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성폭행 피해자 감독의 용기를 응원해야 하는 까닭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2.06 09:46 / 조회 : 2008
image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공개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피해자가 오히려 2차 피해를 받기 쉬운 탓이다. 용기와 응원이 없다면, 말 한마디 꺼내기 어렵다. 용기가 스스로의 몫이라면, 응원은 다른 사람의 몫이다.

여성감독 A가 용기 있는 목소리를 냈다. A는 지난 1일 자신의 SNS에 "2015년 봄 동료이자 동기인 여자 감독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글을 올렸다. A는 "가해자가 재판을 수십 번 연기한 탓에 재판을 2년을 끌었고 작년 12월 드디어 대법원 선고가 내려졌다"고 밝혔다.

사실 A가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은 일파만파되진 않았다. 지인들에게만 허락된 비공개 계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A는 이 글을 올리기 전까지 오랜 연인인 남자친구와 주위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누구는 말렸다. 다시 다칠까 걱정해서다. 그래도 대부분 그 결심을 응원했다.

A의 글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건, 남자친구가 공개 커뮤니티에 자신의 실명과 연락처를 올리면서 해당 글을 옮겼기 때문이다. A의 남자친구는 글에 신뢰를 주고 싶어 실명과 연락처를 남겼다고 썼다. 그러면서도 가해자의 이름은 익명처리했다. 자칫 명예훼손으로 피소될 수 있는 탓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기 쉽지 않은 건, 폭로가 역으로 돌아오기 십상인 탓이다. 용기와 응원이 필요한 이유다.

5일 오전 A의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남자친구라지만 단순한 남자친구가 아니다. A와 고통을 같이 나누고, 같이 싸우고, 같이 용기를 낸 사람이다. 남자친구는 영화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A의 영화에 스태프로 몇번 참여해서 A의 학교 친구들, 가해자 감독도 알고 있는 사이라고 했다.

남자친구는 "가해자가 상을 많이 탔다"고 말했다. "(가해자가)영화로 재능을 인정 받는 건 문제가 없다"면서 "다만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한 건"이라며 말을 삼켰다. 여성영화인상은 그만큼 상징성이 크다. 영화현장에서 여성으로서 능력을 발휘하고, 연대를 장려하려는 상이기 때문이다.

또 남자친구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닌 영화아카데미의 졸업작품전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해자가 자랑스런 동문으로 이름을 올린 것을 보고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중재를 자처하다가 가해자측 증인으로 법정에 선 담당교수 뿐 아니라 다른 교수들도 이 사건을 알고 있었는데도, 가해자의 수상 실적으로 문제를 용인한 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자친구는 가해자의 어떤 인터뷰에 치를 떨었다고 토로했다. "(가해자가)언젠가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이 오더라도 정직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말했더라"면서 "그 때가 1심 판결이 나고 2심 선고를 앞둔 시점이었다"고 말했다. 남자친구는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걸 우려해서 이 문제를 알리려 했다"고 했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널리 알려지고 난 뒤, 여성영화인모임은 긴급회의를 열고 가해자의 여성영화인상 수상을 취소했다. 여성영화인모임은 법률자문을 받아 고심 끝에 공식입장을 다듬어 발표했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가해자를 제명했다.

용기와 응원이 낳은 결과다. 하지만 A의 용기는 여전히 많은 말들에 둘러싸여 있다. "왜 지금에서야 폭로를 하느냐"부터 "판결이 나왔으면 됐지, 가해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고 싶냐"는 말까지, 인터넷 댓글과 여러 경로로 피해자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힘겨운 싸움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겐, 친절해야 한다.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그래야 자신이 힘겨운 싸움을 하게 될 때, 남의 친절을 바랄 수 있는 법이다. 응원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친절해야 한다.

가해자 감독과 담당 교수에게 여러 번 전화를 했다. 연락이 닿지 않았다. 가해자 감독의 영화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멈출 때와 나아갈 때를, 이야기하는 영화였다. 가해자 감독이 했다는 "언젠가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 세상이 오더라도 정직한 영화를 만들겠다"고 한 말의 뜻을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답은 없었다.

A의 남자친구는 "가해자에게 사과는 없었다. 이 글을 올리고도 연락은 받지 못했다"고 했다. 부디 사과가 먼저이길 바란다.

A는 촉망받는 여성감독이다. 독립영화 기대주로 꼽히는 감독이다. 인생에 무엇이 도움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힘든 시간을 견딘 A가 영화로 성공하길 바란다.

A는 올린 글에서 "내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의 요지가 침묵하라였다"며 "알려서는 안된다는 겁박과 말하면 너도 다친다는 걱정 속에 2년을 혼자 앓았다"고 했다. 이어 "이 글을 읽고 또 한 명이 용기를 내준다면 내 폭로도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쓴다"고 덧붙였다.

그 용기를 응원한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라인
  • 웨이보
  • 프린트
  • 이메일

최신뉴스

더보기

베스트클릭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