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미저리', 무대에서 재해석된 광기어린 짝사랑

[리뷰] 연극 '미저리'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3.1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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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저리' / 사진=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미저리'(Misery). 슬픔과 절망을 뜻하는 이 단어는 종종 광기어린 집착의 동의어로 취급된다.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이 1987년 내놓은 동명의 소설이 시작이다. 캐시 베이츠에게 여우주연상을 안긴 1990년 영화 '미저리'가 더 유명하다. '당신의 넘버 원 팬'을 자처하는 한 여인의 무시무시한 사랑과 집착의 드라마는 그토록 강렬했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가 지난 2018년, 연극 '미저리'가 서울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 중이다. 작품 속 시계는 여전히 1987년에 맞춰져 있지만 2018년의 연극으로 다시 태어난 '미저리'는 또 다른 재미와 느낌을 전한다.


베스트셀러 작가 폴 셀던은 어느 한겨울 시골 동네 한적한 호텔에서 신작 집필을 마치고 나서던 중 교통사고를 당한다. 정신을 차린 그가 눈을 뜬 곳은 간호사인 애니의 집 침실. 폴이 연재 중인 인기 소설 '미저리' 시리즈의 광팬인 애니가 눈보라 속에 사고를 당한 그를 구해 내 치료 중인 것이었다.

애니는 눈속에 갇혔다고 둘러대지만 그의 사고를 아무데도 알리지 않는 모습이다. 폴은 충격에 빠지지만 꼼짝없이 애니의 간호를 받으며 연명해야 할 처지다. 그러던 중 새로운 폴이 쓴 '미저리'의 새로운 시리즈가 출간되고, 애정해 마지 않던 주인공 미저리의 죽음을 알게 된 애니는 격분해 폴의 목숨마저 위협한다. 결국 폴은 애니의 요구대로 새로운 '미저리'를 쓰기 시작한다.

고립되다시피 한 애니의 작은 집 방 한 칸을 주무대로 매력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와 미치광이 여성팬이 벌이는 심리극. 무대에서 만나는 '미저리'는 왜 진작 이 작품을 연극으로 보지 못했을까 싶을 만큼 흥미로운 2인극이다. 이야기 자체는 영화 속 줄거리를 거의 그대로 따라가지만 분위기는 딴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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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저리' / 사진=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캐시 베이츠의 섬뜩한 얼굴을 갑자기 클로즈업하는 것만으로도 보는 이의 가슴을 철렁하게 했던 영화 '미저리'가 공포 스릴러에 가까웠다면, 연극 '미저리'는 공포 스릴러에 유머와 드라마가 더해진 독특한 다중장르 심리극 같다. 사랑하는 스타작가를 제 침대에 눕혀 두고 어긋난 팬심을 실현하는 애니와 그녀로부터 도망칠 궁리에 골몰하다, 될대로 되라 포기했다가, 또 순간순간 작가로서의 창작열과 이기심을 드러내기도 하는 폴, 두 남녀의 관계가 보다 풍성하고도 입체적으로 보인다.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짝사랑, 스타와 팬에 관계에 대해서도 새로이 짚어보게 된다.

한정된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 삼분할된 집을 회전하는 것만으로도 긴장감을 주는 애니의 집 세트 활용법은 특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연극 '미저리'는 김상중 김승우 이건명 3명의 폴과 길해연 이지하 고수희 3명의 애니가 돌아가며 이야기를 이끌고, 사건을 수사하러 나선 보안관 버스터 역으로는 고인배가 출연 중이다.

특히 황인뢰 연출자와의 인연으로 처음 연극 무대에 오른 배우 김승우는 이지적이고도 능청맞은 폴 역에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모습으로 첫 신고식을 성공적으로 치른 듯하다. 매력적인 작가 다운 꼼수로 서툰 애니를 설레게 만들다가도 신경질적인 작가의 면모를 드러내는 모습이 그 본연의 캐릭터와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제작진 사이에서 '고저리'라 불린다는 고수희는 종잡을 수 없어 무시무시한 짝사랑 스토커에게 뜻밖에 귀엽고 사랑스러운 면모를 덧입혔다.

연극 '미저리'는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오는 4월 15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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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미저리' / 사진=크리에이티브리더스그룹에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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