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트' 최순실이 왜 거기에서 나와

[리뷰] 게이트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2.20 11:54 / 조회 :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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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경찰이 자살을 한다. 청와대에선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이라고 발표한다. 머리에 선글래스를 낀 중년여성이 의상실에서 갑질을 한다. 누가 봐도 그녀다. 그녀는 회장님 석방하려면 열장은 써야 하지 않겠냐며 어디론가 전화를 한다. 그러면서 누가 보면 내가 을인 줄 알겠네라고 한다. 청와대 대통령 집무실을 닮은 비밀의 방에는 시바스 리갈이 놓여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신재호 감독의 '게이트' 속 묘사 장면이다. 노골적으로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패러디하고 차용한다. 그 차용이 영화와 적합 했냐면, 단연코 아니올씨다라고 할만 하다.

고위 인사의 비리를 수사하던 규철 검사(임창정). 비밀이 담긴 USB를 건네받는다. 그렇지만 곧장 교통사고를 당하고 기억을 잃는다. USB를 건넨 제보자는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를 받다가 자살한다. 규철 검사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네 바보의 삶을 산다.

머리에 선글래스를 얹은 중년여성 의상실에서 일하던 소은(정려원). "너 나보고 웃었지"라는 그 여성의 갑질에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는다. 같이 사는 동생은 다단계 사기를 당한 것도 모자라 사채업자에게 돈까지 끌어썼다. 한밤중에 들이닥친 사채업자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소은 옆집에 사는 규철은 덩달아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큰소리친다.

설상가상. 금고털이로 복역했던 소은의 아빠(이경영)와 그런 아빠(이문식)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감옥살이를 피했던 소은의 고모부가 찾아온다. 소은에게 쫓겨난 두 사람은 규철 집에 얹혀산다. 소은에게 돈을 마련해주겠다며 다시 한탕을 노리는 두 사람.


머리에 선글래스 얹은 중년여성과 깊은 관계인 사채업자 대표(정상훈)는 소은에게 돈을 갚는 대신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한다. 소은이 거절하자 사채업자들은 그녀의 전세금까지 빼앗는다. 절망한 소은은 아빠에게 이왕 금고털이를 할거면 그 사채업자를 털자고 제안한다. 과연 이들은 무사히 금고털이를 할 수 있을까.

'게이트'는 전형적인 케이퍼무비다. 각기 장기를 가진 도둑들이 힘을 합쳐 한탕을 벌인다는 내용이다. 신동엽에서 개명한 신재호 감독은 이 케이퍼무비에 현실적인 상상력을 더했다. 학벌도 경력도 부족해 취업조차 힘든 흙수저는 갑질 피해에 눈물을 삼킨다. 아버지 세대는 제대로 된 일자리 찾기도 힘들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부패한 권력자가 챙겨놓은 비자금을 턴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고명처럼 얹었다.

차라리 B급 케이퍼무비로 밀고 나갔다면 대리만족이 주는 쾌감이라도 있을 터. 고명 같은 국정농단 사건은 헛웃음만 자아낸다. 풍자의 쾌감을 의도했는지 모르지만,영화와 따로 노는 국정농단 묘사는 나쁜 권력자를 상징하는 것 외에는 영화 전개와 전혀 무관하다.

국정농단 사건 조사하다가 기억을 잃은 검사는 그냥 기억을 잃은 동네바보요, 국정농단 사건과 금고털이는 별개다. 그마저 영화 속에서 국정농단 사건은 해결조차 되지 않는다.

신재호 감독은 "당시 영화가 뉴스보다 시시했다"면서 국정농단 사건을 준비하던 시나리오에 덧붙인 이유를 밝혔다. 제작에도 참여한 임창정은 "처음 시나리오 봤을 때 (국정농단 사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 너무 많아서 자칫 신재호 감독이 다시 영화 못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깔끔하게 표현되도록 상의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담아 낼 요량이었으면 굳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녹여낼 이유는 없었을 것 같다. 죽은 권력을 풍자하는데 영화와도 따로 논다. 그저 영화팔이에 최순실 사건을 이용한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하여 '게이트'가 표방하려 했던 청년 세대와 아버지 세대의 힘든 현실, 그리고 화해 같은 주제는 사뭇 공허해졌다.

'게이트'에서 임창정 코미디는 덧없다. 페이소스가 느껴졌던 과거의 임창정 코미디가 이제는 사라진 듯해 안타깝다. 처음 악역에 도전한 정상훈은 이 배우의 재능을 더 잘 살릴 수 있는 다음 작품을 만났으면 한다. 6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한 정려원은 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길 바란다. 등장하는 작품마다 죽곤 했던 이경영이 이번에는 어떨지 확인하라고 '게이트'를 권하고 싶지는 않다.

2월2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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