대로다 있고 얼굴도 그대로였다. 이런 친구를 '현실 지잡대생'으로 하면 너무 재미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소화만 하면 재밌겠다 했는데 소화를 잘했다. 의외의 캐스팅이 성공할 때 너무 짜릿하다.

-다른 배우들도 신선하다.

▶저희 세 배우 공통점이 다 양면성이 있다. 남태부는 외모 때문에 조폭 악역을 했는데 방구석 철학자에 너무 잘 어울렸다. 원래 유쾌하다. 현준씨는 영목처럼 좀 더 어둡고 진지한 면이 있다. 쾌활하고 장난꾸러기지만 영화, 커리어에 대해선 아주 진지하다. 그 양면성이 매력적이다. 세영이도 도도하고 냉철한 면이 있는데 굉장히 털털하다. 영화에선 다 맨얼굴이다. 피부가 너무 투명해서 톤을 잡으려고 BB크림만 발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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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못' 유지영 감독 / 사진제공=인디스토리


-결말에 대해 부연해달라.

▶영목이는 수미쌍관이다. 자살 실패자가 돼 인터뷰를 하는데 피식 웃는다. 그것으로 마무리가 되겠다 했다. 자살은 내가 전문가인데 질문 듣고 어이가 없고 씁쓸해 피식 웃는다고 생각을 했다.

희준 역시 정해져 있었다. 유일하게 희망을 준 캐릭터다. '도를 아십니까'라고 묻는 여자의 '삶이 움직인다'는 말에 꽂힌다. 걔는 방구석 철학자로 설정했다. 그 말이 정체된 희준에게 크게 다가간다. 마지막을 둘이 커플처럼 보이게 잡았다. 가입을 하든 데이트를 하든 희준에게 필요한 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강신일은 죽으러 왔다가 실패하고 살고자 할 때 죽게되는, 계속 수성못을 못 벗어난다. 희정에게 그림자로 다가가 '집으로 가라'고 한다. 지긋지긋한 엄마와 짐 같은 동생이 있는 그곳으로. 그리고 한 편에는 죽으라는 기타소리가 들린다. 희정이 어디로도 못 가는 상황에서 영화가 끝난다. 제가 던진 질문이 그거였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마음 속 균열이 시작될 때 영화가 끝난다고 생각했다.

-독특했던 게 그 지점이었다. 여느 청춘영화와 달리 쉽게 위로하거나 희망을 주지 않는다.

▶창작할 때 순간순간 행복감을 주는 걸 경계한다. 저도 모르게 흥이 나서 밝은 쪽으로 갈 때도 있다. 다음날 읽어보면 가짜같다. 저한테 희망이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때 의미가 있다. 소위 말하는 힐링 무비, 슬로우 무비는 보는 동안엔 마음이 편하고 하루 정도 마음이 편한데 거기서 끝인 것도 같다. 진찌 할링 영화는 질문을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진정한 희망을 보려면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희망을 말한다는 건 상업영화의 문법이기도 하다.

▶대중영화의 문법 공식 부정하진 않는다. 저도 팝콘무비 보면서 스트레스를 날리고 싶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건 도피다. 진정한 힐링도 아니다. 상업 영화를 하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 자신은 없다. 너무 어렵게 다가가는 예술영화, 그리고 아예 팝콘무비가 있다면 우리 영화는 그 중간 어디에 있었으면 한다.

-자살 시도 장면이 너무 구체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저희 영화는 내용과 스토리가 리얼하다. 희정과 영목이 대비가 된다. 희정의 편입시험 장면도 학교에서 리얼하게 찍었다. 몽타주로 교차되는 영목이 리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편입과 동반자살 둘 모두에게 D데이다. 영화는 이 D데이를 위해 달린다. 장소와 행위가 리얼해야 했다. 한쪽만 리얼하게 보여주고 한쪽은 관객이 불편하다고 해서 숨기면 가짜라고 생각했다. 청소년관람불가를 받더라도 이 장면에서도 밸런스가 맞아야 했다. 갑자기 판타지가 되거나 숨기면 의도와 다른 게 된다고 생각했다. 불편하겠지만 멀리서 찍자, 거리를 지키자 했다.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지막 소감이 있다면.

▶두번 보면 좋을 영화다. 비약도 많고 흔히 보는 상업영화와 다르게 느슨하다. 못 따라갈 수도 있으나 두번째 보면 훨씬 편하게 따라갈 수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지만 미장센도 많이 신경 썼다. 영화 상징을 찾는 깨알 재미가 있다. 두번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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