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지암' 죽도록 무섭거나 하나도 안무서운 체험공포

[리뷰] 곤지암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3.20 10:22 / 조회 : 2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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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를 체험하러 간다. 공포만 즐기려 간다. 안전하다고 믿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 공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안전하지 않다. 체험 공포 영화는 안전하지 않은 공포를, 안전하게 즐기는 모순적인 장르다. '곤지암'은 한국 공포영화에 이제까지 없었던 체험을 도입한 영화다. 그 시도는 성공적이다.


곤지암 정신병원. CNN 선정 세계 7대 괴기스러운 장소로 꼽힌 곳이다. 귀신을 봤다느니, 공포체험을 하러 간 아이들이 사라졌다느니, 일찍이 도시전설처럼 떠도는 장소다.

이곳에 유튜브 공포채널 생방송에 나선 호러타임즈 7명의 멤버들이 탐험에 나선다. 많은 사람들이 생방송을 볼수록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목표 아래, 더욱 자극적인 공포를 찾아 나선 것.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생방송을 준비하며 공포 미션 완수에 기대감을 키운다.

자정이 다가오고 곤지암 정신병원에 들어선 6명. 베이스캠프에서 생방송 중계를 조정하는 대장을 제외하고 6명 전원이 몸에 중계 카메라를 장착했다. 미리 곤지암 정신병원에 카메라를 설치해둔 것은 물론이다.

"와우 아직 귀신들이 출근을 안 한 모양"이라며 낄낄대는 그들. 한번도 열린 적이 없고, 열려다가 다들 죽거나 실종됐다는 402호 문을 여는 걸 최종 목표로 1층부터 4층까지 하나씩 탐험에 나선다. 으스스하다. 라이트가 비추지 않는 어둠 속에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나올 것만 같다. 깜짝깜짝 놀랄 일이 벌어질 때마다 유튜브 조회수는 미친 듯이 올라간다. 신이 난다.


점점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기대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공포를 즐길 수 없다. 자칫 공포 속으로 끌려 들어갈 것만 같다. 그렇게 진짜 공포가 다가온다.

'곤지암'은 '블레어위치' 같은 페이크다큐를 표방한다. 진짜로 일어났을 법한 일처럼 만들었다. 곤지암 정신병원이란 실제로 있는 장소. 떠도는 도시전설. 현실을 바탕으로 가상을 더했다. 그곳에 공포체험을 하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겪는 이야기. 또 하나의 도시전설을 목표로 했다.

일찍이 '기담'으로 한국 공포영화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킨 정범식 감독은, '곤지암'으로 한국 공포영화에 새로운 시도를 했다. 여느 한국 공포영화에는 한을 갖고 있는 귀신이 등장한다. 그래서인지 여자귀신이 많다. 이 귀신이 원한을 쏟아내면, 그 원한을 풀어주는 게 한국형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내러티브다. 외국 공포영화들이 귀신과 맞서 싸우거나, 패배하거나 라면, 한국 공포영화는 해원이 목표다. '곤지암'에는 그런 한국형 공포영화 내러티브가 없다. 그저 공포 체험에 나섰다가 진짜 공포에 직면한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곤지암'에는 음악이 없다. 음향만 있다. 여느 공포영화에서 음악으로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장치적인 기법이 없다. 실제처럼 느낄 수 있는 소리만이 들린다.

'곤지암'에는 유명배우도 없다. 이승욱 위하준 박지현 오아연 문예원 박성훈 유제윤 등 대중이 잘 모르는 신예들이 출연했다. 익히 얼굴을 아는 배우가 출연하면 가짜라는 티가 날까 봐, 얼굴을 모를만한 배우들만 등장시켰다. 이 배우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메고 영화를 찍었다. 그렇게 다큐 같은 다큐 아닌 공포영화가 탄생했다.

정범식 감독의 이 같은 선택은 주효했다. '곤지암'은 그렇게 공포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인다. 시작부터 끝까지 긴장의 밀도가 높다. 이 체험에 기꺼이 동참하려는 사람들, 영화 속 대사처럼 "예전에는 책을 읽었나봐"라는 유튜브 세대들에겐, 미치도록 공포를 줄 것 같다.

다만 공포영화 내러티브에 익숙한 관객들, 체험 공포가 낯선 사람들, 유튜브식 영상이 불편한 사람들, 삶이 더 무서운 사람들에겐, 뭐가 무서운지 모를 것 같다. 공포 체험에 온도 차이가 극과 극을 달릴 것 같다. 죽도록 무섭거나, 정말 안무섭거나.

분명한 건 새로운 한국공포 영화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건, 언제나 처음에 신기해하거나 거부당하는 법. 이제는 한국 공포영화 전설로 기억되는 '기담'도 그랬다. 과연 '곤지암'은 즉각적인 반응을 얻게 될지, 나중에야 새로운 전설로 재평가될지, 흥미로운 한국 공포영화가 모처럼 찾아왔다.

3월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기자시사회에서 무섭다고 중간에 뛰쳐 나간 사람들과 뭐가 무서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로 반응이 크게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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