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선무비] '블랙팬서' 12세용 흑인 슈퍼히어로영화의 한계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2.17 09:00 / 조회 : 5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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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 슈퍼히어로 영화 '블랙팬서'가 지난 14일 개봉했습니다. 이틀만에 100만명을 동원할 만큼 설 연휴 극장가를 강타했습니다.

알려졌다시피 '블랙팬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에선 '캡틴아메리카: 시빌워'에서 처음 등장했죠. 아프리카 신비의 왕국 와칸다의 왕이자 수호자입니다. 블랙팬서를 '시빌워'에서 첫 등장시키고, 단독영화인 '블랙팬서'를 내놓고, 다시 '어벤져스: 인티니티 워'에 등장시키니, 마블의 전략은 신묘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영화 '블랙팬서'는 와칸다의 왕위를 물려받은 티찰라(채드윅 보스만)가 와칸다에만 존재하는 신비의 금속 비브라늄과 왕좌를 노리는 적과의 싸움을 그립니다. 한국팬들에겐 부산에서 일부 장면을 찍어 더욱 관심이 높습니다.

믿고 보는 마블영화라는 말이 있는 만큼, '블랙팬서'도 균질한 재미를 보장합니다. 액션도 흥미롭고, 형형색색 아프리카 의상과 음악, 춤도 볼거리입니다. 권선징악에 정치적인 올바름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12세 이상 관람가 영화 답다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마블을 인수한 디즈니 영화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요. 영화 '블랙팬서'는 흥미롭지만, 코믹스팬들로선 아쉬울 것도 같습니다. 흑인 영웅이란 정체성이 온 가족이 즐기는 영화라는 틀에 갇혀 버린 탓인지, 많이 희석됐기 때문입니다.

블랙팬서는 마블 역사상 첫 흑인 슈퍼히어로입니다. 1966년 '판타스틱4'에 등장했죠. 마블의 대표 흑인 슈퍼히어로들이 60~70년대에 등장했다는 건 의미심장합니다. 나중에 블랙팬서와 결혼하는 스톰이 '엑스맨'에 등장한 게 1975년이고, 루크 케이지가 1972년에 나왔습니다. 흑인 인권운동이 불붙기 시작했던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 것입니다.

블랙팬서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입니다. 블랙팬서 자체가 과격한 흑인 인권운동을 이끈 말콤엑스의 흑표당과 인연이 깊습니다. 블랙팬서는 아프리카 신비의 왕국 와칸다를 노리는 서구 제국주의자들과 싸움이 주된 테마입니다. 에피소드 중에는 2차 대전 때 비브라늄을 노린 하이드라와 싸우는 일화도 있습니다. 왕좌를 노리는 숙적들과 싸움은, 흑인 인권운동사를 연상시킵니다. 고통받는 흑인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의견과 와칸다의 비밀을 지켜기 위해 명예로운 고립을 택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합니다. '블랙팬서' 코믹스에는 흑인 작가들이 바톤을 이어받아 그런 흑인의 정체성에 대한 생각들이 깊게 반영돼 있습니다. 미국 학교 중에는 '블랙팬서' 코믹스를 흑인 인권과 관련한 교과목으로 택한 곳도 있을 정도입니다. 흑인에, 흑인을 위한, 흑인에 의한 영웅이란 게 블랙팬서의 정체성이란 뜻입니다.

영화 '블랙팬서'도 이런 정통을 이어받으려 한 것 같습니다. 라이언 쿠글러 감독을 비롯해 채드윅 보스만 등 주연배우 대부분이 흑인입니다. 억압 받는 흑인을 위해 와칸다의 무기로 서구와 싸워야 한다는 주장과 와칸다를 지켜야 한다는 주장, 그리고 와칸다의 자원과 부를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주장들이 대립합니다. 딱 12세용으로 영화에 담았습니다. 자칫 심각할 수 있는 이야기, 혹시라도 백인 관객들이 꺼릴 만한 이야기들은, 술에 물 탄 듯 희석됐습니다. 그 덕에 모두에게 사랑받을 만한 흑인 영웅 영화가 완성됐습니다. 그 탓에 블랙팬서만의 정체성은 엷어졌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여성 전사들의 활약을 많이 넣었다는 게 눈에 띄는 정도입니다.

그렇게 '블랙팬서'는 검은색 '라이언킹'처럼 만들어졌습니다. 아프리카의 신비함을 담고, 왕좌를 노린 음모를 그립니다. 주인공보다 여주인공이 더 당차다는 것도 비슷합니다.

아이러니한 건 이렇게 흑인 슈퍼히어로라는 정체성을 엷게 만들었는데도, '블랙팬서'에 대한 백인우월주의자들의 공격이 만만찮다는 점입니다. 로튼토마토를 비롯한 미국의 영화 사이트들에 '블랙팬서'에 대한 악플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대부분 흑인 혐오와 백인 우월주의 시각이 깔린 악플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시작은 어려운 모양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마블에선 왜 여성 슈퍼히어로 단독영화가 없냐는 지적이 쏟아지자 '블랙 위도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간 여성 슈퍼히어로 단독영화가 '원더우먼' 밖에 없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역시 갈 길이 멀다는 뜻입니다.

'블랙팬서'의 성공으로, 흑인 슈퍼히어로영화가 본래의 정체성을 더 찾게 될지, 아니면 안전한 흥행공식을 바탕으로 한 프렌차이즈가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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