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과 '국제시장', 영화에 더해지는 정치색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입력 : 2018.01.15 11:09 / 조회 : 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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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고생이다. 멀쩡한 영화들을 놓고 정치 프레임을 더하지 못해 안달이다. 그 덕에 역주행 흥행에 성공했으니 윈윈이라고 해야 할지, 아리송하다.

지난 7일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 '1987'을 관람했다. '1987'은 1987년 고 박종철 열사 사망 사건을 덮으려는 사람들과 진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지난달 27일 개봉한 이래 많은 관객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연말연시 가족영화를 찾는 관객들 성향과 차이가 났기에 '신과 함께'에 밀려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랬던 상황이 문재인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면서 반전됐다. 문 대통령이 관람한 이튿날인 8일부터 '1987'은 '신과 함께'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역주행 흥행기록을 세우고 있다. 대통령의 관람으로 '1987'에 대한 관심이 치솟은 영향이 크다.

이는 2015년 1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을 관람한 것과 비교된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이 '국제시장'을 관람한 사실이 전해지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국제시장'은 '명량'에 이어 역대 흥행 2위를 기록했다.

대통령들의 이유 있는 영화 관람으로, 영화에 짙은 정치색이 입혀진 것도 비슷하다. '국제시장'은 개봉 직후부터 산업화 시대를 찬양하는 영화라는 비평과 그런 비평을 좌파 평론가들의 선동이라고 지적하는 비판이 난무했다. 정작 영화에 대한 비평은 실종되다시피 했다.

'1987'을 문재인 대통령이 관람하자 보수쪽에선 영화 정치라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북핵 위협에 맞서 한국 핵보유를 주장하는 영화 '강철비'를 관람하는 분위기를 일구면서 영화 정치에 맞불을 놓았다. 좌우 프레임에 갇혀 영화들이 고생하고 있다. 정작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선 침묵한 채 각자의 이해에 맞춰 색깔을 더하고 있다.

영화 정치 역사는 유구하다. 먼일을 짚을 필요도 없다. 2014년 12월이었다. 당시 '국제시장'은 뜨거운 감자였다.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를 열심히 살아온 아버지를 그린다는 영화 취지를, 산업화를 이끈 사람들에 대한 찬양이란 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주를 이뤘다. '국제시장'을 비판하든, 그런 비판을 비난하든, 그런 프레임으로 영화를 바라봤다. 이런 분위기를 이끈 데는 박근혜 정부가 한몫했다. '국제시장'을 애국영화라고 추켜세웠다. '국제시장'을 안 보는 야당 정치인을 비애국자로 모는 분위기도 상당했다.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그런 비난의 주요 타켓이었다. 문재인 의원은 12월24일 가족과 같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봤다. 문재인 의원 측에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관람하는 것과 관련해 미리 연락이 왔었다. 워낙 비난이 거세니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는 것과 관련해 부모님을 그리는 영화를 보는 이유 등을 짚어줬으면 하는 부탁이었다. 안 썼다. 영화들에 정치색을 입히려는 의도들에 어느 쪽이든,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의원이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본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언론에서 왜 '국제시장'은 안보냐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문재인 의원은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보고, 12월31일 '국제시장'을 관람했다. 문 의원은 '국제시장'을 보고 난 뒤 "영화를 놓고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씁쓸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은 '1987'에도 주효할 것이다. 영화를 정치 프레임에 가두면 불행해진다. '변호인'이 반면교사다. 천만명이 넘는 관객이 찾았지만 고 노무현 대통령 일화를 다뤘다는 이유로 관계자들이 두루 고초를 겪었다. 연출을 맡은 양우석 감독은 혹시 모를 불이익을 피하려 2년 여 동안 중국에 머물기도 했다.

그런 양우석 감독이 새 영화 '강철비'에서 진보 측보다는 보수 측 주장인 한국 핵무장을 다뤘다고 변절은 아닐 것이다. '변호인'에서 그랬듯, '강철비'에서도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1987'의 장준환 감독도 마찬가지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정권 입맛에 맞는 영화를 내놓은 게 아니다. 박근혜 정권 시절 기획했다. 그날의 뜨거웠던 열기를 그리는 한편 그 열기가 왜 절반의 성공에 그쳤는지를 되새기고, 그 열기가 촛불까지 이어진 동력을 되짚기를 바랐을 뿐이다.

'국제시장'을 산업화 시대 찬양 영화로 바라보는 시각과 '1987'을 민주화 운동 찬양 영화로 바라보는 시각은 동일하다. 프레임으로 영화에 정치색을 더하는 순간,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의 악몽이 되풀이되기 쉽다. 재난과 근심은 언제나 작은 것부터 쌓인다. 영화에 더해지는 정치색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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