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MLB산책] '베이브 루스 소환사' 오타니..풋내기의 만화같은 활약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04.06 09:10 / 조회 :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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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루키의 탄생.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을 때린 오타니가 동료들로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일본에서 온 ‘야구 천재’ 오타니 쇼헤이(24, LA 에인절스)가 빅리그 커리어 첫 일주일 만에 메이저리그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다. 거의 100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투타겸업에 도전하는 것으로 인해 비상한 관심을 받았지만 시범경기에선 투타에서 모두 극심한 부진을 보여 그의 기량에 대한 회의와 명성에 대한 거품론이 거세지면서 현미경 렌즈 밑에 놓인 채 정규시즌을 시작했던 오타니다. 그런데 그는 불과 일주일 만에 그런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시선을 열광과 흥분의 시선으로 바꿔 놓으며 ‘오타니 마니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오타니는 지난달 30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시즌 개막전에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해 첫 타석에서 안타를 뽑아냈다. 이어 사흘 뒤엔 선발투수로 등판해 위력적인 구위를 선보이며 빅리그 데뷔전 승리를 따냈다. 또 자신의 홈 데뷔전이 된 지난 4일(한국시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경기에 다시 지명타자로 돌아온 그는 첫 타석에서 스리런 홈런을 때리는 등 3안타를 몰아쳤고 바로 다음 날엔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받은 코리 클루버를 상대로 비거리 400피트짜리 동점 투런홈런을 터뜨렸다.

시즌 첫 일주일간 치러진 팀의 7경기 중 타자로 3경기, 투수로 1경기에 나선 오타니는 투수로 1승과 평균자책점 4.50(6이닝 3안타 3실점), 타자로 타율 0.429(14타수 6안타)에 2홈런, 5타점, 장타율 0.857, OPS(출루율+장타율) 1.286을 기록 중이다.

그는 지난 4일 경기에서 안타를 칠 때 타구속도 112.8마일을 기록, 지난해 8월 이후 에인절스 타자로는 가장 강한 타구를 때리는 기록도 세웠다. 투수론 첫 선발 등판에서 3차례나 시속 100마일을 찍는가 하면, 시속 90마일로 들어오며 플레이트에서 날카롭게 휘어지는 스플리터는 거의 ‘언터처블’로 평가됐다. 오타니는 첫 등판에서 6이닝동안 스플리터로 10개의 헛스윙을 이끌어냈는데 이는 지난 두 시즌동안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3번째로 많은 기록이었다. 투타 겸업선수가 아니라 투수, 또는 타자 전문 선수라고 해도 상당한 주목을 받을 만한 성적들인데 그것들을 혼자서 모두 해내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이롭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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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투수 데뷔전에서 승리를 따낸 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오타니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지금 그가 비교되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지금 오타니에 대한 현지 기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름은 바로 베이브 루스(1895~1948)다. 루스가 누구인가. ‘위대한 밤비노’로 불리는 루스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범접이 불가능한 영원한 ‘넘버 1’ 전설이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전설로 남은 별 중의 별들이 많이 있지만 그 누구도 루스와 직접 비교되지는 않는다.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ruthian’(루스와 비교될 만한 급이라는 뜻)이라는 단어가 일반 형용사로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돼 있는 사람이 루스다. 같은 문장에서 함께 이름이 언급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그런 인물이다.

그런데 메이저리거가 된 지 이제 겨우 일주일이 지난 풋내기 ‘하룻강아지’인 오타니에 대한 기사에 루스의 이름이 단골로 등장하고 있다. 물론 그 이유는 지금 오타니가 루스와 비교될만한 레벨의 선수여서가 아니라 지금 그가 하고 있는 도전이 루스 이후 그 누구도 해 본적이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100여년 전 루스의 시대로 돌아가기 않고는 지금 오타니가 나선 도전과 비교할 만한 대상조차 없는 것이다.

더욱 경이적인 것은 루스 이후 지난 100여 년간 그 누구도 시도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도전을 오타니는 (최소한 출발만큼은) 너무도 쉽게 이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타니의 천부적 재능이 워낙 뛰어나 궁극적으론 메이저리그에서도 투타 겸업이 가능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거뜬한 출발을 보일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실 오타니가 메이저에서도 ‘이도류’에 도전하겠다고 나섰을 때 대부분 빅리그 팀들은 일단은 그를 붙잡기 위해 그의 요구사항을 수용하겠다고 밝혔지만 내부적으론 오타니가 궁극적으로 투수 쪽에 전념해야 한다고 보고 있었다. 투수 오타니는 충분히 메이저리그 스타급이지만 타자 오타니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그리고 시범경기에서 나타난 모습은 이런 생각을 뒷받침하는 듯 했다. 사실 어쩌면 투수 오타니도 좀 더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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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그런데 정작 정규시즌이 시작되자 단 일주일 만에 그런 분위기는 완전히 사라졌다. 겨우 타자로 3경기, 투수로 1경기를 치렀을 뿐이지만 이미 오타니가 투타에서 모두 메이저리그 톱스타급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더구나 이미 오타니가 나서는 경기는 단순한 경기가 아니라 모두가 주목하고 흥분감 속에 기다리는 ‘이벤트’가 됐다. 오타니가 타석에 등장하면 당장 경기장이 흥분감으로 가득 찬다. 마치 타이거 우즈가 우승을 결정짓는 퍼트를 하려고 준비 중인 순간처럼 전율감마저 느껴진다.

그동안 에인절스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도 이젠 오타니 때문에 에인절스 경기를 지켜본다. 에인절스 선수들 가운데 이름이 소개될 때 그만큼 큰 환호를 받는 선수는 현 메이저리그 최고의 선수라는 마이크 트라웃 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다음 오타니의 선발 등판 일정과 지명타자 출장 경기 일정을 묻고 있다. 다른 지역의 언론들은 에인절스가 자기 지역으로 원정을 올 때 오타니가 선발로 나설 지, 지명타자로 나설 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심지어는 다음 주 월요일에 발표되는 시즌 첫 ‘이 주의 선수’도 이미 오타니의 것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아직 이번 주말 경기가 치러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주간 MVP 이야기까지 나오는 것이 신기하다. 이제 막 빅리그 경력 1주일이 된 ‘풋내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곤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오타니의 데뷔 시즌이 앞으로도 첫 일주일 같은 쾌속 순항의 연속이 될 리는 만무하다.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누구보다도 100여년 전 이를 마지막으로 해냈던 루스의 기록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루스는 빅리그에서 통산 94승(46패)을 올리며 평균자책점 2.28을 기록했고 타자로 714홈런과 타율 0.342를 기록했지만 같은 시즌에 두 자릿수 선발승과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경우는 보스턴 레드삭스에 있던 1918년 시즌 딱 한 번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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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선수 베이브 루스./사진=ESPN 웹페이지 캡쳐


당시 루스는 20경기에 투수로 등판, 13승(7패)을 올렸고 타자로는 95경기에서 11홈런을 때렸다. 이어 1919년 시즌에는 130경기에 나서 29홈런을 때렸지만 투수로는 17경기에서 9승(5패)에 그쳐 2년 연속 ‘10-10’ 고지에 1승이 모자랐다. 루스가 투수로서 절정기였던 4년간(1915~1918년) 78승을 올리면서 이 기간동안 때린 홈런 수 합계는 총 20개에 불과했다. 그가 대부분의 홈런을 때린 것은 1920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이후부터인데 그땐 본격적으로 타자로만 전념해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투수로 등판한 경기는 5경기 밖에 없다.

그런데 오타니의 첫 주 활약상을 보면 그가 올 시즌 두 자릿수 승수와 홈런을 기록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로 보이지 않는다. 이미 많은 오타니 팬들은 그가 올해에 AL 신인왕은 물론 사이영상과 MVP까지 휩쓰는 꿈같은 상상을 하고 있다. 아무리 만화 같은 캐릭터라고 해도 좀 황당해 보이긴 하지만 그런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팬들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자 자유다. 그리고 그런 황당한(?) 상상마저 이끌어내는 오타니가 얼마나 특별한 선수인지 알 수 있다. 빅리그 무대에 등장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오타니는 팬들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메이저리그는 팬들의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새로운 슈퍼스타가 필요하다. 그리고 거의 100년 동안 본적이 없는 도전을 하는 오타니는 그런 메이저리그에게 둘도 없는 보물로 떠오르고 있다. 물론 도전은 이제 겨우 시작이고 그가 진짜로 ‘보물’이 될지는 아직 더 두고 봐야 하지만 가능성은 이미 확실하게 보여줬다. 이미 그로 인해 팬들의 상상력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오타니는 이미 1919년 루스 이후 99년 만에 처음으로 시즌 첫 주에 선발투수로 등판한 뒤 다음 경기에서 타자로 선발 출장해 나서 홈런을 친 선수가 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가 앞으로 얼마나 많이 ‘전설’ 루스의 이름을 소환해 낼지, 또 어떤 만화 같은 스토리를 써내려 갈지 흥분되고 기대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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