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창현 기자 |
189cm 훤칠한 키, 곱슬머리에 검은 피부를 가진 그의 겉모습은 '외국인'이지만, 국적은 엄연한 '한국'이다. 다인종, 다문화에 여전히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서 그는 '다름'의 이질감을 '특별함'으로 극복했다.
한현민과의 '밥한끼합시다'는 단출한 순댓국집에서 시작했다. 최근 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순댓국 예찬을 펼친 그는 이날 기자에게 "5000원으로 이만한 '뽕'을 뽑을 수 있는 건 흔치 않다"며 다시 엄지를 치켜세웠다
PC방에서 게임을 즐기고,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를 시청하기 위해 새벽 단잠을 과감히 포기한다는 그는 외모만 조금 튈 뿐, 영락없는 한국인 고등학생이었다.
-순댓국 좋아한다고 해서 이 가게로 불렀어요.
▶오~어제도 먹었어요. 그래도 맛있어요.
-아침은 먹고 왔어요?
▶아침은 원래 잘 안 먹어요. 어릴 때부터 습관이 돼서요. 밥 먹는 것 대신 잠을 선택했어요.
-순댓국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릴 때 한 번 먹었는데, 이 한 그릇에 배가 정말 꽉 차요. 얼큰하고요. 가성비가 정말 좋은 메뉴죠. 5000원으로 이만한 '뽕'을 뽑을 수 있는 건 흔치 않아요. 최근에 어떤 팬 한 분이 제가 순댓국 좋아하는 줄 알고, 순댓국 2박스를 선물해줬어요. 정말 잘 먹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한창 먹을 땐 얼마나 자주 먹어 봤어요?
▶일주일 내내 안 빼 먹고 먹은 적도 있어요. 매일 먹어도 안 질려요. 다만 순대는 빼고 먹어요. 전 국물에 있는 순대보단 내장이 더 맛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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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가 많아진 걸 실감하고 있어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외모가 튀니까 쉽게 알아보는 거 아닐까요. 헤어스타일도 특이하잖아요. 그래도 많이 좋아해 주신다니까 감사드리죠. 더 열심히 하고 싶어요.
-타임지가 발표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30인에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선정되면서 더 많이 알려졌어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 보니까 행운이 온 것 같아요. 가문의 영광이죠. 이런 생김새로 한국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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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그런 관심에 힘입어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어요. 어땠나요?
▶재밌었어요. 모델 일 만큼요. 앞으로도 그런 프로그램에 나갈 기회가 된다면 나가서 열심히 하고 싶어요.
-MBC '라디오 스타'도 나갔었죠? MC들 직접 만나보니 어떤가요?
▶MC 분들이 저보다 나이도 있으시고, 뭔가 TV로 본 포스도 있으셔서 그런지 처음엔 긴장했어요. 그런데 너무 재밌으시더라고요. 녹화 내내 웃다가 간 것 같아요. 특히 김구라, 윤종신 아저씨는 어릴 때부터 TV에서 정말 많이 봤던 분들이라 궁금하기도 했어요. 만나보니까 되게 재밌더라고요.
-tvN '나의 영어 사춘기'에 고정 출연도 하고 있고, 틈틈이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고 있잖아요. 어려운 부분은 없나요?
▶'프로그램 나가서 재밌게 웃고 떠들고 오자'는 생각이라서 그런지, 오히려 예능을 하면 좋은 에너지를 많이 얻고 오는 것 같아요. 좋은 분들이 정말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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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가 아직 다문화에 대한 수용성이 낮아요. 어릴 적엔 현민 씨에게 '한국 사람'이냐고 묻는 게 제일 싫었다고요.
▶만나는 사람마다 '아버지도 흑인이야?', '한국말은 잘해?' 등등… 계속 물어보는 거예요. 일일이 답해주기 싫었죠. 고등학생이 되고 여러 가지 일도 경험하다 보니까 지금은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 생각이 들어요. 어느 누가 저를 처음 보고 한국 사람인지 알겠어요. 하하. 그런 질문은 옛날에도 받았고, 지금도 많이 받아요.
-들었던 얘기 중 가장 아팠던 말은 뭐가 있을까요?
▶음…'너네 나라로 돌아가.' 놀리는 식의 말이요. 가장 안 좋은 말이죠. 사실 저 말고도 다른 친구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제가 겪는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들었던 얘기 중 좋았던 말은요?
▶'너는 특별하니까 좋은 일이 생길 거야'
-한국 사람들이 장난식으로 섞어 쓰는 '흑형'이란 호칭도 매우 불쾌하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게 흑인의 우월한 면을 짚어서 '형'을 붙인 거라고 하는데, 흑인 친구들은 정말 싫어하는 말이에요. 은근히 기분 나쁜 말이라서요. 비꼬는 것 같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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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이 바쁘죠?
▶전 바쁜 게 좋아요. 행복합니다. 지난 연말부터 정말 다양한 행사를 다니고 있어요. 제야의 종도 치고, 청와대 신년회도 다녀왔죠, 평창 올림픽 성화봉송도 하게 됐어요. '내가 벌써 이런 걸 다 해보는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즐거우면서 한편으론 신기했죠.
-청와대 신년회 가서 문재인 대통령도 만났죠?
▶네. 되게 포스가 있으시더라고요. 뭔가 좀 웃을 때는 친근한 느낌이 들었어요. 아쉽게도 같은 테이블은 아니라 악수하거나 말씀을 나누지는 못했어요. 그건 되게 아쉬워요.
-학교 친구들은 정말 신기해 하겠어요.
▶맞아요. 엄청 신기해했죠. 제가 청와대 밥 먹으러 간다니까 '너가 거길 왜 가', '대통령은 어때?', '밥은 뭐 줘?'라고 묻더라고요. '라디오 스타' 나가고도 연락이 엄청 쏟아졌어요. 친구들이 응원도 많이 해줘요.
-제야의 타종 경험은 어땠어요?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종각 역에 10만 명에 사람이 오셨었대요. 그 많은 사람 앞에서 종을 빵 치니까 신기했어요. 색다른 경험이었죠.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을 꼽자면
▶음…청와대 신년회요. 여성부 장관님, 교육부 장관님, 대기업 부회장님 등등 우리나라 주요 인물들이 다 오셨었거든요. 그 중에서 전 시민 대표로 갔죠. 다들 포스가 있으시더라고요. 제가 이 자리에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기했어요.
/사진=김창현 기자 |
-처음엔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검색했는데 프로필이 없더라고요.
▶좀 더 열심히 하면 생기지 않을까요? 지금으로도 만족은 해요. 제가 하기 나름이니까요.
-말 나온 김에 자기소개 간단히 해 주세요.
▶2001년생이고요. 학교는 서울에 있는 한광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어요. 고향은 이태원입니다. 지금도 이태원에 살아요. 18년 토박이죠. 모델 데뷔는 서울 패션위크로 했습니다. 2016년에요!
-아빠가 나이지리아 인이고, 엄마가 한국인이시죠? 현민 군은 한국말은 잘 하는데, 영어는 어때요?
▶제가 영어랑은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가족한테 뭘 배우면 안 될 것 같아요. 사실 아빠가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시거든요.
-그래도 아빠가 영어를 쓰시면, 어릴 때 자연스레 습득한 게 있지 않을까요?
▶아버지도 조금은 한국어를 하실 줄 알아요. 물론 긴 말은 엄마 통해서 하죠. 그래서…
-아버지의 나라, 나이지리아에 가본 적은 있어요?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기회가 된다면 한번 가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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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영어 시험 성적은 어땠어요?
▶음…시험이랑 영어로 실제 말하는 건 또 다른 거 같아요. 제가 시험지랑 안 친해서요. 하하. 중학교 3학년 때 100점 만점에 12점 맞은 적도 있어요.
-'나의 영어 사춘기' 출연하면서 영어를 좀 배웠잖아요. 도움이 되던가요?
▶네. 좀, 아니 많이 늘긴 늘었어요.
-현민 군을 잘 모르는 사람은 처음에 영어로도 많이 물어보죠?
▶그럼요. 저를 보면 누가 먼저 한국말로 물어보겠어요. 하하.
-'나의 영어 사춘기'하면서 친해진 연예인은 있어요?
▶다들 친해졌죠. 휘성 형, 지상렬 형, 효연 누나, (정)시아 이모, 황신혜 아주머니 모두요. 좋은 사람들을 만난 것 같아 되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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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원래는 제가 초등학교 때 야구를 했었어요. 야구는 돈이 많이 들다 보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만 하고 포기했죠. 중학교 올라와서 옷에 관심 갖기 시작했는데, 옷으로 어떤 직업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모델 일을 생각하게 됐어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모델 일을 하고 계신 3학년 선배가 있었어요. 멋진 형이었죠. 그 형을 보고 관심을 더 갖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쇼핑몰 피팅 모델도 하고, 모델 오디션도 보러 다녔죠.
-PC방 사장님 덕에 모델 일을 하게 됐다면서요.
▶아~제가 중학교 때 PC방에 빠져 있었거든요. 맨날 가서 PC방 매니저 형이랑도 친해졌죠. 매니저 형이 어느 날 '사촌 형이 옷 브랜드를 하는데 옷을 입혀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전 기회다 싶어서 바로 '하고 싶다'고 했죠.
-현 에이전시 대표님과는 어떻게 인연이 됐어요?
▶SNS에 사진을 올렸는데, 그 사진을 보고 대표님이 만나자고 연락을 하셨어요. 만났더니 대뜸 이태원 한복판을 걸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걷는 걸 보시더니 바로 계약하자고 하셨어요.
-모델 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아주겠어요?
▶데뷔했을 때요. 한상혁 선생님 쇼였는데 제가 오프닝을 섰어요. 그게 회사와 계약하고 2주 만에 일어난 일이죠. 앞으로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일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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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방을 그렇게 좋아한다면서요.
▶네. 되게 좋아해요. 스트레스 풀기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전 모델 일하는 것 외에는 다른 고등학생과 별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요.
-또 뭐 좋아해요?
▶축구 '광팬'이예요. EPL 즐겨봐요. 손흥민 선수 경기도 가끔 챙겨봐요. 사실 오늘도 새벽 5시 경기 보려고 일어났다가 다시 잤어요.
-야구도 좋아해요?
▶8년차 한화 팬이에요. 그래서 성격이 긍정적이죠. 하하. 기회가 되면 한화 시구도 하고 싶어요.
-한화는 연고지가 서울이 아닌데, 어떻게 좋아하게 됐어요?
▶사실 엄마 회사가 한화에요. 어릴 때 티켓이 나와서 경기를 보러 가곤 했거든요. 당시엔 한화도 '짱짱'했어요. 가을 야구도 하고, 한국시리즈도 가는 멋진 팀이었죠. 계속 잘 되겠지 했는데 그 뒤론 매번 꼴찌를 하더라고요. 솔직히 팀을 옮길까도 생각했지만 한번 팬이 되면 바꿀 수 없더라고요. '맨날 져' 하면서 자꾸 좋아하게 되는 게 있어요.
-좋아하는 선수 있어요?
▶류현진 선수는 당연히 좋아했죠. 등판하는 날이면 안심하고 경기를 봤어요. 지금 두산 코치하고 있는 강동우 선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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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군은 혼혈이니까 다문화에 대한 인식 변화가 아직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 겪었던 시련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릴 적 학교에서 수학여행을 가면 다른 학교랑 동선이 겹치는 경우가 있는데, 그들이 쳐다보는 눈빛이 싫었어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죠. 남들처럼 평범해지고 싶다 생각했어요. 레크레이션을 하면 객석에서 제가 늘 튀니까 진행자 분이 저한테 말을 걸거나 일으켜서 뭘 시키곤 했어요. 그럴 때마다 되게 싫었죠. 그래서 일부러 맨 뒤에 가서 앉았어요. 뭔가 공개적으로 집중 시선을 받는 게 싫었죠.
모델 일을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 게 있잖아요. 그러면서 시선들도 극복한 것 같아요.
-모델 일이 좋은 계기가 됐네요.
▶하지만 행사 갈 때 아직 떨기는 해요. 하하. 연말에 '멜론 뮤직 어워즈'에 참석해서 방탄소년단에게 시상을 해드렸는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시상을 하니까 심장이 터질 것 같더라고요. 제가 말을 좀 '절'었는데, 덕분에 맷집이 강화된 것 같아요.
-'다름'에 대한 현민 군의 생각이 궁금해요.
▶누구나 다른 점은 많아요. 다 똑같은 사람도 없고요. 쌍둥이도 다 다르잖아요. 저도 일부분의 다름이죠.
-현민 군의 꿈은?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거예요. 제가 그렇게 바꿀 수 있다면, 그런 영향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정말 영광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그만큼 제가 중요한 사람이 돼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 할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