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MLB산책] '시범경기 부진' 오타니.. 이치로도 그랬었다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03.20 08:19 / 조회 : 4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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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이어 미국에서도 투타 겸업에 나선 오타니 쇼헤이. 시범경기에선 극도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FPBBNews=뉴스1


지난 2001년 애리조나 피오리아에 위치한 시애틀 매리너스의 스프링캠프에서 모든 시선은 일본에서 건너온 ‘야구천재’ 스즈키 이치로에게 쏠려 있었다.

당시 시애틀은 일본프로야구에서 7번이나 타격왕에 오른 이치로가 포스팅되자 1천300만달러가 넘는 거액을 베팅해 그와 독점 협상권을 따낸 뒤 3년간 1천400만달러에 계약했다. 당시 일본프로야구 출신 타자로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도전에 나서는 이치로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는 최고 수수께끼이자 최대 관심사였다. 일본 전체는 말할 것도 없고 루 피넬라 감독과 동료선수들도 기대감과 회의감이 반반씩 섞인 시선으로 그를 주목했다.

하지만 이치로의 첫 번째 스프링 트레이닝은 모두에게 실망만 안겨줬다. 처음 보는 빅리그 투수들의 공에 이치로의 방망이는 번번이 빗맞았고 타구는 하나같이 내야 왼쪽으로 약하게 굴러갔다. 처음에는 적응하는 과정이려니 하면서 참고 기다리던 피넬라 감독도 시범경기 시즌 후반까지 이치로가 계속 왼쪽으로 약한 땅볼 타구만 굴려내자 조금씩 인내심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사실 피넬라 감독 뿐 아니라 동료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투수 제프 넬슨은 “우리 모두가 회의적 이었다”면서 “그(이치로)는 사실 스프링 트레이닝에서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고 우린 모두 ‘그가 (메이저리그 피칭에) 상대가 못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투수 애런 실리는 “그(이치로)는 루(피넬라 감독)에게 계속 ‘나는 (적응을 위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지만 우리 모두는 코미디 영화 주인공이나 될 법한 친구를 데려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캐처였던 톰 램킨은 “루는 (이치로가 성공적인 빅리거가 될 것을) 믿지 않았다”고 말했고 중심타자였던 존 올러루드도 “루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당시 벤치코치였던 존 맥클라렌에 따르면 이치로의 타구들이 끝없이 내야 왼쪽으로 약하게 굴러가자 결국 인내심이 바닥난 피넬라 감독이 어느날 이치로에게 “이치로, 자넨 한 번이라도 볼을 제대로 잡아당겨 칠 생각이 있느냐(Ichiro, do you ever turn on the ball?)”고 물었다. 이치로는 “가끔은요(Yeah, sometimes.)”라고 대답한 뒤 그날 첫 타석에서 오른쪽 펜스를 넘어가 언덕 위에 떨어지는 홈런을 때렸고 덕아웃에 돌아와 “감독님, 이게 잡아당기는 것 맞지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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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시절의 이치로./AFPBBNews=뉴스1


피넬라 감독은 “당시 이치로는 시종일관 왼쪽으로 밀어치기만 해 상대 팀들이 그를 오른손 풀히터처럼 수비하고 있었다”면서 “그래서 난 그에게 볼을 당겨 치라고 주문했고 그는 ‘노 프로블럼(No problem)’이라고 답한 뒤 다음 타석에서 오른쪽으로 홈런을 때렸다”고 말했다. 덕아웃에 돌아온 이치로가 “감독님, 이제 만족해요?”라고 묻자 피넬라 감독은 “이제부터 네 마음대로 하고 싶은 것 해”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 다음 일은 역사가 말해준다. 이치로는 그해 타율 0.350과 56도루로 타격왕과 도루왕에 오르며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휩쓸었고 아직까지도 현역으로 뛰며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스타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 이치로가 당시 모든 것을 쫙 꿰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솔직히 말해 편하지 못했다. 루키이자 첫 일본인 타자로서 중압감이 커 굉장한 압박감을 느꼈다. 내가 잘 해야만 다른 (일본인) 선수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돌아봤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일본인 ‘야구천재’가 빅리그 스프링 캠프에서 비슷한 상황을 맞고 있다. 바로 LA 에인절스에서 투타 겸업이라는 역사적인 도전에 나선 쇼헤이 오타니(24)다.

베이브 루스 이후 100년 만에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투타겸업에 도전하는 오타니는 태평양 양쪽에서 최고의 빅뉴스로 관심을 집중시켰지만 정작 시범경기에서 오타니는 투타 모두 극도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오타니는 선발투수로 2번의 공식 시범경기에서 9피안타로 9실점(8자책점)해 평균자책점이 27.00, 피안타율이 0.529에 달하는 ‘동네북’ 수준의 기록을 기록 중이다. 또 타석에서는 타율 0.083(24타수 2인타)에 그치고 있는데 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는 그가 고교생 수준의 타자라는 혹평을 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반응은 실망을 넘어 이젠 ‘이도류’가 아니라 ‘2류’라는 조롱이 나올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그가 마이너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장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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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 오타니는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 시범경기중 최고구속 98마일을 찍는 구위를 선보여 포텐셜을 인정받고 있다./AFPBBNews=뉴스1


하지만 이치로의 케이스를 보면 시범경기의 성적만으로 오타니를 깎아내리는 것은 성급할 뿐 아니라 현명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타니는 아직 만 23세의 어린 선수다. 언어와 문화가 전혀 다른 곳에서 처음 나서는 빅리그 캠프에 대한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2001년 당시 이치로가 일본무대에서 이미 정상에 오른 만 27세의 베테랑이었음에도 시범경기에서 그처럼 고전했다면 오타니에게는 더욱 힘들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몇 몇 시범경기 성적만으로 그를 온전히 판단하는 것은 너무 성급해 보인다.

사실 투수로서 오타니는 부진한 성적에도 불구, 이번 시범경기에서 최고 구속 98마일을 찍었고 멕시코 프로팀과의 B게임 성적까지 포함하면 8⅓이닝동안 탈삼진 19개를 잡아냈다. 아직 성적은 안 나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구위만으로도 빅리그 투수로 성공할 수 있는 포텐셜은 충분해 보인다. 과거 국제무대에서 보여준 압도적인 그의 퍼포먼스를 생각하면 그가 빅리그에서 선발투수로 자리 잡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타자로서의 오타니는 좀 더 장기간으로 지켜봐야 할 프로젝트인 것 같다. 이치로 이야기를 했지만 이치로와 오타니는 전혀 다른 타자이고 오타니를 이치로와 비교할 수는 없다. 타자로서 오타니가 궁극적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뛸 만한 재목인지는 미지수이지만 분명한 것은 현재의 오타니는 빅리그 타자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이너에서 가다듬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투타 겸업에 나선 오타나를 둘로 나눠 투수 오타니는 메이저에, 타자 오타니는 마이너에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에인절스와 오타니는 조만간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만약 투수 오타니가 메이저리그 급으로 판단되지만 타자 오타니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타자 쪽을 과감히 포기하는 결단을 말한다. 웅대한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으니 오타니가 조만간에 그런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겠지만 시간이 많지도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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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니의 타격에 대해선 마이너리그에서 다듬어 올라올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있다. /AFPBBNews=뉴스1


일단 에인절스는 오타니의 고전에도 불구, 당분간은 그의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빌리 에플러 단장은 지난 주말 “일본에서 거둔 그의 성적은 우리에게 그를 투타 양쪽으로 기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준다”고 말했다. 마이크 소샤 감독도 “당장 로스터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타니의 재능이 진짜라는 것이다. 시즌이 시작될 때는 그가 (빅리그에서) 던지고 때릴 수 있는 준비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현재 과정에 있다. 뭐가 잘못되면 어디에 문제가 있는 지를 찾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그를 평균자책점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에인절스는 오는 30일(한국시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원정경기로 정규시즌을 시작한다. 과연 오타니가 개막전에 에인절스의 지명타자로 출전한 뒤 이틀 뒤 에인절스의 제3선발로 마운드를 오를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과연 그렇게 될지, 또 그렇다면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일단 현재로서는 그가 성공적인 빅리그 선수로 자리잡는 데는 투타 모두 시간이 필요해 보이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장래를 지금 시범경기 성적만으로 단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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