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MLB산책] 호스머에 '뜬금 투자' SD..'동네 북'은 이제 그만?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입력 : 2018.02.20 09:01 / 조회 :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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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데뷔 첫 실버슬러거상을 수상한 에릭 호스머의 캔자스시티시절 모습. /AFPBBNews=뉴스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이번 오프시즌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서 최대 계약을 터뜨렸다. 1루수 에릭 호스머와 8년간 1억4천400만 달러에 계약하면서 잠잠하던 FA시장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켰다.


호스머의 계약은 총 규모가 8년간 1억4,400만달러지만 5년이 지난 뒤 선수의 옵트아웃 조항이 있어 5년 계약으로 단축될 여지를 남겨놓고 있다. 특이한 것은 보통 장기계약과 달리 계약 상반기에 액수가 상당히 몰려 있다는 점이다. 첫 5년간은 연봉 2,000만달러씩이고 5년이 지난 후 옵트아웃을 선택하지 않을 경우 마지막 3년의 연봉은 1,300만달러씩으로 떨어진다. 계약금 500만달러를 합치면 첫 5년간 1억500만달러를 받고, 나머지 3년간 3,900만달러를 받는 구조다. 샌디에이고 구단 역사상 최고액 계약이다.

이 계약이 발표되자 당장 나온 첫 반응은 “샌디에이고가 왜…”였다. 샌디에이고는 전형적인 스몰마켓 팀으로 지난해 개막당시 팀 연봉 합계가 3,450만달러로 메이저리그 전체 최하위였던 팀이다. 호스머와 계약하기 전까지 이번 시즌 개막기준 팀 페이롤은 7,000만달러 내외로 예상됐지만 이중 2,000만 달러는 이미 팀을 떠난 선수들에게 가는 돈이었다. 그러니 결국 올해 팀에서 뛰는 선수들의 연봉 총액은 5,000만달러라는 이야기인데 이젠 호스머 한 명이 나머지 선수들 연봉 합계의 절반에 육박하는 돈을 받게 된 것이다. 대형 FA계약이 거의 없었던 이번 오프시즌에 가장 큰 돈을 쓴 팀이 샌디에이고가 될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한 계약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호스머를 붙잡았다고 샌디에이고의 전력이 급상승하거나 갑자기 플레이오프 팀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샌디에이고는 11년째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고 지난 2010년 이후엔 한 번도 승률 5할을 넘긴 적이 없는 팀으로 지난해는 71승(91패)로 NL 서부지구에서 LA 다저스에 무려 33경기 뒤진 4위에 그친 팀이다. 호스머가 올해 커리어 최고의 성적을 올려준다고 해도 다른 전력 보강이 뒤따르지 않는 한 승률 5할선 위로 올라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의 피코타 시스템 프로젝션에 따르면 올해 샌디에이고의 예상 승수는 호스머와 계약 전에 73승이었는데 호스머가 합류한 효과는 여기에 3승을 더하기도 쉽지 않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더구나 NL 서부지구에 만년 우승후보 다저스와 지난해 와일드카드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콜로라도 로키스, 그리고 이번 오프시즌에 전력을 상당히 보강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샌디에이고가 호스머를 데리고도 승률 5할을 넘어서기는커녕 지구 꼴찌로 떨어질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샌디에이고는 왜 이런 이해하기 힘든 계약을 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달리 구단 내부적으로는 구단의 상태가 플레이오프에 도전할 레벨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당장 올해는 아니더라도 3~4년 후라면 도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그래도 현 시점에서 호스머에게 선뜻 거액계약을 내준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혹시 이번에도 스콧 보라스의 세일즈 전략에 말려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ESPN의 칼럼니스트 키스 로는 “호스머는 샌디에이고의 현재는 물론 장기적인 필요와도 전혀 맞지 않는 선수일 뿐 아니라 그가 1루로 오게 되면서 팀내 최고의 선수 중 하나(윌 마이어스)가 수비에 문제가 있는 포지션(외야)으로 이동해야 한다”면서 “이번 오프 시즌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계약”이라고 비판했다. 또 팬그래프닷컴의 제프 설리반은 “샌디에이고 구단이 우리 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정상에 가깝게 와 있지 않다면 말이 되지 않는 계약”이라면서 “호스머를 영입함으로써 샌디에이고는 그들 자신에게 베팅을 했다. 자신들이 (정상에) 상당히 가까이 왔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이젠 그것을 입증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이번 계약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도 없는 것은 아니다. ESPN 칼럼니스트 브래드포드 둘리틀은 “샌디에이고와 호스머는 언뜻 보기보다 훨씬 더 궁합이 잘 맞는다”면서 “수년 뒤에 이번 토요일 밤(호스머의 계약시간)은 샌디에이고가 팀 재건에서 코너를 돌기 시작한 순간으로 보게 될 것”이라고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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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선수들./AFPBBNews=뉴스1





지난 2014년 8월 샌디에이고 단장으로 취임한 A.J. 프렐러 단장은 그해 블락버스터 트레이드들을 잇달아 터뜨리며 맷 켐프, 저스틴 업튼, 크레이그 킴브럴, 윌 마이어스를 영입하고 FA 선발투수 제임스 쉴즈와 계약하며 야심찬 승부수를 던진 바 있다. 하지만 샌디에이고는 2015년 74승88패에 그치며 비참한 실패를 맛봤고 프렐러 단장은 곧바로 베테랑 선수들을 대거 트레이드하고 유망주들을 확보하는 쪽으로 진로를 급선회했다.

지난 2년간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샌디에이고의 팜 시스템은 다시 리그 정상급으로 분류될 만큼 상당히 회복됐다. 그리고 이번 계약은 샌디에이고가 상당히 회복된 팜 시스템을 보면서 분명히 반등의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고 믿고 있음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호스머의 합류가 당장 샌디에이고의 성적에 그리 큰 변화를 불러오기 힘들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프렐러 단장과 샌디에이고 프론트오피스도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호스머를 올해 붙잡은 것은 3~5년 후 구단의 미래에 상당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호스머는 올해 만 28세의 젊은 선수다. 다른 대형 FA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지만 이미 4차례 골드글러브를 받았고 두 차례나 월드시리즈에 나가 한 번 우승한 경험도 갖고 있다. 2015년 캔자스시티 로열스가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할 때 핵심적 역할을 하면서 리더십을 키워 샌디에이고처럼 어린 선수들이 주축이 된 팀에서 장기적으로 구심점 역할을 할 만한 능력을 갖춘 선수다.

무엇보다도 샌디에이고는 당장 우승에 도전할 전력은 아니더라도 더 이상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같은 처지는 면해야겠다는 생각이 이번 계약의 배경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저스와 애리조나, 콜로라도, 샌프란시스코 등이 우승을 다툴 때 동네북 신세로 얻어터지기만 하는 수모를 더 이상 그냥 앉아서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오기다.

NFL팀 차저스가 LA로 본거지를 옮겨가면서 샌디에이고 지역은 북미 4대 프로스포츠리그 가운데 유일하게 파드리스 한 팀만 남은 상황이다. 그 팀마저 동네북 신세가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지역사회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연 호스머 계약이 샌디에이고에게 터닝포인트 역할을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최소한 팀이 동네북 신세로 전락하는 것을 그냥 두고 볼 수는 없다는 자세와 희망이 밝지 않아도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은 전략적 ‘탱킹’까지 등장하고 있는 요즘에 신선하게 느껴진다.

지난 2011년 호스머가 빅리그에 데뷔했을 때 소속팀 캔자스시티는 7년 연속 루징 시즌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4년차와 5년차 시즌에 캔자스시티는 월드시리즈에 진출, 2015년 정상에 올랐다. 호스머가 그런 시나리오를 재현해 낼 수 있다면 샌디에이고로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것은 장래의 일이고 당장은 조금이라도 ‘덜 창피한’ 결과만 만들어낼 수 있어도 이 계약의 가치는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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