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 이만수 "4년째 쓰기만 하지만..지금이 리즈시절"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3.07 18:00 / 조회 : 3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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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색 안 한 검은 머리가 눈길을 끄는 환갑의 이만수 감독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사람에겐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원하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하는 것을 갖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비극적 존재일 수밖에 없는 걸까? 이만수(60) 전 감독이 답한다. “움켜쥐어야 행복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구요. 오히려 손을 펴니 다 빠져나가고 행복이 남더군요.”

프로야구 1호 안타, 1호 홈런의 주인공. 1984년 타격, 홈런, 타점 ‘타자 3관왕’, KBO리그 통산 100호 홈런, 200호 홈런의 주인공. 1983년~1987년 포수부문 5년 연속 골든글러브 수상. 삼성에서 영구결번된 백넘버 22번의 주인. 누구보다 화려했던 이력의 소유자가 무소유를 말한다.

그의 행복론을 더 들어보자. “최고가 되면 행복하고 근심 걱정 없을 줄 알았죠. 근데 막상 돼보니 그 기쁨은 일주일도 안가고 ‘이걸 어떻게 지키지?’ 스트레스만 쌓이는 거예요. IT 강국에 살면서 못하면 엄청나게 욕이나 먹고.. ‘야구로 평생을 살아왔는데 행복한 줄 몰랐구나’ 싶더라구요. 물론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치열하게 살았던 삶을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선수 시절, 지도자 시절, 4년째 재능 기부 하고 있는 요즘을 비교해보면 요즘이 제 리즈시절인 것 같아요. 인생의 빛깔이 나이따라 변하는 것 아니겠어요? 지금은 나한테 있는 시간, 몸, 재산 같은 걸 퍼주는 게 참 행복이구나 싶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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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 이만수 감독.

그를 마지막 본 게 1990년. 스포츠지에서 삼성라이온즈를 담당할 때였으니 27~28년 만의 만남였지만 그는 하나도 변한 게 없는 채였다. “염색하셨어요?” “아닙니다.” “유전인가요?” “아버님도 세셨고 한 살 아래 동생도 하얗습니다.” “근데 왜 검으신 거죠?” “허허허, 글쎄요. 그냥 행복하게 살아서 그런가?”

그를 행복하게 만든 재능기부인생은 엉뚱하게 라오스에서 시작된다. “2013년 SK와이번즈 감독 2년 차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물어물어 전화를 걸어온 이는 전혀 알지 못하는 라오스 교민 제인내씨였다. 라오스 이민 2년 차였던 제씨는 라오스에 야구가 없다며 시간 되면 재능 기부하러 와주십사 청했다고 한다.

이 감독으로선 일종의 황당함도 있었으리라. “건성으로 ‘알겠습니다 시간 되면 한번 가죠’ 했습니다. 프로야구감독이 시간이 어딨겠어요. 제 딴엔 거절의 취지로 말한 건데 이분이 순수하게 말 그대로 알아들으신 거예요. 그 이후로 계속 연락을 해오셨죠. 일주일에 한 두 번꼴로. 그 성의를 마냥 외면할 수 없어서 라오스 야구에 후원 좀 해야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2014년 4월 1000만원 어치 야구용품을 사서 보내며 일단 이걸로 야구 먼저 하라고 전하고 다시 팀 매니저를 통해 선수단의 낡은 유니폼을 다 수거해서 사람 키 만한 박스 5개를 보내주었다. 제씨가 보내준 사진 속 라오스 선수들은 그래서 모두 SK 소속이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라오스에서의 재능기부를 심각하게 고려한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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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 J브라더스 야구단. SK 와이번스 유니폼들을 입고있다./사진=SK와이번스 제공

2014 시즌 종료 후 구단은 재계약을 안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이 감독은 그동안 고생한 동갑 아내 이신화씨와의 동유럽여행을 예약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깜짝 발표를 하려 했다. 하지만 아내가 선수를 쳤다고. “당신 왜 라오스 재능기부 약속해놓고 안가요? 리더였고 신앙인인 당신이 약속을 안지키면 누가 지키겠어요?” 그렇게 라오스 재능기부가 그의 인생에 자리 잡게 됐다.

그를 라오스로 이끈 제인내씨는 카페를 운영하는 평범한 사람임에도 이만수 감독과 함께 라오스 최초의 야구팀 라오J브라더스를 만들었다. 이어 전재산을 쏟아부어 야구센터를 지어놓고 라오J브라더스 선수 16명을 먹이고 재우고 학교 보내고 운동시키며 돌보고 있다고. “카페가 크고 돈을 잘 버나 보죠?” “아녜요. 그냥 펑범한 규모예요. 원래 돈 잘 버는 사람들은 그런 자선 잘 못해요” 한다.

“그래서 동유럽여행은 다녀오셨어요?” “어데요!”

라오스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그의 스케줄은 빡빡하다. 이신화씨의 표현을 빌자면 “야구 감독 땐 일 년의 절반을 안 들어오더니 이제는 일 년의 2/3를 밖에서 보낸다”고. 확실히 동유럽 여행갈 시간은 없었겠다 싶다.

그의 차는 BMW 5시리즈다. 이 차는 재계약이 불발된 20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내가 선물한 차다. 당시 이 감독은 “우리 이제 절약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과하다”고 하자 이신화씨는 “당신 그동안 고생했고 충분히 탈 만 하다. 기죽지 말고 이 차 타고 재능기부 많이 다니라”고 격려했단다. 그 차가 벌써 주행거리 12만km를 넘어섰다. 지난해부터는 야간운전이 피곤해 주로 기차를 이용한다니 근 2년 동안 10만km 가까이를 주행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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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강산’이란 것이 그냥 노랫말인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태안이다, 문경이다, 정읍이다, 청송이다, 구석 구석 다녀보니 아! 정말 아름다운 나라구나 싶더라구요. 운전하거나 기차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며 사색하다 보면 참 벅찬 느낌이 많이 들어요. 지난번에 청송 갈 때 의성을 지나치면서 ‘아 여기가 컬링 의성, 마늘 의성이구나’ 새롭게 느껴보기도 했구요.” 그가 행복한 또 다른 이유다.

뜬금없이 그의 살림살이가 궁금해진다. “4년째 쓰기만 하셨으니 다시 벌어야 되는 것 아녜요?” “안 그래도 지난해 3월에 아내에게 물어봤어요. 이제껏 돈 관리를 해본 적 없어 재정상황에 대해선 깜깜하거든요. 아내가 '정말 숟가락 못들게 생기면 얘기할테니 그때까진 마음껏 재능기부 하고 살라'고 하더라구요. 아직 말 없는 걸 보니 때꺼리는 아직 남은 모양입니다” 한다.

하긴 그는 중간중간 광고도 했다. 문제라면 모델료조차 다 기부하고 만다는 점이다. 그는 2016년 8월 대구참조은병원 광고출연료 2억원을 국내외 유소년 야구 활동을 위해 전액 기부했다.

“야구를 하면서 참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이제 후배들에게 그 사랑을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기부했어요. 그리고 아내에게 ‘나는 기부하고 싶은데 당신 생각은 어때?’하고 물으니 하루만 시간을 달라더라구요. 그리고 잤는데 새벽에 막 깨우더니 다 기부하는 게 좋겠다고 하는 거예요. 비몽사몽간이라 ‘다 기부했는데’ 이실직고 해버렸다가 많이 혼났죠”라며 허허 웃고는 “그런 결정 내려주리라 믿고는 있었지만 집사람도 살림하는 사람인데 왜 흔들리지 않았겠어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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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전 감독과 태안군 리틀 야구단 선수들 /사진=헐크파운데이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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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왼쪽)과 방정우 태안군 리틀야구단 감독 /사진=헐크파운데이션 제공

그는 2017년 피칭머신 제작업체 ㈜팡팡과 1억원 홍보모델계약을 했고 그 비용 대신 1억 원 상당의 피칭머신을 매월 1대씩 전국 열두군데 아마추어 팀에 기부했다. 금년에도 다시 재계약하면서 아예 ‘유소년야구 꿈나무 피칭머신 후원’이란 프로젝트로 공식화해서 1월 익산, 2월 태안에 피칭머신을 후원했다. 아내 이신화씨는 이 두 번의 계약을 언론을 통해 접하게 됐다. “왜 미리 얘기해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만수 감독의 대꾸는 “공연히 마음 흔들릴까봐”였다.

“헐크 파운데이션은 이제 자리 잡았죠?” 그가 만든 비영리 사단법인이 궁금해졌다. 조직도상으로는 4개 본부 13개 팀으로 꾸려진 대규모 법인으로 보인다. “예, 뭐 그렇죠” “직원은 몇 분이나?” “직원요? 저랑 아내, 그리고 홍보팀장 한 명 있어요.” 한다. 뭐지 이 초라함은? “사무실은요?” “삼정호텔앞에 지인인 후원자 어머니 건물에 마련은 했는데 안 쓰고 집사람이 집에서 후원금 관리하고 있어요. 인건비 주다 망하니 당신이 좀 애써라 해서 집사람이 2년째 고생하고 있죠.”

인터뷰자리에 이 감독 혼자 덜렁 기다리고 있는 모양새가 어쩐지 어색했는데 그는 지방을 가던 어디를 가던 늘 혼자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애로사항이 만만치 않겠다 싶다. 아니나다를까 “집사람이 컴퓨터를 잘 할 줄 몰라요. 가끔 기부영수증 끊어달라는 요청이 오곤 하는데 떠듬떠듬 늦어지니 ‘뭐하는거냐’며 항의도 많이 듣죠. 한번은 제가 아는 지인도 직원인 줄 알고 막 항의를 했던 모양인데 집사람이 결국 '제가 이만수씨 집사람인데 컴퓨터를 잘못해 그렇습니다'라고 말하고 말았죠. 그분 아직도 저를 못보고 있습니다. 허허.”

홍보팀장도 궁금하다. “하루는 부부가 찾아왔어요. 자원봉사 하겠다고. 두 분 다 방송국 프리랜서 였었는데 돈 못준다 해도 상관없다며 일을 도와주시더라구요. 이제는 프리랜서 그만두고 안정적인 회사생활을 하고 있는 김성욱씨가 저희 홍보팀장입니다. 본인 회사일하면서 저희 법인일까지 해주시니 너무 고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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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이만수 포수상을 수상한 세광고 포수 김형준-이만수 이사장-경남고 내야수 한동희(왼쪽부터) / 사진=김우종 기자

그들 3인이 꾸려가는 헐크파운데이션은 1만원, 2만원 독지가들의 기부금을 모아 전국 초중고대학 엘리트 야구팀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매년 1월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한국-라오스 국제 야구대회를 4회째 열고 있고 2013년 창단된 라오스 최초의 야구단 라오J브라더스를 후원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이만수 포수상도 제정, 뛰어난 활약과 바른 인성을 선보인 선수 2명을 선정해 장학금과 야구 장비를 시상하고 있다. 지금도 이런 데 조직도처럼 4개 본부 13개 팀이 갖춰진 헐크파운데이션은 과연 어떤 사업들을 벌일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그는 자신의 강연을 듣거나 지도를 받았던 학생들로부터 받은 편지를 읽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저는 제가 행복하자고 하는 재능기부인데, 저를 본 삼아 자신들도 나중에 사회를 위해 재능기부 하겠다는 편지들을 받으면 참 뿌듯합니다. 요즘 프로후배들도 큰 계약 하고 나면 기부들 많이 하던데 얼마나 보기 좋습니까. 재능이든 부든 나누는 사회 분위기가 반갑습니다”

환갑의 이만수는 행복한 사람이다. 지난 1월 라오스 대통령 표창을 받아서가 아니다. 내게서 덜어내 남을 채워주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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