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어머니의 눈으로 본 퀴어, 애틋하고 담담한 위로

[리뷰] 영화 '환절기'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2.20 06:39 / 조회 :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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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환절기' 포스터


'환절기'(감독 이동은·제작 명필름랩), 계절이 바뀌는 시간을 제목으로 삼은 이 퀴어영화는 아들과 아들의 남자친구 그리고 어머니, 저마다의 아픔과 회한을 품고 사는 인물들을 제목처럼 담담히 담아낸다. 그들 모두에게 닥쳐 온 이 심란하고 스산한 계절 역시 그저 지나가는 것이라고,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라고 위로하듯이.

주인공 미경(배종옥 분)은 사업차 필리핀에서 돌아오지 않는 남편과 떨어져 장성한 외아들 수현(지윤호 분)과 둘이 산다. 아들 수현이 친구 용준(이원근 분)과 가까이 지내며 밝아지고, 용준의 아픈 가족사를 아는 미경도 용준과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날 수현이 용준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 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진다. 혼자 멀쩡히 살아남은 용준을 허망하게 마주하던 미경은 뒤늦게 아들과 용준이 친구 이상의 관계였음을 눈치챈다. 미경은 용준과 연락을 끊은 채 수현의 병원을 옮겨버린다. 갈 곳 없는 용준은 이들의 행방을 찾아 헤맨다.

아들과 아들의 남자친구, 그리고 어머니. '환절기'는 이 미묘한 삼각관계를 담는다. 그 중심엔 중년의 어머니 미경이 있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아니라 이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환절기'를 독특한 퀴어영화로 만든다.

영화의 태도도 고즈넉한 한 지방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원숙한 여인을 닮았다. 차고 뜨거운 계절을 수없이 지나다보면 그것을 맞이하는 마음도 담담해지는 법이다. 남편이 떠나고 의지하던 아들이 생사의 기로에 놓이고 정을 줬던 아들 친구마저도 전처럼 만날 수 없게 된 그녀는 마음을 준 만큼 아프다는 걸 이미 안다. 마음을 거두고 목구멍까지 차올라 온 감정을 그저 몇 마디 짜증과 탄식으로 삼킬 뿐이다. 하지만 아픈 시간이 흐르면 다른 계절이 온다. 입을 꾹 닫고 맴도는 상처투성이 용준을 끝내 받아들이는 것도 결국 그녀-어머니다.

몸도 마음도 지쳐 갈 곳도, 화낼 곳도 없어진 미경의 미세한 반응이 절절한 드라마로 다가오는 데는 오랜만에 스크린으로 만나는 배종옥의 존재가 큰 몫을 한다. 내리 깐 시선, 꼭 다문 입술, 잠깐의 몸짓에 차곡차곡 쌓인 말 못할 마음을 적확히 담아내는 배종옥은 미경 역에 더할 나위 없는 캐스팅이다. 절제된 화면에 미묘한 감정을 턱 얹어내는 배우도, 그런 배우가 주축이 돼 끌어가는 이야기도 반갑다.

뽀얀 얼굴로 외로움과 피로에 절어버린 청년 용준을 연기한 이원근 또한 전에 없던 모습으로 시선을 붙든다. 그 대척점이나 다름없는 수현 역의 지윤호도 제 몫을 해낸다.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돼 KNN 관객상을 수상했던 '환절기'는 당시보다 15분을 덜어내고 맹렬했던 추위가 어느덧 수그러드는 계절에 관객과 만난다. 말끔한 편집 덕에 군더더기 없는 이야기, 단정하지만 드라마틱한 감정선이 더 살아난 느낌이다.

2월 22일 개봉. 러닝타임 101분.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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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뉴스 영화대중문화 유닛 김현록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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