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MLB산책] '만찢남' 오타니의 ML 11일.. '별에서 온 그대'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04.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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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투타 모두 강한 임팩트를 남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일본의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가 메이저리그 시즌 개막 후 딱 11일 만에 투수와 타자로 전문화된 메이저리그 선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뿌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오타니는 지난 주 자신의 첫 3번의 홈경기에서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 모두 홈런을 터뜨리더니, 선발투수로 홈구장 데뷔전에 나선 9일에는 7회 1사까지 퍼펙트게임을 던지는 등 7이닝 1안타 1볼넷 무실점 12탈삼진의 경이적인 괴력투를 선보였다. 그리고 그 엄청난 활약을 바탕으로 10일 아메리칸리그 이주의 선수로 선정됐다.

그가 평범한 선수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두말할 필요가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첫 11일 동안 그가 만들어낸 역사적인 기록들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으면서도 도저히 쉽게 믿어지지 않는 것들이다. 지금까지 100년 이상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를 너무도 쉽게 ‘해치우고 있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메이저리그에서 투타겸업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지금까지 100년 이상 이어져온 일종의 기본 원칙이었다. 지금 오타니의 투타겸업 도전으로 인해 비교대상으로 계속 ‘소환’당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전설 베이브 루스(1895~1948)의 경우를 살펴보자. 그가 전설적인 홈런왕 이전에 20승 시즌을 두 번이나 기록한 에이스급 투수였다는 사실은 이제 웬만한 야구팬들은 잘 아는 사실이지만 그런 루스도 오타니처럼 처음부터 100% 투타겸업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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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하는 오타니. /AFPBBNews=뉴스1


루스는 보스턴 레드삭스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1914년부터 첫 4년간은 기본적으로 선발투수가 본업이었고 타자로는 파트타임으로 가끔 경기에 나섰을 뿐이었다. 그는 이 4년간 그가 투수로 생애 기록한 94승 가운데 67승을 따냈지만 이 기간 중 때린 홈런 수는 총 9개뿐이었다.


루스는 1918년 시즌부터 타자로 출장경기 수가 부쩍 많아지며 본격적으로 투타겸업에 나섰다. 하지만 타자로 나서는 경기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투수로 등판한 경기 수는 직전 시즌의 절반 정도로 뚝 떨어졌고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이후로는 완전한 풀타임 타자로 돌아섰다. 루스는 1920년 양키스 이적 후 1935년 은퇴할 때까지 16년간은 총 5경기에 더 등판한 것이 전부였고 그 5경기도 별 의미가 없는 시즌 막판 경기나 갑자기 선발투수가 못나오게 됐을 때 임시방편으로 나선 것들이었다.

결국 루스가 제대로 투타겸업을 한 것은 지난 1918년과 1919년 두 시즌 정도였다고 보면 된다. 1918년 당시 지금 오타니와 같은 만 23세였던 루스는 투수로 20경기에 나서 13승7패, 평균자책점 2.22를 기록했고 타자로 95경기 382타석에 들어서 타율 0.300을 치며 11개의 홈런을 때려 처음으로 시즌 홈런왕에 올랐다. 당시는 아직도 데드볼 시대로 리그 전체에서 두 자리 수 홈런을 친 선수는 루스 밖에 없었다. 이 시즌에 루스가 기록한 13승과 11홈런은 아직도 메이저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두 자리 수 ‘승리-홈런’ 기록으로 남아있다.

루스는 이듬해인 1919년에는 130경기 543타석에 나서 당시 메이저리그 신기록인 29홈런을 때려내며 본격적인 홈런왕의 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투수로는 17경기에 나서 9승5패,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하며 2년 연속으로 두 자리수 승리-홈런 기록 달성은 1승 차이로 불발됐고 이후 이듬해 양키스로 이적하면서 투수 글러브는 내려놓고 타격에만 전념하기로 결정했다. 결국은 루스도 투타겸업을 포기하고 한 쪽을 선택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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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투타 겸업에 나선 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그와 비교하면 투수와 타자로 모두 풀타임을 뛰겠다고 나선 오타니는 사실 루스와 다소 다른 도전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투수와 타자로서 재능이 모두 뛰어나서 두 가지를 겸하게 된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둘 다 모두 하겠다고 작정하고 도전에 나선 것이다. 투수와 타자로 나뉘어져 100여년 이상 분화된 길을 걸어온 메이저리그에서 갑자기 그 장구하게 이어져 온 거대한 추세를 거슬러 도전장을 낸 것이다. 그야말로 상상의 공간인 만화 속에서나 가능했던 일인데 그것을 현실의 도전으로 만든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고등학교까지는 대부분 그 팀의 에이스 투수가 곧 4번 타자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대학 진학 후나 메이저리그 구단에 입단하면서 투수와 타자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극히 일부의 경우가 대학에서도 투타를 겸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들도 메이저리그 팀에 드래프트되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특화된 길을 가야 했다. 대학이라면 모를까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싶다면 투타 겸업은 아예 생각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었다. 적어도 오타니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오타니가 그런 생각을 송두리째 깨뜨려버렸다. 깨뜨린 정도가 아니다. 첫 11일간 그가 보여준 모습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고 봐왔던 메이저리거들의 모습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하다는 일본리그에서 이미 투타겸업에 성공한 그이기에 어쩌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투타겸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정도로 양쪽에서 모두 잘하는 시나리오는 그 누구의 상상 속에서도(물론 오타니는 빼고)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금 오타니의 홈런 3개는 크리스 브라이언트(시카고 컵스), 카를로스 코레아(휴스턴), 매니 마차도(볼티모어), 애런 저지(뉴욕 양키스)보다 많고 탈삼진 17개는 맥스 슈어저(워싱턴), 노아 신더가드(뉴욕 메츠), 크리스 세일(보스턴), 저스틴 밸런더(휴스턴), 코리 클루버(클리블랜드)보다 많다. 투타 겸업을 하면서 거둔 성적이 이 정도다. 미 언론에서조차 “지구인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로 엄청난 활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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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소시아 LA 에인절스 감독과 오타니 쇼헤이(왼쪽부터). 오타니는 꿈을 위해 계약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기에 메이저리그행을 선택했다. /AFPBBNews=뉴스1


물론 이는 시즌 첫 11일간의 성적일 뿐이다. 오타니가 지금의 이런 경이적인 페이스를 계속 이어갈 수는 없다. 오타니가 앞으로 얼마나 더 위로 치고 올라갈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지금 출발이 뜨거워도 시즌이 끝났을 때 그가 브라이언트나 코레아, 마차도, 저지보다 홈런을 많이 치고 슈어저, 신더가드, 세일, 벌랜더, 클루버보다 삼진을 많이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아직까지는 샘플사이즈가 너무 작다며 성급한 결론을 내리지 말자는 신중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샘플사이즈의 크고 작음을 떠나 지금까지 오타니가 보여준 모습만으로도 그가 앞으로 보여줄 활약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설레지 않는 스포츠팬은 없을 것이다. 마치 예술처럼 스트라이크존 코너를 슬쩍 페인트칠하고 들어가는 시속 99, 100마일짜리 광속구들에 대해 현지 중계진은 “시속 90마일로 들어왔어도 ‘언히터블’이었을 투구”라고 찬사를 금치 못했다. 또 빠른 볼처럼 들어오다 타자 눈앞에서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는 수없이 많은 헛스윙과 삼진을 쓸어 담으며 이미 ‘악마의 스플리터’, ‘싹쓸이’(wipeout) 스플리터라는 무시무시한 닉네임을 얻었다.

타자로서도 만만치 않다. 타석에선 타구를 450피트(137m)나 날려 보내는 가하면 절반 이상의 타구가 속도가 시속 95마일이 넘어 ‘하드히트’로 분류되는 타구들을 펑펑 때려내고 있다. 스프링 트레이닝 기간 중 사용했던 레그킥을 포기하고 대신 토탭(Toe-tap)만으로 배트 컨트롤을 유지하면서도 엄청난 파워를 타구에 실어내는 그의 모습에서 ‘투수 오타니’ 못지않은 ‘타자 오타니’의 천재성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오타니가 이뤄내고 있는 것들은 미국에서 ‘올드 피플의 스포츠’로 여겨지던 야구에서 100년 이상 잠자고 있던 젊은이들의 상상력을 깨워냈다는 점에서 더욱 가치가 있다. 기존의 정해진 틀에 순응하며 자신의 꿈을 그 틀에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그 울타리를 뛰어넘어 무한한 도전을 추구하고 있는 오타니로 인해 앞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제2의 오타니’를 꿈꾸는 선수들이 나올 수 있는 발판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타니는 자신의 큰 꿈을 위해 당장 최저연봉과 함께 향후 6년간 팀에 묶이는 계약상 불리함을 감수하고 조기에 메이저리그행을 선택했다. 2년 뒤 완전한 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면 2억달러 이상 계약도 가능하다는 전망도 한시라도 빨리 최고의 선수가 되겠다는 그의 일념 앞에선 장애물이 아니었다. 돈에 대한 계산 없이 ‘무한과 그 이상을 향해’ 도전의 꿈을 펼치는 오타니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다. "To infinity and bey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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