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성못', 실패한 청춘을 위한 블랙코미디

[리뷰] 영화 '수성못'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4.20 06:30 / 조회 :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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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수성못' 포스터


2018년 대한민국 청춘의 키워드는 어쩌면 절망이 아닐까. 영화 '수성못'(감독 유지영)은 대구의 수성못을 배경으로 삼은 청춘의 이야기다. 열정과 무기력, 삶과 죽음, 극단을 대변하는 대한민국의 두 청춘이 결국엔 서로가 맞닿아 있었음을 확인하고야 마는 청춘 이야기를 시니컬한 블랙유머와 함께 담았다.

주인공 희정은 대구 수성못의 오리배 대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 편입시험을 준비하는 20대다. 잔소리뿐인 엄마도, 치열함이라곤 없는 히키코모리 동생도 지긋지긋한 그녀는 나고 자란 대구를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어 아등바등하는 중. 아르바이트 중에도 문제집을 놓지 못하던 그녀가 잠깐 낮잠에 빠진 사이, 한 남자가 오리배를 타고 나가 못에 뛰어드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일로 미스터리한 청년 영목에게 약점이 잡힌 희정은 어쩔 수 없이 그에게 끌려다니며 자살 시도자들을 인터뷰하게 된다. 알고보니 영목은 죽지 못해 살아 있는 인터넷 자살카페의 운영자다.

연출자 유지영 감독은 첫 장편영화에서 고향 대구를 배경으로 어떻게든 그 곳을 벗어나고 싶었던 20대의 자신을 투영해냈다. 생생한 푸른 빛과 달리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수성못은 치열하게 살고자 버둥거릴수록 점점 빠져 들어가 헤어나올 수 없는 '수성늪'을 연상시킨다. 주인공 희정에게 대구는 선택할 수 없는 삶 자체이며, 물 위에 둥둥 떠 있을 뿐 수성못 바깥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오리배는 대구에 갇힌 주인공 희정이다. 괜찮다는 듯 씩씩한 표정을 짓고 뭐에든 열성이지만 그녀 역시 다른 이들의 아픔엔 둔감하다. 감독에 따르면 지금은 유원지로 개발된 수성못은 한때 사망사건이 잦았던 곳이라 한다.

미스터리 구조를 띠고 있지만 반전을 거듭하며 관객을 몰입시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보다 돋보이는 건 영화의 설정과 태도다. '수성못'은 멀찍이 떨어져 구사하는 시니컬한 유머, 청량한 색감과 명랑한 캐릭터들, 연속된 웃픈 아이러니가 더해진 독특한 청춘 블랙코미디다. 실패뿐인 청춘을 섣불리 위로하거나 응원하지 않는다. 쉽게 희화화하거나 자조하지도 않는다. 치열하게 살아가려는, 혹은 죽지 못해 안달인 극과 극 청춘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모습을 그저 담담히 지켜보며 다독인다. 이는 독특한 공감을 빚어낸다.

'대구영화'라 해도 무방할 만큼 지역색이 진하게 배어 있다. 남도 사투리와는 확연히 다른, 현지 느낌 물씬 나는 대구 사투리를 완벽에 가깝게 구사해 낸 이세영은 그간의 화려하고 새침한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내고 시선을 붙든다. 치열한 희정의 무기력한 양면 같은 영목 역의 김현준, 평범하길 소망하는 히키코모리 동생 희준 역의 남태부도 제 몫을 한다. 자신만의 분명한 색깔을 지닌 여성 감독의 탄생은 반갑다.

4월 19일 개봉. 러닝타임 88분. 15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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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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