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지만 많은 것을 보여준다"

[김재동의 만남] '용병 스카우트 미다스의 손' NC 다이노스 데이터팀 임선남 팀장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2.10 06:00 / 조회 : 9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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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남 팀장./사진제공=NC다이노스


“야구 기록은 비키니를 입은 소녀와 같다. 기록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는다.”

1969년부터 1986년까지 텍사스 레인저스 등 메이저리그에서 유격수와 3루수로 활약했던 토비 하라의 말이다. 그가 방점을 찍은 부분은 ‘기록이 모든 것을 보여주진 않는다’는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와 달리 ‘기록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에 방점을 찍는 이들도 있다.

NC가 2013년 이후 처음으로 외국인 투수를 전면 교체했다. 12승 투수들인 해커와 맨쉽을 내보내고 밀워키 브루어스 출신의 왕웨이중(26)과 볼티모어 오리올스 출신의 로건 베렛(28)을 영입했다.

NC의 이 같은 오프 시즌 행보가 주목을 끄는 데는 그간 보여준 NC 외국인 선수들의 성공 이력이 주효하다.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 5.88로, 역대 NC 투수 1위인 찰리 쉬렉, 5시즌 에이스 에릭 해커, 메이저리그로 금의환향한 에릭 테임즈외에도 제프 맨쉽, 재크 스튜어트는 물론 올 시즌도 함께하는 35홈런 3할타자 재비어 스크럭스까지, 2013년 퇴출된 아담 윌크를 제외하고 NC는 언제나 옳은 선택을 해왔다.

이 외국인선수들을 영입하고 관리하는 팀이 ‘데이터팀’이다. 이들이야말로 ‘기록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는 것을 증명해온 이들이다. 외국선수 잘 뽑기로 소문난 NC 다이노스 데이터 팀의 임선남 팀장(40)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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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훈 스카우트./사진제공=NC다이노스


- 투수 2명을 모두 교체했다. 어려움은 없었나?

▶ 쉽지 않았다. 시장이 통합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선수가 너무 없다.

- 시장이 통합되는 양상이라면?

▶ 예전에는 메이저리거가 있고 트리플A 선수들이 일본, 더블A 선수들이 한국을 선호하는 양상을 보였지만 이제는 메이저리그 하위권 선수부터 모두 통합되는 양상이다. KBO리그뿐만 아니라 일본팀, 메이저리그팀들과도 수급경쟁을 해야 한다. 해커를 데려올 때보다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 왕웨이중과 베렛을 선택하게된 배경과 과정을 듣고 싶다.

▶ 해커와 맨쉽의 경우 건강문제가 불거졌다. 젊은 선수들에게 시선을 돌린 배경이다. 데이터를 통해 10명의 선수를 리스트업해놓고 이 중 둘을 계약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베렛의 경우 FA여서 에이전시랑만 대화하면 되는 일이었지만, 왕웨이중은 밀워키 소속였기 때문에 유동적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 밀워키와 창구를 열어두고 다른 선수들과도 접촉했다.

현지 구단의 오프 시즌 계획도 있는 것이고 선수들의 의중도 중요하다. 그런 요인들로 인해 상황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1순위니 우선 접촉이니 하는 것들은 의미가 없다. 어느 순간 왕웨이중이 최선인 상황이 되었고 밀워키 구단의 계획과 선수 본인의 의중까지 맞아떨어졌다.

- 이 두 선수의 성공을 확신하나?

▶ 스카우트 자체가 불확실에 도전하는 작업이다. 확신은 몰라도 기대는 하고 있다. 두 사람의 데이터로 확인해볼 때 이 둘의 조합은 매력적이다. 해커-맨쉽 조합보다 나을 수 있다고 본다.

왼손(왕웨이중)-오른손(베렛)뿐 아니라 투구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왕웨이중은 왼손으로 평균구속 150km, 최고 154km의 스트레이트를 갖고 윽박지르는 스타일이다. 커터와 슬라이더도 쓸만하다. 베렛은 속구는 140대 후반이지만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를 활용해 땅볼과 헛스윙을 유도하는 스타일이다. 두 사람을 상대하는 타자들에겐 부담이 되리라 본다.

- 데이터에 입각해 올시즌 NC 성적은 어떨 것 같나?

▶ 가을 야구 같은 단기전에는 데이터가 잘 들어맞지 않는다. 페넌트레이스 데이터상으로는 올시즌도 가을야구는 할 것 같다.

그의 말투는 분명하다. 어미를 흐리지 않는다. 검은 뿔테 안경 너머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만 나이 40이지만 그보다는 어려 보인다. 전반적으로 데이터를 다루는 사람다운 분명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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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민구 매니저./사진제공= NC다이노스


그가 원래부터 데이터를 다루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울대에서 미학과 경제학을 복수 전공한 그는 NC와 연을 맺기 전 SK에너지 전략기획실에서 재무 예측을 담당했었다. 그는 박찬호의 미국진출을 계기로 메이저리그에 관심을 갖게 됐고 사이버매트릭스의 세계에 눈을 떴다고 한다. 아마존에서 영어로 된 야구 통계 서적을 사다가 독학하며 데이터에 기반해 경기를 예측하는 재미에 빠져있던 그에게 엔씨소프트에 근무하는 지인으로부터 야구데이터팀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리고 그는 이직을 결심한다.

“기업의 전략기획에 관해서는 잘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하지만 야구데이터를 가지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국내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던 일이어서 열심히 하면 충분히 보상을 받겠다는 판단이 섰죠.” 그렇게 그는 2011년 엔씨소프트로 적을 옮겼다. 그리고 NC다이노스가 퓨처스리그에 있던 2012년부터 선수 물색에 돌입해 2013년 찰리 쉬렉, 에릭 해커, 아담 윌크를 영입한다.

“당시 특히 찰리 쉬렉에 대해 걱정이 많았습니다. 데이터상으로는 분명히 성공 가능성이 높은데 메이저경험도 전혀 없고 미국시장에서도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무명 선수였거든요. 해커는 그래도 메이저에 몇 번 올랐던 선수고 윌크도 구단에서 주목받던 유망주였었는데 말이죠.”

보여준 게 전혀 없는 쉬렉의 영입에 우려 섞인 시선들이 쏟아진 건 당연했다. 임팀장 역시도 “안되면 다른 거 하지 뭐”하는 심정으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쉬렉은 2013년 29경기에 등판, 11승 7패 평균자책점 2.48을 기록하며 평균자책부문 1위를 차지했다. 2014 시즌에도 역시 28경기에 나서 12승 8패, 평균자책 3.63을 기록하며 임 팀장의 데이터가 맞아떨어졌음을 증명했다. 특히 통산 11번째 노히트노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2014년 테임즈 영입은 말 그대로 운이었다고 임 팀장은 회고한다. KBO는 2013년 12월 10일 이사회를 열고 외국인 선수제도를 기존 보유 2명 출전 2명에서 보유 3명 출전 2명으로 변경했다. NC 다이노스와 2015년 1군에 합류하는 KT 위즈는 외국인 선수를 4명까지 등록할 수 게 됐다. 출전 2명이다보니 구단들은 타자 영입에도 눈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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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릭 버고 코디네이터./사진제공= NC다이노스


“그전까지 타자는 덤으로 관찰하는 편이었죠. 투수는 국내에서도 축적된 데이터가 있었지만 타자는 전혀 없었어요. 시간은 촉박하고 해서 성공 유형 안 따지고 정말 순수하게 '미국에서 좋은 타자는 한국서도 통할 것이다'란 관점에서 접근했죠. 문제는 누가 과연 한국에 오고 싶어하느냐였죠. 테임즈는 데이터도 좋았고 젊고 메이저 40인 로스터에 들어있는 친구였어요. 그래도 그냥 찔러나 보자 했던 겁니다.”

그리고 운이 따라줬다. 메이저리그와 트리플A를 오가는 생활에 불만이 쌓였던 테임즈는 한국에서의 도전을 기꺼이 수용했다. 테임즈는 첫 시즌인 2014시즌 125경기에 나서 37홈런 121타점 타율 0.343을 기록하며 포텐을 터뜨리더니 2015년엔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등 4관왕의 위용을 뽐내며 MVP를 차지했고, 2016년엔 홈런 공동1위 득점 공동2위 OPS2위의 개가를 올리고 메이저리그로 금의환향했다.

“그렇게 선택이 잘 맞아떨어질 때면 정말 짜릿짜릿합니다. 하지만 놓친 무수한 선수들을 생각할 때면 아까워서 고통스럽기도 하죠”

NC다이노스의 데이터팀은 임팀장을 중심으로 미국 현지를 누비는 박찬훈(39) 스카우트, 투구추적데이터스페셜리스트 송민구(36) 매니저, 용병들의 한국살이 도우미 패트릭 버고(40) 코디네이터 등 4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비록 야구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이들 중 야구 선수 출신은 한 명도 없다. 박 스카우트는 고려대 사회학과, 송 매니저는 연세대 토목과를 졸업했다. 패트릭 버고 코디네이터는 미국 크레이튼대 철학과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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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왕웨이중, 로건 베렛 /사진=NC 다이노스 제공


그들은 메이저리그와 트리플 A등의 구할 수 있는 데이터는 모두 가져와서 투수 50명, 타자 50명선을 추린다. 일단 100명 정도의 명단이 작성되면 박찬훈 스카우트가 미국행 비행기를 탄다. 현장도 보고 인터넷으로 트리플A 경기도 샅샅이 살피는데 임팀장과 박스카우트는 중계를 같이 보면서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박찬훈 스카우트의 경우 한번 나가면 약 3개월을 체류하며 선수들을 관찰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메이저리그와 트리플A를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못 보는 선수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소거방식을 선호한다. 데이터는 좋은데 현장에서 살폈을 때 좋지 못한 선수나 데이터는 좋지 못한데 현장에서 봤을 때 잘하는 선수는 무조건 제외한다. 데이터와 현장실사 모두에서 합격점을 받은 선수들을 다시 추려서 접촉할 명단을 만든다.

‘코디네이터’란 보직도 눈길을 끈다. 2016년부터 합류한 패트릭씨는 한국에서 12년 체류하며 한국능률협회에서 근무했던 이력이 있다. NC 데이터팀의 오점으로 기록된 아담 윌크. 2013시즌 도중 퇴출된 아담 윌크의 경우 한국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가다 팀을 비난하는 글을 SNS에 올렸었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다른 나라가서 야구란 단체운동을 한다는 것은 모든 외국인 선수들에게 공통된 어려움일 수밖에 없다. 패트릭씨는 전훈장을 찾아 합류한 외국인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국 적응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 음식 등을 알려주고 아프면 어디를 가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한국 살이의 실체를 살뜰히 챙겨준다. 임 팀장에 따르면 데이터팀 최고의 야구매니아 패트릭씨는 특히 80년대 한국야구 자료를 굉장히 많이 소장하고 있어 외국인 선수들의 한국야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데도 기여하고 있다고 한다. 시즌 후 외국인선수 귀국 전 일대일 면접에서도 이 코디네이터 시스템은 굉장히 좋은 평을 받았다고 한다.

“저희를 벤치마킹해 다른 구단들도 데이터 인력을 보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임팀장. 대기업 전략기획실이란 울타리를 박차고 나와 야구데이터란 신세계에 몸을 던진 그의 도전은 상당히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NC 다이노스와 한국야구의 발전이란 측면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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