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를리즈 테론, 해리슨 포드

스크린 뒤에는 뭐가 있을까(14)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입력 : 2018.01.10 10:00 / 조회 : 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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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를리즈 테론 /AFPBBNews=뉴스1


불우한 환경이나 불운의 희생물이었지만 인생 반전으로 행운의 주인공이 되는 경우는 세상사 도처에서 발견된다.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남아프리카 출신 셔를리즈 테론(Charlize Theron)이 대표 격일 것 같다.

테론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가정 폭력자였다. 견디다 못한 어머니가 정당방위로 남편을 사살한다. 이 정도면 집안 환경이 말 다한 것이다. 학교에서는 내내 왕따를 당했는데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미국으로 건너 온 후 발레를 배우기 시작했지만 열아홉살 되던 해 무릎을 다쳐 중단해야 했다.

배우가 되기 위해 편도 비행기표를 사서 할리우드로 옮긴 테론은 하루하루 힘겹게 살다가 어느 날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은행에 들르게 된다. 여기서 인생이 바뀐다. 은행 창구직원이 외지인 뉴욕에서 발행된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당장 돈이 없으면 그 날 밤 잠잘 곳도 없는 형편이었던 테론은 멘탈이 붕괴되어 거기서 성격이 폭발하고 만다. 작은 은행 안에서 한 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그런데 줄 바로 뒤에 서 있던 사람이 연예기획사를 하던 존 크로스비였다. 테론의 행동을 보고 크로스비가 건넨 명함 한 장이 테론의 인생을 바꾸어 놓게 된다.

결국 테론은 여자 연쇄살인범 우르노스 역을 한 '몬스터'(Monster, 2003)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과 골든 글로브 상을 받는 일급 배우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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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를리즈 테론 / '매드맥스:분노의 도로' 스틸컷


셔를리즈 테론의 최근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영화는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Mad Max: Fury Road, 2015)다. 삭발을 하고 임모탄의 여사령관 퓨리오사로 분투한다. 이 영화는 영상이 너무나 아름답고 베르디의 레퀴엠을 포함한 사운드가 출중해서 영화관에서 세 번이나 봤다(나는 영화관이 들어있는 건물에 산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조지 밀러가 연출하고 톰 하디가 같이 출연했다. 로튼 토마토에서 역사 상 가장 훌륭한 영화 5위에 올라있는데(97%) 개봉되자마자 10위권에 들어간 최초의 사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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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포드 /AFPBBNews=뉴스1


인디아나 존스와 한 솔로, 리들리 스콧의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1982, 시퀄은 Blade Runner 2049, 2017)로 정상의 배우인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도 할리우드에서 고생을 많이 한 사람이다.

배우생활에 어려움을 겪다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목수가 되었는데 주로 영화 스튜디오나 뮤지션들의 무대와 관련된 일을 맡았다. 그러다가 조지 루카스가 자기 집 가구 제작과 인테리어 일을 부탁했다. 그게 인연이 되어서 조지 루카스의 화제작 '청춘 낙서'(American Graffiti, 1973)에 캐스팅되었고 결국 나중에 스타워즈에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애초에는 오디션 때 대사를 읽는 역할을 했는데 그러다가 루카스의 마음에 들었다. 에피소드 5와 6에도 출연했다. 포드는 루카스에게 에피소드 6에서 죽어서 퇴장하고 싶다고 했다는 데 루카스는 거절했다. 7에서 비극적으로 퇴장한다.

루카스에 캐스팅된 다음 해에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포드에게 사무실 확장 공사를 맡겼다. '대부'(1972)가 성공해서였다. 그러다가 '도청'(The Conversation, 1974)에 캐스팅이 되었다.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선정되었지만 희대의 경쟁작 '대부 2'에 상을 양보해야 했다. 어쨌든 포드가 주목받는 큰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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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슨 포드 / 사진='레이더스' 스틸컷


해리슨 포드의 가장 중요한 캐릭터는 인디아나 존스다. 1편, '레이더스'(Raiders of the Lost Ark, 1981)는 채찍을 휘두르는 액션 캐릭터 고고학자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다. 그런데 포드는 캐스팅 1순위가 아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포드를 캐스팅 하려고 했지만 조지 루카스가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매그넘'의 톰 셀렉이 인디아나 존스 배역을 수락할 수 없게 되어서 결국 포드에게 기회가 왔다. 인연과 운이 같이 작용한 것이다.

'인디아나 존스'는 5편이 2020년에 개봉될 예정으로 제작되고 있다. 해리슨 포드는 고령이지만 5편에 다시 나온다. 4편에 존스의 아들로 새로 등장한 샤이아 라버프가 바톤을 이어받는다는 루머가 있었지만 포드가 고개를 저었다고 한다("It’s mine").

불운이 행운으로 바뀐 것은 아니라도 작은 계기가 큰 성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캐리비안의 해적' 프랜차이즈 여주인공 케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는 스타워즈의 에피소드 1에 출연했는 데 열성 팬이 아니면 출연 자체를 알지 못한다. 나이틀리가 캐스팅 된 이유는 아미달라 공주 나탈리 포트만과 체격과 외모가 비슷하다는 단 한 가지 이유였다. 아미달라의 몸종이자 미끼로 나오는데(시나리오에는 물론 이름이 있다. '사비'다) 자신의 목소리조차 포트만이 더빙을 해서 나오지 않는다. 두 사람은 분장을 하면 어머니들 조차 구별을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 영화 이후로 나이틀리는 성공의 가도를 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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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윌리스 /AFPBBNews=뉴스1/AFPBBNews=뉴스1


'다이하드' 시리즈의 액션 히어로 브루스 윌리스(Bruce Willis)는 어릴 때 말을 심하게 더듬어서 친구들에게 'Buck-Buck'이라는 별명을 얻고 놀림감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학교에서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무대에 서면 말을 더듬지 않았다. 자신도 이 현상을 매우 신기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원자력발전소의 경비, 사설 탐정, 바텐더로 전전하다가 연기수업을 본격적으로 받았다. 그 다음 이야기들은 그냥 화려한 성공담이다. 브루스 윌리스는 자신의 성공이 일부 말더듬이에 힘입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작은 인연이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정말 내게는 별 의미 없는 사람과의 아주 사소한 인연이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을 파괴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좋은 인연과 악연이 언제나 거창한 것만은 아니다. 인연에는 경중이 없다. 할리우드에서는 물론이고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출중한 외모와 실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면서 경쟁한다. 여기서 앞서 나갈 수 있는 데는 ‘운’이 따라야 한다. 그 운은 자신의 크고 작은 인연과 계기, 나아가 핸디캡을 어떻게 잘 관리하는가에 달려있다. 그래도 잘 안되더라도 포기할 것은 없다. 해리슨 포드가 스스로를 규정하듯이 세상에는 '대기만성형'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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