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영화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29)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8.04.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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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문제를 우리 인간들의 삶에서 뗄 수 없듯이 영화도 돈 문제를 다루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리가 남들뿐 아니라 주위의 가까운 사람들과 다투고 언성을 높일 일이 있을 때 보면 대개가 돈 문제 때문이다. 사사로운 돈 문제를 다루면 영화가 스케일이 살지 않기 때문에 영화는 사회적인 돈 문제, 즉 금융위기, 금융범죄, 은행강도, 대형 부패사건, 화폐위조 이런 것들을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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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마진 콜:24시간, 조작된 진실' 스틸컷



'마진 콜 : 24시간, 조작된 진실'(Margin Call, 2011)은 돈에 대한 영화에 국한하지 않고 내가 아는 모든 영화들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내용의 대사가 나오는 영화다. 물론, 그 대사들이 제레미 아이언스, 케빈 스페이시의 입을 빌려 나오기 때문에 더 훌륭해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월스트리트영화들 중에서 전문적인 내용을 가장 정확하게 전달한다.

이 영화의 모델은 금융위기 때 도산한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즈인데 리먼이 도산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으로 설정하면서 금융위기가 폭발하기 하루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제레미 아이언스는 리먼의 회장이었던 풀드(Fuld)역으로 툴드(Tuld)라는 이름을 쓴다. 여러 명장면이 있지만 툴드가 자신이 천문학적인 보수를 받는 회장 자리에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앞날을 예측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일장 훈시하는 심야의 긴급회의 장면이다.

"이 비즈니스에서는 머리가 좋거나, 남을 속이거나, 아니면 가장 먼저 움직여야 성공한다"고 하면서 회사가 쓰러지기 전에 부실채권을 모두 헐값에 팔아치우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되면 경제위기가 촉발될 것이라는 케빈 스페이시의 경고에 제레미 아이언스가 답한다. "우리가 위기를 촉발시키면 우리는 위기에서 벗어난 거요."


마지막 부분에서 제레미 아이언스는 케빈 스페이시에게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결국 인간들은 돈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며 살아가고 있지만 이 싸움은 만일 돈이라는 것이 없었더라면 생명과 신체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물리적 싸움의 형태로 지속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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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스틸컷


나는 이 대사에 공감한다.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의 디카프리오가 증시 개장 직전에 임직원들을 선동하면서 '전투'에 대비시키는 모습과 '알렉산더'(Alexander, 2004)가 가우가멜라 전투를 앞두고 장병들의 사기를 고취시키는 장면은 사실상 같다. 그러나 금융시장에서의 전투는 참혹한 살육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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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월 스트리트' 스틸컷


월스트리트영화의 원조는 마이클 더글러스가 고든 게코 역할을 했던 올리버 스톤의 '월스트리트' 1편이다(Wall Street, 1987). 게코는 이반 보츠키나 칼 아이칸 같은 월스트리트의 거물 투자자들이 모델이다. 게코가 주주총회에 나와서 주주들에게 "탐욕은 좋은 것이요(Greed is good)"라고 일갈하는 것이 전설적인 명대사로 남았다. 스톤 감독은 이반 보츠키가 '탐욕은 옳은 것이다(Greed is right)'라는 말을 한 데서 이 라인을 가져왔다고 한다.

이 영화의 시퀄은 23년 후인 2010년에 나왔다(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 마이클 더글러스의 출소 장면에서 시작된다. 5대 투자은행이었던 베어스턴즈가 도산하는 과정을 그린다. 금융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행크 폴슨 재무장관이 월스트리트의 주요 은행장들을 모아놓고 강제로 구제금융 신청서에 서명하게 하는 역사적인 장면도 재현했다. 역시 스톤-더글러스 콤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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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빅쇼트' 스틸컷


'빅쇼트'(The Big Short, 2015)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알려진 MBS니 CDO니 하는 복잡한 파생금융상품들이 친절하게 소개된다.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선정되었고 흥행에도 성공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도 88%나 된다.

크리스천 베일, 스티브 카렐, 라이언 고슬링, 브래드 피트가 나온다. 크리스천 베일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견하고 고객들의 빗발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끈질기에 반대 방향으로 투자한다. 위기가 닥치자 고객은 물론이고 자신도 큰돈을 번다.

가장 노골적으로 돈 얘기를 하는 영화는 스코세이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The Wolf of Wall Street, 2013). 주인공 조던 벨포드의 회고록에 기초했다. 한 증권회사가 탐욕으로 일어서고 추락하는 과정을 그린다. 그 과정에서 범죄적 수법은 필수다. 그러나 그 동안 원 없이 돈을 써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화면에 초록색 미국 달러 지폐가 많이 보이는 영화다. 스코세이지 작품답게 직설적인 영화다.

이 영화는 증권시장의 소액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벨포드와 같은 인물의 행적을 미화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에서도 논란거리였다. 물론 제작자와 감독은 그러한 해석은 관객을 너무 미숙하게 보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벨포드 조차도 이 영화는 자신을 심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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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올 더 머니' 스틸컷


리들리 스콧의 '올 더 머니'(All the Money in the World, 2017)는 역사상 가장 부자들 중 한 사람인 폴 게티의 이야기다. 게티가 어느 정도 부자였는지는 LA의 게티 박물관에 가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게티의 손자를 조폭이 납치했지만 게티가 돈을 한 푼도 주지 않겠다고 해서 아이의 엄마가 전직 CIA 요원 마크 월버그를 동원한다는 내용이지만 스크린을 통해서 돈과 부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돈에 대한 욕심은 도박과 사기로 이어진다. 스코세이지 감독의 '카지노'(Casino, 1995), 스필버그 감독, 디카프리오, 톰 행크스의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 2002), 스코세이지 감독과 폴 뉴먼의 '컬러 오브 머니'(The Color of Money, 1986), 앙상블 캐스트 영화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 2014), 로버트 레드포드와 폴 뉴먼의 고전 '스팅'(The Sting, 1973)이 있다. 이 장르의 프랜차이즈로는 케이퍼 무비의 대명사 '오션' 시리즈가 있는데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 분)이 대장 도둑이다. Ocean’s Eleven(2001), Ocean’s Twelve(2004), Ocean’s Thirteen(2007) 세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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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보니와 클라이드' 스틸컷


돈 많은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거나 부모로부터 많이 물려받는 방법 외에도 남의 돈을 빼앗아서 되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남의 돈을 뺏는 것보다는 은행을 터는 것이 덜 양심에 꺼리는지 은행강도가 예로부터 창궐했다. 영화가 안 다룰 수 없다.

은행강도 이야기로 내가 제일 재미있어 하는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와 케이트 블란쳇의 '밴디츠'(Bandits, 2001)다. 빌리 쏜턴의 연기도 볼만하다. 두 은행 강도가 내일 털 계획인 은행지점의 지점장 집을 찾아가 그 집 식구들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알파치노와 로버트 드니로, 그리고 발 킬머와 존 보이트가 등장하는 '히트'(Heat, 1995)도 명작이지만 은행강도 영화의 고전은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and Clyde, 1967)다. 전설적인 실제 커플 은행강도의 이야기를 영화화했다. 페이 다너웨이와 워렌 비티다. 마지막에 주인공들이 죽는 장면은 영화사 상 가장 처절한 죽음 장면으로 기록되었다. 영화에 폭력적인 장면이 대거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비판도 받는다. 그러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영국 왕실의 비밀이 담긴 대여금고를 턴 제이슨 스태덤의 '뱅크 잡'(The Bank Job, 2008), 금괴 털이범들 간의 배신과 복수를 그린 마크 월버그와 샤를리즈 테론의 '이탈리안 잡'(The Italian Job, 2003) 다 재미있는 영화들이다. 그리고 이 장르의 또 다른 고전인 폴 뉴먼, 로버트 레드포드 콤비의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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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인사이드 맨' 스틸컷


강도 사건은 거의 반드시 인질극을 수반한다. 스파이크 리 감독과 덴젤 워싱턴, 조디 포스터의 '인사이드 맨'(Inside Man, 2006)에서는 은행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범인들과 같은 옷을 입히고 마스크를 씌워서 누가 범인이고 누가 인질인지 알아보지 못하게 한다. 그리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은행에 들어간 목적을 달성하고 유유히 빠져나온다. 다친 사람도 없고 없어진 돈도 없기 때문에 경찰도 사건을 묻어버리게 만든다. 나치 부역자는 물먹고 착한 경찰 워싱턴은 자기도 모르게 사례까지 받는다. 은행강도, 인질극 영화가 이렇게 훈훈하기는 처음이다.

인질로 잡았던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강도 이야기인 벤 애플릭의 '타운'(The Town, 2010)도 재미있다.

국내 영화로는 최동훈 감독과 김윤석, 김혜수, 이정재의 천만 관객 영화 '도둑들'(2012)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강도 영화다. 특히 해운대 상가빌딩 와이어 액션 장면은 할리우드 영화를 뺨친다(더 낫다).

렘브란트의 명화 같은 '소소한' 물건을 훔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서 8조원이라는 어마어마한 거액을 밀레니엄 버그를 틈타 표나지 않게 조용히 훔치겠다는 야심만만한 플랜은 두 도둑 숀 코너리와 캐서린 제타-존스의 작품이다. '엔트랩먼트'(Entrapment, 1999). 쿠알라룸푸르의 쌍동이 빌딩 페트로나스 타워를 기어오른다. 액션과 스턴트가 마치 007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스타들이 강도역을 하는 이런 영화들을 보면서 분명 다 범죄자들이고 이 자들이 경찰에 체포되어서 벌을 받을 것을 바래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성공하고 무사히 빠져나가 잘살게 되기를 바라는 조마조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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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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