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건영의 올어라운드 스포츠] '외인 신장 제한?' 탁상공론의 최고수 'KBL'

손건영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 / 입력 : 2018.02.14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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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KBL 드래프트에 지명됐던 선수들 /사진=뉴스1(KBL 제공)


스포츠의 기본 정신은 공정함(fairness)에서 출발한다. 정정당당하게 기량을 겨뤄 더 나은 실력을 보인 개인이나 팀이 승리를 거둘 때 팬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게 되는 것이다.

수 년 전 LPGA에서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한국 또는 한국계 선수들이 거의 절반 정도 우승을 휩쓸자 LPGA 사무국은 이를 제재할 묘안을 냈다. 우승을 해도 영어로 인터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수들이 LPGA에서 뛰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황당한 내용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골프를 잘 치는 선수들의 경연장에서 영어 테스트를 통해 선수들을 솎아내겠다는 것이었다. LPGA 투어가 한국 선수들의 독무대가 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것이 그들의 속내였다. 물론 이 같은 시도는 해프닝으로 끝났다. 공정하지 않은 처사이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에는 중남미권 선수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NBA도 유럽 출신의 슈퍼스타들을 신인 드래프트 최상위권에서 뽑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 선수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로스터에서 외국인 선수들의 비중을 제한하려는 시도는 전혀 볼 수 없다.

이제 시선을 한국으로 돌려보자. 야구를 비롯해 축구, 농구, 배구 등 주요 종목에서 외국인 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아쉽지만 한국의 리그가 전 세계 최고가 아니기 때문에 각 종목마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제한을 두고 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겠지만 특히 최근 KBL의 움직임을 보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게 만든다.


그 어느 종목보다 농구는 신장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현재 193센티미터를 기준으로 두 명의 외국인 선수를 장신과 단신으로 나누어 뽑던 것을 내년 시즌부터 새롭게 바꾸겠다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에 따르면 2미터가 넘는 선수는 KBL에서 사라지게 된다. 또 단신 선수는 186센티미터 이하로 제한한다고 한다. 만약 이대로 실행된다면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악법이 될 것이다. 올림픽 출전권을 딴 지가 언제인지 까마득하기만 한 나라에서 국제 경기에 대한 경쟁력을 스스로 포기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허재 감독이 이끄는 국가대표팀에서 최준용은 2미터의 장신임에도 포인트가드를 종종 맡고 있다. 국내 최장신급인 김종규와 이종현은 국가 대항전에서 늘 자신보다 머리 하나 정도 더 큰 선수들을 상대하느라 쩔쩔매기 일쑤다. 그런데 국내 리그에서 186센티미터 이하의 가드와 2미터가 되지 않는 골 밑 자원들만을 상대한다면 과연 한국 농구 발전에 도움이 될까. 이건 공정하지 않다.

올 시즌 KBL 최고의 히트 상품은 DB의 디온테 버튼일 것이다. 만약 이 같은 말도 되지 않는 룰이 개정된다면 버튼이 한국 무대에서 뛰는 모습을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어떻게든 2미터에 육박하는 포스트 자원을 뽑아야 하기 때문에 193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는 버튼을 지명하는 것을 쉽게 결정지을 수 없을 것이다. NBA 선수 못지 않은 호쾌한 드리블에 유로 스텝을 장착해 터뜨리는 버튼의 폭발적인 덩크가 사라지게 된다면 KBL 흥행에 더욱 찬물을 끼얹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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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튼 /사진=뉴스1


여기서 상상하기조차 싫지만 가상 뉴스를 생각해보자. 2년 연속 50개 이상의 홈런을 때렸지만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하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온 박병호와 잠실 구장에서 28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렸으나 정작 빅리그 2년 동안 단 7개의 홈런을 때리는 데 그친 김현수의 경우를 보고 KBO가 특단의 조치를 내린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선수 모두 150km를 훨씬 상회하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의 강속구에 잘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KBO 타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평균 구속 145km 이하를 던지는 외국인 투수만을 영입할 수 있다고 룰을 바꾼다면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까.

배구도 마찬가지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한 경기에서 25% 이하로만 공격을 해야 하고,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 몰수패를 당한다고 하면 과연 어느 팬이 배구 코트를 찾을 것인가.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 같은 가상 뉴스는 공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다.

현재 KBL은 정규시즌 마지막 순위 다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상 1위부터 6위까지 진출하는 플레이오프 구도는 거의 완성된 단계다. 어떻게 하면 정규시즌 최종일까지 팬들의 이목을 더 끌 수 있을 지 고민해도 시원치 않은 판국에 2미터가 넘는 외국인 센터와 186센티미터를 넘는 외국인 가드들은 내년 시즌 어느 나라에서 뛰어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말도 되지 않는 촌극이 펼쳐지고 있다. 외국인 선수 선발을 놓고 리그도 살리면서 국제 대회 경쟁력도 키울 수 있는 KBL의 묘수를 기대하는 것은 정말 무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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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L 김영기 총재 /사진=KBL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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