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소공녀'와 전고운, 이 여성감독이 사는 법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3.20 16:45 / 조회 : 108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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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고운 감독/사진제공=광화문시네마


전고운 감독(33). 울진 출신이다. 고교 시절 포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건대 영화과에 갔다. 한예종를 다니다가 제적됐다. '소공녀'로 장편 영화를 처음 선보였다. '범죄의 여왕'을 만든 이요섭 감독이 남편이다. 이요섭 감독 등과 '족구왕' 같은 재기발랄한 독립영화를 만든 광화문시네마를 세웠다. 이런 프로필이 전고운 감독을 다 설명하진 않는다.

전고운 감독의 생각은, 감정은, '소공녀'에 깊게 박혀있다. 창작자의 숙명이다. '소공녀'는 담뱃값이 오르자 집을 포기하고 친구들 집에서 하룻밤씩을 보내는 여인 미소의 이야기다. 행복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지 묻는다. 행복이란 무엇인지 묻는다. 독립영화든 상업영화든, 뜨겁고 격렬해야 박수받기 마련인 한국영화계에서 오롯이 서 있는 영화다. 전고운 감독에게 '소공녀'를 물었다. 이 여성감독이 더 많은 영화를 만들기 바란다.

-왜 영화를 하게 됐나.

▶고등학교 때 울진에서 포항으로 유학을 갔다. 외로웠던 것 같다. 원래도 사람이 삐딱했다. 영화로 위로를 많이 받았다. 비디오가게 알바가 꿈이었을 정도로 보고 또 봤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얼마나 대단한지도 모르고, 그저 영화가 좋아서 보고 또 봤다. 한예종을 다니다가 워낙 휴학을 많이 하다 보니 제적당했다.

-한예종 친구들과 광화문시네마를 만들었는데. 왜 독립영화였나.

▶상업영화는 '굿바이싱글' 각색도 하고 스크립터도 했다. 그런데 상업영화판에 큰 뜻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재미가 없었달까. 대중의 구미를 맞추기보다 하고 싶은 게 우선이더라. 상업영화, 독립영화 구분도 나중에 알게 됐다. 돈이 문제더라.

-영화 속 미소 외형이 특이하다. 참고한 사람이 있나.

▶실존인물을 참고하진 않았다. 노숙여인을 종종 본 적은 있다. 그게 무의식에 있을지는 모르지만 어떤 이미지를 떠올리며 참고하진 않았다.

-왜 제목이 '소공녀'인가. 영화 '소공녀'와 소설 '소공녀'는 전혀 다른데.

▶이야기 자체가 속된 말로 여자거지에 관한 것이다. 직설적이라 거부감이 들까 고민하던 중에 한 친구가 아이디어를 줬다. 소설 '소공녀'도 하루아침에 집을 잃고 하녀처럼 살게 되는 여자 이야기라며. 사실 책은 읽지 않고 어떤 이야기인지만 알고 있었다. 어감도 좋고, 잘 맞을 것 같아서 바로 가져왔다.

-집을 포기하고 친구집을 여행 다닌다는 설정은 어떻게 가져왔나.

▶재워달라고 하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고 해도 잘 안 되더라. 괜찮다고 해도 안 괜찮은 반응. 나부터 그렇다. 특히 서울이 더 그런 것 같다. 그게 또 여자는 남자들과는 다르기도 하고. 그런 마음이 잘못된 게 아닐까 싶었다. 각박하고. 친구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하면서 정작 자기 공간을 침입하는 데는 거부감을 갖는 내 반성에서 시작됐다.

집은, 이 이야기를 구상할 때가 결혼 초기였다. 집이 제일 큰 걱정이었다. 부모님 도움을 받았는데 죄책감이 컸다. 그러면 부모님 도움을 못 받으면 결혼을 하면 안되나란 생각이 들었다. 월세를 아끼려다보니 다 포기하게 되더라. 사람도 안 만나게 되고. 그래서 나와 180도 다른 사람을 보고 싶었다.

-왜 담배인가.

▶주위가 다 담배를 핀다. 담뱃값이 2000원 더 올랐을 때 다 화를 냈다. 둘 중에 하나였다. 끊거나, 밥은 안 먹어도 피거나. 더 나아가고 싶었다. 내 나름대로의 저항이었다. 그리고 담배 피는 여자 주인공을 보고 싶었다.

-왜 여자 주인공인가. 왜 담배 피는 여자 주인공인가.

▶우선 내가 여성이라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 주인공을 보고 싶었다. 남자주인공 영화는 많다. 남자거지가 주인공인 영화도 많다. 그런데 '인사이드 르윈' 같은 남자거지 영화는 낭만적이라고 하는데 여자거지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여자가 담배를 피운다. Why Not? 여자가 담배를 피면 왜 센 여자로, 쉬운 여자로 여기는지 그런 편견에 맞서고 싶었다.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한편으로는 섹슈얼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그래서 '소공녀'에선 담배 피는 여자에게서 최대한 섹슈얼한 걸 빼려 했다. 의상도 치마가 아닌 바지를 입게 하고, 자세와 태도 하나하나 신경 썼다. 어렵지 않다. 섹슈얼이란 건 만들어진 것이다. 몇가지를 빼기만 하면 됐다.

-여성감독 영화에는 편견이 있다. 흥행이 안된다, 섬세하다, 작은 이야기를 만든다. 섬세하다는 것도 결국은 편견이자 선입견인데.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런 편견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건 여성감독 수가 워낙 적어서 그렇다. 워낙 적으니 다양한 걸 볼 수가 없다. '소공녀'는 여성감독에 대한 편견에 다 들어맞는다. 하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 뿐이지, 그런 편견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소공녀'는 여행담이다. 보통 여행담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성장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소공녀'는 다르다. 오히려 주인공 미소는 이미 완성된 캐릭터고, 그녀를 통해 친구들이 성장하거나 성찰하게 되는 영화인데.

▶주인공이 성장하는 영화에 나 스스로 질렸다. 성장에는 아픔이 필요하다고 하고, 정말 필요는 하다. 그런데 그건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프다고 다 성장하진 않는다. 나까지 아픔을 중요하다고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기획할 때 왜 주인공이 성장하지 않냐는 지적이 많았다. 성장영화는 더 투자도 잘 된다고 하고. 그런데 나 같이 성장에 피로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성장 타령 그만하고 닥쳐라, 라고 하고 싶었다.

-미소는 가사 도우미가 직업이다. 가사 노동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그렇게 설정했다고 했는데. 그런데 밥하고 청소하는 건 보통 엄마에게 강요하는 역할이다. 그리하여 미소가 친구들에게 밥 해먹이고 청소해주는 건, 엄마 역할을 해주면서 위로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는데.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싶다. 밥하고 청소하는 게 엄마들이 하는 노동이긴 하다. 그런데 일단 나부터 영화 한다고 밥하고 청소를 안 하고 살았다. 돈 있으면 그 노동을 하는 사람을 쓰고 싶다. 그게 성공한 사람들의 결핍이 아닐까 싶었다. 밖에서 인정 받고 성공하려 정작 안에선 못하는. 그 또한 내 반성에서 시작됐다.

-미소는 시작부터 완성된 캐릭터다. 이 완성된 캐릭터가 돌아다니면서 결핍된 캐릭터들을 채워주는데.

▶미소는 내 로망의 결집체다. 완성된 캐릭터다. 저런 사람이 있었으면 했다. 보고 싶었다. 자본주의의 우선 가치에선 밑에 있으나 예의 있고, 강하고, 멋진 여자.

-'소공녀'에서 등장인물들 중 찌질한 남성 캐릭터들은 말할 것 없고, 여성 캐릭터들은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조차 어떤 선입견으로 만들어졌다. 대기업에서 일하지만 친구 하룻밤 재워주기 어렵고, 술집 다니고, 아파트 타령했다가 이혼하고, 남편 때문에 자기를 잃고, 돈 많은 남자와 결혼했는데 책 잡힐까 전전긍긍한다. 자칫 여성에 대한 선입견에 기댄 캐릭터들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 물론 미소라는 캐릭터와 이 여성 캐릭터들이 만나면서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지긴 하지만.

▶여성 감독이 왜 여성 캐릭터들을 그런 선입견대로 만들었냐고 한다면, 음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쉬운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내가 시니컬해서 그럴수도 있고.

-선입견에서 오히려 자유롭기에 뭐 어때, 이런 것도 같은데.

▶선입견을 굳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여성 감독이라 여성의 좋은 면만 담아야 한다? 그게 더 이상하다. 인생의 다른 면들,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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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에서 미소 역을 맡은 이솜 스틸


-'범죄의 여왕'으로 광화문시네마와 인연을 맺은 이솜이 '소공녀' 주인공 미소를 맡았는데. 원래는 더 나이가 있는 캐릭터였을텐데.

▶독립영화를 하면서 캐스팅할 때마다 서러웠다. 인지도 있는 배우를 써야 투자도 쉽기도 하고. 인지도 있는 여배우들은 적극적인 참여 의사들이 있다. 아무래도 여배우가 주연인 영화들이 많지 않으니깐. '소공녀'는 원래 나이가 더 많은 여배우를 고려했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나이를 낮춰야 했다. 그 때 이솜이 보였다. 일단 열정적이어야 했고, 내가 배우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됐어야 했다. 이솜에게 제안을 했고, 흔쾌히 받아들여줬다.

-이솜에게 어떤 걸 주문했나. 미소는 감정을 폭발하지 않는 캐릭터인데. 그런 톤조절이 굉장히 어려운 법인데.

▶미소에게 가장 중요한 게 톤조절이었다. 이솜은 일단 내게 시간을 다 줬다. 오라고 하면 오고, 친구들 역의 배우들을 만나야 한다면 다 만났다. 만났을 때는 즉흥적으로 대사를 줬다. 입에 어떤 대사가 맞는지를 봐야 했으니깐. 그렇게 이솜이 다했다. 난 현장에서 이솜이 긴장하면 그것만 잡아주면 됐다.

-이솜이 움직이는 식물처럼 굉장히 잘 했다. 조연인 친구들 역 배우들이 뜨겁고. 주인공인 리액션이고, 조연이 액션이다. 여느 영화와는 반대인데.

▶이 영화 주제는 친구들에게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의 캐릭터를 극대화 시켜야 했고, 미소는 그걸 받는 역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밸런스가 중요했다.

-여러 등장인물들 중 술집여자 캐릭터가 인상적인데. 이 영화와 안 맞는 듯 하다가 미소를 만나면서 이 영화에 녹아든다. 다른 영화에서는 못 볼 것 같은 방식으로 그렸는데.

▶만들 때 반응이 반반이었다. '소공녀'와 안 맞는다고 삭제하라는 의견이 반이었고, 괜찮다라는 의견이 반이었다. 술집여자를 풍성하게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건 인정하지만, 편견이 없었기에 그대로 갔다. 그게 뭐 어때. 그건 내가 여성이라서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 부분은 연출이 구태의연하고 세련되지 못하다.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어린 나이에 섹스를 경험한, 혹은 많은 섹스를 경험한 여성들이 스스로를 "싸다"라고 표현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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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에서 대용 역할을 맡은 이성욱


-남성 캐릭터 중에서 애정이 가는 캐릭터는.

▶아무래도 아파트 샀더니 아내가 도망갔다는 대용이다.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남성에 대한 내 애정이 담긴 캐릭터다. 납작한 캐릭터들 속에서 가장 통찰력 있고 풍자를 담았다고 생각한다. 남자다움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에서 밤과 낮이 달라야 하는 남자에 대한 애처로움이랄까. 실제로 이별하고 슬퍼하던 아는 오빠를 위로하다가 떠올린 캐릭터다. 그렇게 슬프면 울라고 해도 못 울더라.

-미소의 남자친구로 출연한 안재홍 캐릭터는 사실 불필요하지 않나란 생각도 들던데.

▶고민했는데 꼭 필요하다고 결정했다. 일단 사랑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이 미소라는 캐릭터를 자칫 관객이 사차원이라고 주변에 있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이 캐릭터가 사랑하는 모습을 보면 관객이 나랑 다르더라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짜처럼 안보이는 게 가장 중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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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에서 김록이 역을 맡은 최덕문


-노총각 캐릭터가 등장하는 시퀀스는 '소공녀'에서 이질적인데 또 어울리는데.

▶재밌으려고 썼다. 일단 그 캐릭터는 늙은 캥거루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톤이 그 때는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그 지점에서 관객이 떠날까봐 그랬다. 그 지점에서 웃기고 다르고 조금 세야 관객을 영화에 붙들 것이라 생각했다.

-왜 이 결말인가.

▶원래는 해외에서 여전히 똑같은 일하고 담배 피는 미소를 담으려 했다. 그런데 반발이 심했다. 너무 판타지스럽다, 무책임하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결말이다, 이런 반응들이 많았다. 제작비 문제도 있긴 하지만 그 의견들을 받아들여야 할지 반반이었다. 처음에는 동의하지 못했다. 어차피 미소는 완성된 캐릭터인데. 해외에서 그러는게 뭐가 판타지야 싶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차피 한국이 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돌려서 하는 건데 외국 가면 괜찮냐면 그건 아니지 않나란 생각을 하게 됐다. 어디서든 똑같다는 건,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와 똑같으니깐.

-그런 결말이라 누구는 이 영화에 위로를 받고, 누구는 씁쓸해하는데.

▶누구를 위로할 깜냥은 안된다. 그저 공감을 하면 그것만으로 신나고 그렇지 않나.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르면 비정상이란 사회인데 다르면 어때, 라고 하고 싶었다.

-광화문시네마 공동대표다. 언제나처럼 엔딩 크레딧에 다음 영화 예고편이 나왔는데. 이번엔 강시다. 준비돼 가고 있나.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다. 시나리오도 정해진 건 아니고 이런 걸 해보면 어떨까 싶은 프로젝트다. 현재로선.

-독립영화 제작사로서 수익이 나지 않으면 다음 영화를 또 만들기가 쉽지 않을텐데. 광화문시네마는 배우, 스태프가 모두 지분을 나누는데.

▶지분을 나누는 건 당연한데 한가지 생각을 못한 게 있다. 사무실을 운영하려면 운영비가 든다. 또 영화가 흥행이 되면 세금을 내야 한다. 그걸 전혀 생각 못했다. 그런 걸 고려해서 지분도 '소공녀'부터는 좀 차등을 뒀다.

-차기작은.

▶없다.

-왜요?

▶여성감독이니깐요. 그 뭐랄까 근원적인 질문을 내게 던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영화가 재밌어서 했다. 그런데 장편을 하나 내놨는데 지금 이 순간까지 아무것도 즐겁지 않다. 내가 여자란 걸 요즘에야 비로소 실감한다. 인터뷰에서 "여자가 약자다"라고 하면 악플이, 악플이. 차별이란 건 당하는 사람도 사실 잘 인지하지 못한다. 남자 감독이라면 신경쓰지 않아도 될 것까지 신경써야 한다. 모든 걸. 예컨대 현장에서 더 할 수 있는데 여자 감독이라 피곤하다는 소리를 안 들으려 자제하기도 한다. 내가 작은 여자라서 그런지, 체력도 딸리고. 이 모든 걸 나한테 다시 질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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