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태 감독 "너무 멀리는 가지 마세요. 올시즌도 같이 갑시다"

[김재동의 만남]

김재동 기자 / 입력 : 2018.01.05 12:02 / 조회 : 6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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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김기태 감독


“음주면허, 흡연면허 1년 연장됐습니다.”


다행이다. 그가 얼마나 치열한 1년을 보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는 터라 오랜만의 만남에서 조심스레 먼저 묻지않을 수 없는 것이 건강문제였다.

2017 통합우승팀 KIA타이거즈의 김기태 감독(49)은 시즌후 받은 건강검진에서 긍정적인 소견을 받았다고 즐거워 한다. 다만 요산과 중성지방의 경우 수치가 썩 말끔한 것이 아니라 3개월에 한번 꼴로는 피검사를 받아보자는 조언을 들었다고 밝힌다.

건강에 문제가 없다니 다음으론 지난 시즌에 대한 소회를 물어본다. “끝이 좋으니 다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시즌중엔 저 역시 피가 말랐죠.” ‘시즌초인 4월12일부터 10월3일 최종전까지 175일간 1위만 질주해온 팀의 감독으로서 엄살아닌가?’란 질문에 김감독은 “야구란걸 알 수가 있나요? 언제 연패수렁에 빠질지 조마조마하고 특히 7월까지 승패마진 +30였던 것이 8월부터 끝날때까지는 승패 마진이 +2로 줄어들었어요”라고 대꾸한다. 당시 하반기의 KIA를 두고 ‘이기고 있어도 질 것 같다’는 식의 우려섞인 시선들도 있었음은 사실이다.

2018시즌에 대한 구상도 궁금하다. “선수들 모두 지난 시즌 우승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그 기세를 이어가길 간절히 원하고 있어요. 이런 갈망이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능동적으로 열심히들 훈련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팀 내부적으로 볼 때 올시즌도 지난 시즌과 같은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는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역력하다.


그렇다고 마냥 낙관만 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팀의 전력이 상승하며 지난 시즌처럼 줄곧 1위를 유지할 수 있을런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특별히 순위를 의식해 무리수를 두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고 우리가 계획했던 부분들을 차질없이 수행해가는데 집중하겠습니다”고 덧붙인다.

아울러 “감독으로서 모든 부분이 우려된다”는 속내도 드러낸다. “자신감이 없어서가 아니라 144경기를 치르다보면 뜻하지않은 변수들이 등장합니다. 일단은 5선발을 어떻게 꾸릴지도 걱정이고 내야의 백업 육성도 발등의 불이죠. 변수를 최대한 줄여나가고 변수에 맞는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제 역할이다 보니 쉬는듯해도 머릿속은 복잡합니다”고 털어놓는다.

2월 스프링캠프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체력’이라며 “이미 시즌종료후부터 코치들이 마련해준 스케줄따라 착실히 준비들 하고 있어요. 이번 캠프에서 12경기를 치르면서 실전감각을 높이고 기존 주력선수보다 백업선수들에게 출전기회를 많이 제공할 예정입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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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시상식장에서 수상소감을 밝히는 김기태감독./사진= KIA타이거즈


지극히 상식적이고 두루뭉술한 대답. 답을 하는 그에게서 말을 세심히 고르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라운드에서 보여주던 모습과는 사뭇 달라 어쩐지 낯설다.

어찌보면 김기태 감독은 프로야구계의 이단아(異端兒)다. 전통이나 권위에 맞서 혁신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그렇다. ‘형님리더십’을 들고나올때부터 그랬다. 하이파이브대신 손가락맞춤을 한다거나 용병선수들과 요란한 세리머니를 나누며 눈길을 끌더니 견제구에 걸린 LG 문선재가 주로로부터 3피트이상 벗어난걸 확인시킨다며 그라운드에 벌렁 드러눕기도 했다. 결정적 수훈을 세운 선수에겐 서슴없이 고개 숙여 인사하기도 한다. 최형우나 윤석민같은 고참급뿐 아니라 박찬호조차 3년차였던 2016년에 김감독의 인사를 받아보았다. 파격적이다. 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채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전통적 이미지의 감독과는 확실히 결이 다르다.

“제가 ‘돌아이 감독’ 소리 좀 듣는 편이죠. 지극히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밑에 사람이 윗사람, 약한 사람이 힘센 사람을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전력 4짜리가 전력 6짜리에게 붙는건 무모한 짓이죠. 어떻게든 저쪽의 하나를 내쪽으로 끌어와 5대5만 만들 수 있다면 승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라운드에선 파격적이지만 정작 그는 예의에 엄격하다. 우승감독으로 무수한 시상식을 쫓아다니던 지난 연말 어느 시상식에선 우승감독을 대우해 가운데에 마련한 좌석배치가 맘에 걸려 은근슬쩍 이름표를 바꿔놓기도 했단다. 김한수 조원우 장정석 감독등 젊은 감독들과 통화할 때면 “우리는 항상 선배님들 의견을 경청합시다”는 말을 잊지 않는다고 한다. 임창용등을 교체할 때면 항상 직접 올라가 어깨를 두드려주는 식으로 미안함을 표하며 베테랑에 대한 예우를 챙긴다.

유니폼에게도 그는 예우를 다한다. 특히 유니폼 바지로 바닥을 쓸고다니는 모습을 보면 질색하는 편이다. 어느날 아르마니 양복을 자랑하던 어느 선수에게 “얼마나 하냐?” 물어보니 자랑스레 “1000불 넘습니다” 하더란다. “그 양복바지 바닥에 끌고 다닐 수 있겠니?”란 질문엔 터무니없는 소리를 들었단 표정을 짓더라고. 그래서 “그 양복보다 더 유니폼을 귀하게 여겨라. 그 유니폼이 네게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주냐”고 강조했던 일화도 전해준다. 그가 요미우리 2군 혼성팀 퓨처스 감독을 맡던 2009년엔 유니폼에 소홀한 야쿠르트 선수를 질책한 일이 있었고 그 사달을 전해들은 야쿠르트 대표가 “죄송합니다. 저희가 교육을 제대로 못시켰습니다”란 편지를 보내와 일본매체에 보도된 일도 있었다고 전한다.

그의 은근한 자랑거리가 은퇴하는 선수들과 한번도 트러블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언제나 은퇴를 앞둔 선수들과는 꼭 면담자리를 갖는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 기회를 제공해왔다고 한다. 그는 “시간을 벌어주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란 지론을 갖고 있다. 2군행에 불만 품고 옷 벗을 궁리를 하는 선수들에게도 “순간 자존심으로 돈이 얼마나 왔다갔다 하는지 잘 생각해보고 3일 지나서 다시 얘기해보자”고 설득도 한다. 그는 그렇게 연민과 예의를 갖추는데 스스럼이 없다. 그는 “감독이 살기위한 야구를 하면 안된다. 선수들이 살기 위한 야구를 해야 된다. 비난은 감독에게, 영광은 선수에게 돌아가야 한다”고도 말한다. 다같이 가기 위한 그만의 처세다.

그래서 그의 야구를 ‘동행(同行) 야구’라 한다. 선수건 프런트건 팬이건 같이 가자는 의미의 슬로건이다. 혼밥이니 혼술이니 하는 트렌드에 아랑곳않는 주장이라 외려 반갑다. “혼자 가야 뭔 재밉니까? 뭘 해도 같이 해야 재밌죠.” 그래서 그는 선수단에게 늘 강조한다. “너무 멀리까지는 가지 말아라”고. 같이 가자고.

2018 시즌 김기태 감독이, 그의 KIA타이거즈가 펼쳐낼 '동행야구'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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