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영화 세 편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23)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8.02.15 10:00 / 조회 :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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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외국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교에서 '민박'을 주선해 주었다. 가보니 그 나라에서 가장 큰 음료수 회사 회장 집이었다. 신기한 손님인 나를 유복한 가족이 저녁에 종종 초대했다. 한 번은 백 세를 바라보는 집 주인의 노모가 색이 바랜 흑백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주 젊은 여성의 사진을 가리키며 "우리 딸이에요"했다. 그리고는 바로 "오십 년 전에 떠난 아이지요.." 하는 것이었다. 목소리는 슬프지 않았지만 세월과 나이가 그렇게 만들어 준 것일 게다.

우리는 살면서 이런저런 상실감과 아픔과 슬픔에 부딪힌다. 주로 사람 때문이다. 소중한 사람을 잃거나 사랑이 떠나거나 믿었던 사람이 배신하거나 누군가에게 모욕을 당한다. 그런 것들은 대개 시간이 지나면서 치유되고 잊혀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어떤 것들은 영원히 남는다. 그냥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무너지느냐, 버텨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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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맨체스터 바이 더 씨'(2016). 주인공 케이시 애플릭은 조카에게 이렇게 말한다. "더는 못버티겠어. 더는"(I can‘t beat it.. I can’t beat it.) 사람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이런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그래도 나는 저 정도는 아니지' 하고 위로를 받거나 '나 같은 사람도 있구나'하고 위로를 받는다. 마음이 아플 때, 아픈 일이 생길까봐 막연히 두려울 때 가장 큰 약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실제에서 찾기 어렵기 때문에 영화에서라도 찾는다.

사람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 자기한테서 떠나갔을 때 가장 많이 아파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떠나가면 물론이고('사랑에 빠지지 마라. 차라리 다리에서 떨어지는 것이 덜 아프다') 무심하게 보던 사람(배우자)의 마음이 떠나가도 큰 상실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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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영화 '디센던트' 스틸컷


조지 클루니의 '디센던트'(2011).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아내의 외도를 뒤늦게 알게 된 주인공은 아내가 상대를 정말로 사랑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미안함과 슬픔과 분노를 넘어 상대가 아닌 자기가 아내를 사랑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그러나 아내는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아무 말도 없이 아무 말도 듣지 않고 그대로 떠나버린다.

사람을 자연재해 같은 사고로 잃으면 슬플지언정 분노는 덜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으로 잃으면 가장 아플 것이다. 범죄다. 무수히 많은 복수영화가 이를 소재로 한다. 그런데 그 가해자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면? 마음의 평정이 찾아오기를 기대하기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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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쓰리 빌보드' 스틸컷


'쓰리 빌보드'(2017). 성폭행을 당하고 끔찍하게 죽어 간 딸의 범인을 찾는 엄마 밀드레드 헤이즈(프랜시스 맥도먼드 분)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이런 엄마의 슬픔과 상처를 이해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부담스러운 일이 될 뿐이다. 마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이 엄마는 서서히 진상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 남의 아픔은 남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한두 사람이라도 끝까지 같이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있다. 그 한두 사람에는 가족이 포함되지 않을 수도 있다. 가족에게 일어난 비정상적인 일은 가족을 오히려 해체시킨다. 계속 같이하는 것이 더 고통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 한두 사람은 내 친구이거나 성당의 신부님인 경우가 많지만 뜻밖의 사람일 수도 있다. 괜히 미워하던 사람일 수도 있다. 우리는 우리가 주위에 별 관심 없이 대하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모르고 사는 경우가 있다. 아픈 일이 생기면 그제서야 그 사실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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