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 이일화 "아름답다고? 도전하고 싶다"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1.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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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화/사진=임성균 기자


이일화가 스크린에 돌아왔다. 1994년작 '그리움엔 이유가 없다' 이후 24년만에 '천화'(감독 민병국)로 영화 주연을 맡았다. 그간 이일화는 공백기가 있었다. 다시 연기를 시작하면서, 누군가의 아내 또는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시누이 등등을 맡게 됐다. 돈이 8할이었다. 이일화는 "가장이었기에 돈을 벌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그렇다고 연기에 대한 애정은 결코 놓지 않았다. 돈 때문에 연기를 다시 시작했지만, 결국 연기를 사랑해 늘 새로운 역할을 갈망했다.


25일 개봉한 '천화'는 그런 이일화에겐 단비 같은 영화다. '천화'는 한 치매노인의 인생을 바라보는 한 여인과 그녀의 곁에 선 한 남자의 관계를 통해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 이일화는 십 여 년 전 제주도에 정착해 살아가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여인 윤정 역을 맡았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보였던 착하고 자상한 엄마 이일화는 없다. '천화'에서 이일화는 검은 장미 마냥 짙은 여성성을 드러낸다. 매혹적이다. 좀처럼 인터뷰를 안하던 이일화가 '천화'는 인터뷰를 자처했다. '천화'에 대한 애정 때문일까, 이일화를 만났다.

-왜 '천화'를 하게 됐나.


▶우연한 계기였다. SBS 공채 탤런트 후배인 정나온이 이런 시나리오를 받았다며 읽어보라고 했다. 수현이란 역할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래서 혹시 가능할지 문의해봤더니 수현 역은 실제로 플라밍고를 추는 다른 분(이혜정)이 캐스팅됐다고 하더라. 그런데 다시 주인공 윤정 역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쉽지 않은 역이었지만 감사하게 하기로 했다.

-말그대로 쉽지 않은 역인데. 캐릭터 자체도 어려운 데다 노출에 담배, 일본어까지 지금까지 TV드라마에서 많이 보여줬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기도 하고.

▶어떤 작품이 주어진다고 해도 카메오라도 열심히 할 각오가 서 있다. 휴식기를 갖고 다시 연기를 시작할 때 어떤 역이든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사람인지라 하기 싫은 역도 있지만 내가 그 역할을 빛나게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사실 연기자 활동을 재개할 때 연기에 대한 욕심도 물론 있었지만 돈을 벌어야 하는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가장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경제 때문에 다시 시작했다. 그런 마음으로 연기를 다시 시작했지만, 연기에 대한 사랑, 역할에 대한 사랑이 더 커졌다. 지금은 경제 때문이 아니라 연기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일을 한다. '천화'는 그럴 때 만난 작품이다. 연기변신을 하고 싶고,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을 때 만난 게 '천화'다.

-'천화' 기자간담회에서도 노출에 대한 걱정을 했지만 영화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던 게 부끄러웠다고 했는데.

▶목욕신은 어디까지 노출을 할지, 속옷 갈아입는 장면은 어떻게 할건지, 사실 두려움이 있었다. 민병국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했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다 배우보단 아이엄마이자, 부모님에 대한 걱정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게 성장해가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이번에는 두려움과 함께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다면 앞으로는 어떤 장면이라도 감독님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천화'는 내러티브가 뚝뚝 끊긴다. 이해하기보다는 느끼는 게 더 많은 영화고. 배우로서도 납득하기 어려운 캐릭터였을텐데.

▶쉽지 않은 이야기다.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죽음을 생각하는 이야기다. 그런데 죽음을 생각하다 보면 그래서 더 삶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크리스찬 치유상담을 4년 동안 공부했다. 그러면서 죽음과 삶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기도 했다. '천화'는 그런 점에서 더 끌렸다. '천화'란 말이 고승의 죽음을 뜻한다.

감독님은 캐릭터나 어떤 장면의 의도에 대해 명확하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고 늘 이야기했다. 얼마 전에야 감독님의 의도를 깨달았다. 시간 순서도 아니고, 인물이 겹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런 것들을 하나님의 시선에서 바라보면 어땠을지,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면서 전율하는 순간들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정답은 아니지만 나만의 해석은 물론 있다. 난 내가 맡은 윤정이 치매 환자를 돌보지만 스스로도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여자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 물론 그런 내 해석에 대해서도 민병국 감독님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천화'로 관객과의 대화도 많이 하고 있는데.

▶관객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더 많이 깨닫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어떤 관객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기억을 잃어가는 것 같고, 그래서 살 수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 전율이 왔다. '천화'를 4번 봤는데, 점점 해석이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꿈일 수도 있고, 종규(양동근)가 쓴 소설일 수도 있고, 문호(하용수)의 기억 속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인간 이일화도 잊고 싶은 기억이 있나.

▶많은 기억들이 지워지지만, 오히려 잊고 싶은 기억은 안 지운다. 많은 실수들이 바탕이 돼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것이니깐. 잊고 싶은 기억들은 잊으면 안된다.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정말 실수와 잘못을 많이 했다. 지금도 실수하고 잘못을 하지만 하나님을 만나기 전처럼 정죄하지는 않는다. 그런 실수들이 지금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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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화/사진=임성균 기자


-양동근과 육체적인 접촉이 있는 장면을 찍었는데. 이른바 양동근의 나쁜 손 장면이랄까. 지금껏 보여준 적이 없는 연기인데다, 앞뒤 연결이 맥락이 이해가 안되는 상황에서 연기를 했어야 했는데.

▶감독님이 많은 장면들의 연결을 신경쓰지 말고 하라도 하셨다. 그리고 나쁜 손 장면은 종규(양동근)가 훨씬 더 걱정을 해서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았다. 종규가 와이프를 끔찍하게 생각한다. 우리 와이프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면서. 종규가 그러니깐 더 담대해지더라.

'천화'가 그렇다. 나온 역으로 나온 정나온은 목사님 사모님이다. 그런데 종규와 베드신이 있지 않나. 그래서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정말 미학적으로 표현했다. 그런 우려들을 갖지 않도록.

사실 나도 그렇다. 목욕 장면에서 다리를 잡지만 수영복을 입고 찍으면 뒷모습이 걸리기 때문에 올 누드로 찍어야 한다고 했다. 카메라 감독님만 있는 상태에서 찍었다. 카메라 감독님에 대한 믿음도 있었고. 해야한다고 하겠다는 담대한 생각이 들더라.

-'천화'에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이일화의 여성성이랄까, 아름다움이 굉장히 드러나는데.

▶난 처음 봤을 때는 전혀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촬영 여건 때문에 현장에서 만들어진 표정들이 있었으니깐. 그저 내 얼굴이 너무 많이 나와서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주위에서 너무 아름답게 나왔다고 해서 그런가 싶었다. 딸이 지금 스무살인데 좀처럼 엄마 연기 잘했다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 '닥터 이방인'에서 기억 잃고 걷는 연기를 한 걸 보고 처음 칭찬했다. 그런데 이번에 '천화'를 보고 엄마가 그렇게 예쁜 줄 몰랐어라고 하더라.

-연기를 재개하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시언니 등을 주로 연기했다. 누군가라는 꼬리표를 떼고 연기하고 싶단 생각이 '천화' 이후 많이 생겼나.

▶당연히 생기죠. 그 전에도 그런 생각 많이 했다. 그런데 배우란 게 시켜줘야 할 수 있는 일이지 않나. 그래서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용기도 생겼다. 뜻 맞는 사람끼리 만들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도 한다.

올해는 SBS, KBS, MBC 지상파 3사 드라마에 모두 특별출연을 할 예정이다. 특별출연은 안해, 이럴수도 있지만 역할이 주어지는 게 감사하다. (울컥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현장에 가서 단역 배우들을 보면 너무 감사하다. 크고 작은 역을 가리지 않고 하시는 분들 덕에 작품이 만들어진다. 나도 주어지면 어떤 역이든 가리지 않을 생각이다. 귀하지 않은 게 없다.

-사실 그간 인터뷰를 꺼려 했다. 그런데 '천화'는 인터뷰를 자처했는데.

▶그간 인터뷰를 꺼려한 건 맞다. 스무살에 연기를 처음 시작했다. 22,23살 내가 실수라면 실수를 한 게 있었는데 어떤 기자분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다. 말이란 게 하면 할수록 남에게 상처를 주는 것 같더라. 그래서 가급적 좋은 말을 하려 하고, 가급적 말을 안하려 했다. 그런데 '천화'는 이 영화를 만들고, 영화를 위해 노력한 많은 분들을 위해 꼭 개봉을 하고 많이 보셨으면 한다. 그래서 못하는 말이나마 하려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를 세 번 하면서 엄마 역할을 계속 했는데. 엄마 이미지로 남는 게 부담스럽지 않았나. 남들보다 더 빨리 엄마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엄마가 제일 좋다. 또 엄마가 아닌 역할인 작품을 찾으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도 하다. 그리고 엄마를 할 때 가장 내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 '응답하라' 시리즈가 만들어지면 계속 엄마 역할을 할 생각이란 뜻인가.

▶신원호PD가 나와 성동일씨가 나중에는 배연정 배일집 선배들처럼 장수 부부로 기억될 수 있겠다고 하더라. 아직 새로운 '응답하라' 시리즈는 못 들었다. '슬기로운 깜방생활' 촬영장에 김선영과 같이 커피차랑 간식 갖고 놀러간 적이 있다. 라미란은 너무 바쁠 것 같아 연락 안했더니 삐쳤더라. 아무튼 신원호PD가 너무 힘들어서 더이상 작품 안한다고 하더라. 늘 그런다. 하나하나 다 계산하는 완전한 천재라 매번 엄청나게 힘들어하고 더 이상 안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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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화/사진=임성균 기자


-'응답하라' 시리즈 중 어떤 게 가장 좋았나.

▶사람이 망각의 동물이라 가장 최근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계속 하면서 점점 더 나도 성장하고 깊이 있게 생각하고 표현하려는 것 같고.

-'응답하라' 시리즈 세 딸(정은지, 고아라, 혜리) 중 누가 가장 애정이 가나.

▶혜리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다. 보라 역을 맡은 류혜영도 너무 좋다. 보라는 아빠에 대한 아픔이 있는 큰 딸이다. 그런 게 후반부에 나올거라 생각하고 배우들이 연기했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갔다.

-'천화'에서 부치지 못하는 편지를 일본어로 내레이션하는데. 누구에게 쓰는 편지며, 왜 일본어로 하는지.

▶난 하나님께 고해성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감독님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일본에서 살다온 여자일 수도 있고, 일본여자일 수도 있고.

-다음에 하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나를 다르게 보여줄 수 있고, 또 다른 도전이 되는 캐릭터면 정말 감사하겠다. 막상 주어지면 두려워하겠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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