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성범죄 '연극계 대부'의 애매한 사과

[기자수첩]

김현록 기자 / 입력 : 2018.02.19 12:03 / 조회 : 6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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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기범 기자


한국 연극계의 대표 연출가로 꼽혀 온 이윤택(67)이 성범죄 의혹에 연루돼 19일 기자회견에 나섰다. 지난 14일 연극 연출가인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SNS를 통해 10년 전 이윤택 연출이 자신을 방으로 불러 마사지를 시키며 성추행해 이후 극단을 떠났다고 폭로한 지 5일 만이다. 그 사이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추가로 등장하는 등 파문은 더 커진 상태다.

이윤택 연출은 19일 오전 서울 명륜동 30스튜디오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갖고 성추문과 관련해 사과했다. 앞서 연희단거리패를 통해 사과하며 연희단거리패, 밀양연극촌, 30스튜디오 예술감독직에서 모두 물러난다고 밝혔지만 '간접사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어진 터다. 논란 이후 그가 처음 모습을 드러내는 자리라 소극장에 100명 넘는 취재진과 연극 관계자 등이 대거 몰려 북새통을 이룰 만큼 기자회견은 큰 관심을 받았다.

침통한 표정으로 나타난 이윤택 연출은 "법적 책임을 포함해 어떤 벌도 받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부끄럽고 참담하다"며 피해 당사자들에게 사과하고 단원들에게도 사과했다. "저 때문에 연극계 자체가 매도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그의 사과는 '성추행'에 국한된 것이었다. 성폭행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첫 질문에 "인정할 수 없습니다"라는 답이 나온 순간, 곳곳에서 욕설과 한숨이 동시에 터져나왔다.

이윤택 연출은 피해를 주장하는 당사자와 성관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당사자에게 사과하겠다"면서도 "물리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을 써서 성폭행한 것은 아니다"며 성폭행 혐의 자체를 거듭 부인했다. '성폭행을 부인하면서 사과를 왜 하느냐,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한 개인을 뛰어넘어서 연극계에 대한 사과, 관객에 대한 사과"라는 답변을 내놨다.

또 그는 "(극단) 안에 있는 분들에게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그러면서도 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한 악순환이 계속됐다"고 극단과 극단 출신에게 사과하며 모든 것은 자신의 책임이라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이 연출이 범했던 성범죄들을 극단 관계자들이 알고 있었으면서도 법적 절차를 밟거나 피해자 구제 등에는 나서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미투운동'에 나선 피해자들은 이윤택 연출과 극단이 '공범' 관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윤택 연출은 그러면서 성폭행 혐의에 대해서는 "법적 절차에 따라 가려지길 바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반적인 성폭행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최근 디시인사이드 게시판을 통해 이윤택 연출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연희단거리패 출신 배우 A씨의 경우 2001년과 2002년 두 차례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기에 공소시효가 이미 끝난 셈이 된다.

이윤택 연출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다른 절차를 밟아서라도 사과하겠다"고 말했지만 그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된 사과를 했는지, 앞으로 제대로 된 사과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그는 질문과 추궁이 이어지자 '이만 기자회견을 마치겠다'며 준비된 차량을 타고 바로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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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택 기자회견장 모습 / 사진=이기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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