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No.35 투수' 제 이름은 조덕길입니다

김우종 기자 / 입력 : 2018.01.20 06:00 / 조회 : 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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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돔에서 만난 넥센 투수 조덕길 /사진=김우종 기자



"제 이름은 조덕길(29,넥센)입니다."

지난 17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을 찾았다가 그를 만났다. 그곳엔 넥센 2군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자리 누구 못지않게 열심인 한 선수. 조덕길이었다.

우리 나이 서른. 프로 6년차인 그의 등번호는 35번이다. 넥센 35번 조덕길은 올 시즌 시작부터 기분이 좋다. 등 넘버 35번을 꿰찼기 때문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투수 중 한 명인 휴스턴의 저스틴 벌렌더(35)와 같은 등번호를 획득한 것에 나이답지 않게 들떠있었다.

벌렌더를 롤모델로 삼고 있지만 2017시즌 그는 성적이 없다. 공익근무요원 복무 후 복귀해 연습경기에만 나섰기 때문이다. 프로 6년 차이지만 그는 1군 마운드에 한 번도 서보지 못했다.

조덕길은 한양대를 졸업한 2013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 58순위로 넥센의 지명을 받았다. 입단 계약금은 4천만원. 그해 조덕길은 퓨처스리그서만 14경기에 나와 승리 없이 4패, 평균자책점 7.25. 22⅓이닝을 던지는 동안 19실점(18자책점) 31피안타(1피홈런) 13탈삼진 6볼넷을 마크했다.

2014년에도 1군 마운드는 쉽게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퓨처스리그 생활이 계속됐다. 그해 화성 히어로즈 투수들 중 두 번째로 많은 36경기에 출전했다. 성적은 7승 2패로 나쁘지 않았다. 그해 성적 72⅓이닝 동안 106피안타(12피홈런), 52탈삼진, 38볼넷, 52실점(51자책), 평균자책점은 6.35였다.

'제 이름은 조덕길'이라는 그의 첫 소개엔 이렇게 1군 무대에 단 한 번도 서보지 못한 그의 애환이 담겨있었다.

그런 그에게 하나의 반전이 지난해 5월 소집해제 후 찾아왔다. "정말 놀랐어요. 제대하고 화성(넥센 2군 연습장)을 갔는데. 어떤 남자 팬 분이 저한테 '제대 축하한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제가 등번호도, 이름도 없는 옷을 입었는데…. '조덕길 선수 제대 축하드려요. 사인 좀 해 주세요' 이러시는데. 와! 나를 아시는 분이 있네…. 되게 기분 좋더라고요"

누군가에겐 사소한 경험이겠지만 조덕길에겐 의미가 남달랐다. 본인 이름 세 글자를 누군가 기억해준다는 사실은 그에게 새내기 같은 설렘을 안겨주었고 그 기분 좋은 경험을 이어가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올 시즌 목표를 물어봤다. 결과적으로 그에겐 참 난감한 질문였다. "제가 보직이 정해졌으면, 뭐 '이렇게 하겠다. 선발에서는 11승을 하고 싶다. 홀드에서는 모든 주자 나가면 다 막고 싶다. 이런 게 있을 텐데. 아직 보직이 안 정해졌어요. 뭐로 나갈지 몰라서 거기에 대한 답변을 어떻게 드려야 할 지 모르겠어요." 그의 머뭇거림에 미안한 마음이 들 즈음 "아 기왕에 큰 목표 한번 잡아보죠. 부상 없이 1군에서 풀 시즌 보내는 겁니다. 부상 없이…"

본인 바람대로라면 금년 넥센 팬들이 풀 시즌 1군에서 만나볼 조덕길은 과연 누군가.

그가 야구와 연을 맺은 것은 영등포의 영중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친구의 꼬임에 넘어갔다고 한다. "저와 제일 친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친구가 먼저 야구부에 들어가서 저를 꼬셨어요. 처음에는 안 한다고 했었어요. 동네 야구는 재밌지만 학교에서까지 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여기 오면 간식으로 피자, 치킨 맨날 줘'라더군요. 진짜 가보니 치킨이 나오고 다음날에는 피자가 나오고…" 그와 야구와의 연은 간식으로 맺어졌다. 그렇게 시작한 야구는 어느새 그의 전부가 됐지만 세상은 녹록치 않았다. 2007년 신일고 3학년 때 그는 프로지명을 받지 못했다. 대학 입학 시기마저 놓치면서, 한양대학교를 남들보다 1년 늦게 들어갔다. 다행히 대학 졸업 후에는 프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군 복무를 하기 전 조덕길의 넥센 생활이 궁금했다. 넥센이 창단 첫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2013년 그리고 창단 첫 2위를 차지했던 2014년이었다. "2013년에는 허리가 안 좋았다가 다시 좋아졌어요. 2014년에는 1군 엔트리에 한 번 등록됐는데 경기엔 나가지 못했고요. 2군에서 엄청 많이 던졌어요. 1군 마운드는 2013년 불펜에서만 밟아봤네요"

2015년. 그는 잠시 1군 무대의 꿈을 뒤로 미뤘다. 그리고 대한민국 남자라면 예외 없이 성실히 수행해야 할 일. 병역의 의무를 해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군 복무도 해결하면서 야구 선수 생활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는 상무를 지원했다. 그러나 결과는 차가운 탈락. 시련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제겐 오히려 그게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요. 당시 팔꿈치가 안 좋았는데, 어차피 이렇게 된 김에 수술(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하고 병역 의무를 해결한 뒤 운동을 하자고 생각했거든요. 어차피 쉬어야 하니까. 길게 쉬고 다시 운동을 하자고 마음을 먹었어요. 다들 토미 존 수술을 하면 4~5개월 후에 공을 던지는데, 그러다 한 번씩 통증이 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전 오래 쉬어서 그런지 지금까지 수술 후 아픈 적이 없네요"

상무 입단에 실패한 조덕길은 결국 공익근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그가 근무했던 장소는 월드컵경기장역. 야간 전담이라 하루 근무를 하면, 하루 쉬는 일정을 소화했다고 한다.

"공익 근무를 하면서 생각도 많아지고 깊어졌던 것 같아요. 나이가 어렸을 때에는 막연하게 야구를 했었거든요. 공익 근무를 하면서 야간 전담 근무를 하다 보니 낮에 시간이 비는 날이 꽤 있었어요. 그때 목동구장과 고척돔에서 저 혼자 몸을 만들었어요. 구단에서 서서히 몸을 만들라고 하기도 했고요. 당시 이지풍 코치(현 kt 코치)님이 스케줄만 주고 전혀 관여는 안 하셨어요. 물론 잠을 못자니까 힘들긴 했죠. 군 복무를 하면서 생각도 많아졌는데 '이거 아니면 안 되겠다' 하는 절실함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여태까지 이걸 했는데, 이걸 안하면 뭘 해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야구 말고는 할 게 없는 거예요. 제가 운동하고 집에 갈 때쯤에 경기장으로 1군 선수들이 오잖아요. 그 생활이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저런 적이 있었는데…. 오래 쉬다 보니 단체 생활에 대한 감을 잃은 거죠. 제대 후 처음으로 팀에 합류할 때 기분이 엄청 좋았어요. 다 같이 하니까. 그전에 혼자 하다가 단체로 스케줄 받아서 운동하고, 공도 던지고 하니까 되게 좋았죠. 엄청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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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12일 서울 목동구장. 2014 프로야구 시범경기 KIA전에서 7회초 마운드에 오른 넥센 조덕길이 역투하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지난해 5월. 그는 한동안 넥센의 2군 훈련장이 위치한 경기도 화성으로 출퇴근을 해야만 했다.

"화성까지 지하철을 타면 거기서 내린 뒤 또 택시를 타야 하더라고요. 택시비가 가는데 1만5천원, 오는데 1만5천원. 합이 총 3만원…. 이거 한 달을 계산해보니까 차라리 차를 사는 비용이 더 적게 들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렴한 차를 하나 샀어요"

조덕길은 지난해 5월 첫 연습경기서 134~5km의 속구 구속을 찍었다. 대학교 이후 140km 떨어져본 적이 없다는 그는 몸을 떨며 당황했다. '아, 내가 좀 많이 쉬었나?' 이후 그는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의 각오로 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연습경기. 142km의 속구 구속이 스피드건에 찍혔다. 그렇게 2017년이 지나고 2018년이 왔다.

"올해 1군 마운드요? 프로 6년차인데 전 보여준 게 아직 없잖아요. 부담은 조금 있지만 감수해야죠. 나이도 있고, 책임감을 갖고 해야죠. 후배들도 많이 생겼고, 즐기려고 노력해요. 너무 잘 해야지, 잘 해야지 하면 오히려 더 안 되니까요. 늘 머릿속에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있어요"라며 애써 웃는다.

"그래서 요즘 생각하는 건 '나이를 생각하지 말자'예요. 나이로 야구를 하는 게 아니고 실력으로 하는 거니까요. '실력으로 보여주면 된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괜히 나이 이야기를 하면…. 나서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나이 먹고 왜 저래?' 이런 소리를 들을까 봐요. 그래서 나이 생각은 잘 안하려고요"

그에게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물었더니 '저스틴 벌렌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벌렌더는 속구 구위, 그리고 변화구 컨트롤도 정말 좋더라고요. 어렸을 적에 보고 반했어요. 제 등번호도 그분 등번호예요. 35번. 제가 군대 가기 전에도 35번이었는데, 이번에 다시 달게 됐죠. 그래서 기분이 되게 좋았어요. 다시 35번을 달 수 있어서." 아직 넥센 공식 홈페이지에 조덕길의 등번호는 12번으로 나와 있지만 곧 바뀔 예정이다.

아직 1군 무대를 한 번도 밟지 못했기에 그의 올해 목표는 당연히 1군 마운드 등판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조덕길은 소박한 자신의 목표를 말했다. "제가 아직 보직이라든지 이런 게 정해지지 않았지만, 부상을 당하지 않고 한 시즌을 정말 아무 탈 없이 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팀에 피해 안 주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보탬이 됐으면 됐지. 올 한 해 아프지 않고요. 제게 정말 중요한 시즌이거든요." 그러면서 한 명을 떠올린 조덕길. "아, 삼성의 (박)해민이가 저의 초, 고, 대학교 친구입니다. 2군서는 한 번 맞붙어본 적이 있는데, 올해는 1군서 꼭 맞붙어보고 싶어요"

앞서 자신을 알아본 팬에 감격했다는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전한다. "음. 그리고 한 분이라도 저를 알아보시면 기분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제 정말 한 분이 아니라 저를 많이 알리는 올 한 해가 됐으면 좋겠네요. 저를 알린다는 건 1군에서 많은 걸 보여드려야 된다는 그런 뜻도 있으니까요. 저를 기대하시는 분들도 한두 명이라도 계신다면, 그분들한테도 보답하고 싶어요. 저를 모르시는 분들에게 저를 알리고 응원해주시는 팬 분들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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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조덕길 /사진=넥센 히어로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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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 조덕길의 2018년 역투를 기대해본다 /사진=김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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