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류중일 감독 "가을야구?.. 그보다는.."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4.05 15:14 / 조회 : 5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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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류중일 감독.


“어제 경기 힘드셨죠?”

4일 류중일 감독을 만난 자리 첫인사. 전날 경기 이야기가 빠질 수 없다. LG는 3일 잠실 라이벌 두산과의 시즌 1차전서 연장 11회, 4시간 48분간의 혈전 끝에 4-5로 분패했다.

“이기야 되는데 져삤네요. 에이고마..”

연장 혈투의 패배는 후유증이 크다. 속내는 틀림없이 편치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류감독은 비장함 대신 여유를 드러내 보였다. 그런 여유가 편하게 느껴져 다짜고짜 물어봤다. “새 팀에서 시즌 몇 게임 치러보셨는데 어떨 거 같습니까? 가을 야구 갈까요?”

“금년 가을 야구, 사실은 힘들지 않을까 생각 듭니다.” 허를 찔린 기분이다. 상투적인 질문였다. ‘우승이 목표’ ‘가을 야구 간다’ 등 당위적인 답변을 기대했었다. 새로 부임한 감독이, 비록 현재 성적이 좋지는 않지만 시즌 채 10게임도 치르지 않고 소극적인 전망을 내놓은 게 낯설다.

“다른 팀들이 많이 좋아졌어요. 우리는 멀리 보고 선수구성을 짜임새 있게 꾸준하게 가져가 보려 합니다. 올해보단 내년, 내년보단 후년이 나아질 수 있도록”이라고 부연한다. ‘LG 팬들은 리빌딩이란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딴죽을 걸어보지만 “쭉 리빌딩을 진행해온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상황은 현재도 진행 중”이라며 “양석환도, 오지환도 군대를 가야 합니다. 안익훈이나 유강남 같이 어린 선수들이 더 성장해 주어야 돼요. 선발로 돌아가는 임찬규, 김대현이나 임지섭, 그리고 2군 가있는 임정우 같은 경우도 앞으로 10년은 쭉 성장해줘야 하는 선수들이고 강승호도 그런 차원에서 믿고 내보내고 있습니다”라고 답한다.

‘가을야구’나 ‘리빌딩’ 같이 예민한 부분에 대해서 류중일 감독의 답변은 거침이 없다. 스스로의 공에 자신 있는 투수라면 마운드에서 공연히 허세를 떨 이유는 없다. 그의 답변에선 ‘자신감 갖고 던지는 유인구’라면 모를까 ‘도망가는 피칭’의 느낌은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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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잠실구장에서 만난 류중일 감독 /사진=김우종 기자


팀의 긍정적인 부분과 아쉬운 부분을 물었다. “우리 선수들이 맥없이 무너진 경기가 없다는 점이 긍정적이다. 동시에 그런 타이트한 경기에서 고비를 넘지 못하고 만다는 게 아쉽다. 1점 차 승리를 자주 하다 보면 강한 팀이 된다. 어제(3일) 경기도 우리 쪽으로 와야 되는 경기였다. 차츰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답한다. 타석에서 몇 차례의 기회를 놓친 정상호에 대해 어떤 지침이나 조언을 주었는지를 묻자 “아마 경기 후 미팅에서 그런 부분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선수 본인이 상대와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할 부분이다. 상대투수 구질이나 볼 배합 등을 연구해서 당하지 말고 공략방법을 찾아내야 한다”고 답한다.

수비면에서 큰 실수가 없다는 점도 긍정적인 면이라고 강조한다. “확실히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다. 특히 큰 타구에 대한 중계플레이 훈련을 많이 시켰는데 외야에서 홈 송구가 엉뚱하게 빠지는 경우가 없다.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면 중간투수들의 구속이 안 나오는 부분엔 아쉬움을 느낀다. “위기 때 막아 주어야 하는 중간투수들이야말로 강력한 속구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변화구도 먹힌다. 작년 홀드왕 했다는 진해수도 그렇고 우리 불펜 선수들의 구속이 전반적으로 다른 팀에 비해 떨어진다. 이동현도 어제 경기서 자신감을 잃어 2군에 보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류감독은 삼성 시절 회고도 곁들인다. “삼성 처음 맡아 통합우승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은 투수력 였다. 그때도 타력은 별로 안 좋았는데 전임 선동렬 감독 있을 때부터 중간 투수들이 좋았다. 안지만, 권혁, 권오준, 오승환, 또 오승환 나가고 임창용, 이런 친구들이 승리를 지켜줬다. 5회 이후 또는 7회 이후 경기가 안 뒤집힌다는 믿음을 주었고 타자들의 자신감도 키워줬다”며 “현재까지 우리 불펜이 크게 무너지고 하는 부분은 없지만 믿음을 주기엔 다소 부족한 느낌이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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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훈지에서의 류중일감독./사진=LG 트윈스 제공


밖에서 본 LG와 감독 부임해서 본 LG와의 차이점을 물어보자 “선수들이 의외로 착하다”는 답이 돌아온다. ‘의외로?’란 대목에 대해 류감독은 “서울 깍쟁이들이란 선입견이 있었다. 조금 이기적이고 놀기 좋아하고 하는.. 근데 와서 보니 다들 순진하고 착했다. 사생활이야 어떤지 모르겠지만 훈련들도 열심히 하고 선후배 사이도 돈독하고.. ‘이렇게 착해서 야구를 못하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라고 답한다.

그는 삼성 시절부터 외인 선수들 다독이는데도 능숙했다. 2011년 첫 사령탑 부임 후 당시 일본인 투수 카도쿠라 켄, 타자 라이언 가코와 각각 15승, 100타점을 걸고 내기를 한 것을 시작으로 2012년 탈보트, 고든 등과 내기를 하는 등 매해 꾸준히 한국이 낯선 외국인 선수들에게 색다른 동기부여를 해왔다. 내기 결과는 대부분 류 감독이 선수 부인들에게 가방 등을 선물하는 식으로 끝나곤 했다. 올해도 그는 소사, 윌슨, 가르시아와 함께 식사하며 “내가 1년 동안 야구 하면서 너희들이 잘했다고 느끼면 너희 부인들에게 좋은 선물을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매니저와 식사한 것이 처음”이라는 반응을 보인 선수들이 기뻐한 것은 당연지사다. 8월에 쌍둥이를 낳을 예정인 윌슨이 특히 좋아했다는 전언이다.

그는 용병들에 대해 “가르시아는 꾸준히 잘해주고 있고 소사와 윌슨이 승리가 없는데 잘 던지고도 승수를 못 올리는 경우였다. 앞으로 게임 많이 남았으니 침착하게 잘해준다면 두 투수 다 10승 이상 하지 않겠나”고 기대를 드러냈다.

그에게 ‘류중일 야구’를 물었다. “특별한 게 있을까마는 선수에게 많은 부분을 맡기지만 요소요소 포인트는 잘 잡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가령 상대 투수의 피칭에 우리 팀 어느 타자의 스윙 궤적이 잘 맞는지, 왜 잘 맞는지, 혹은 왜 안 맞는지 등을 많이 고민한다. 역으로도 마찬가지다. 데이터도 참조하고 몇십 년 야구 해 왔던 나와 스태프의 눈으로 분석도 해본다, 야구라는 게 성공보다 실패가 많은 종목이다. 10번 나와 3번만 때려도 칭찬받지 않나. 그런 분석을 통해 확률을 높여가고자 노력한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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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구장의 주인이 되어 맞는 첫시즌. 류중일감독의 2018시즌이 궁금해진다.


야구 인생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을 첫 감독 맡고 달성한 2011년 통합우승 때라고 회고하는 류감독은 가장 속상할 때를 “내 선수들이 사고 쳐서 물의를 빚을 때”라고 말한다.

프로선수라는 자체가 검증된 재능의 소유자임을 증명한다. 그중에는 아주 대단한 재능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오만하거나 방만하거나 화를 못 참거나 하는 등의 이유로 그런 재능들이 낭비되고 사장되는 경우도 많다. 류 감독은 그런 부분을 속상해한다.

“프로야구 선수 생활이란 게 많이 힘들죠. 나만 해도 혼자 밥 한 그릇 사 먹기도 힘들어요. 보는 눈들이 많으니 소주 한잔 하기도, 데이트 한번 하기도 불편하겠죠. 초등학교 때부터 질리도록 해온 야구, 프로 와서도 시즌 치른다, 훈련한다 옴짝달싹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고.. 하지만 자신의 선택을 책임감 갖고 지켜나가는 것이 프로 선수로서의 자질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는 시무식 때도 “앞만 보자. 야구만 하자”를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국가대표였고 프로선수였고 코치였고 통합우승 4번을 한 감독이다. 가장 성공적인 야구인생을 살아낸 이 중 한 명 이다.

그리고 ‘푸른 피’로 산 31년을 접고 ‘유광점퍼’를 입고 다시 승부의 그라운드에 뛰어들었다. LG의 류중일이 어찌할지, 그래서 류중일의 LG가 어떤 성과를 거둘지도 2018 KBO 리그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논외로 어쨌거나 그는 후배들의 재능을 축복하고 개화시키고 싶어하는 야구 선배임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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